청년기
<열혈강의 C 프로그래밍>이라는 책을 다 봤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C언어의 기본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이라 그런지 역시 이해하기도 쉽고 좋았다. 중간에 나오는 문제 풀이는 개인 블로그에 과정을 적어가면서까지 꽤 재미있게 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마도 중학생 때였나, 그때 잠깐 배웠던 이후로 전혀 잊고 있었던 C언어를 다시 하니까 약 1개월 이상이 후딱 지나갔던 것 같다.
이어서 웹도 추천을 받아 HTML5 기본서를 조금 보다가 그만뒀다. 화면을 그리고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다음에 본 건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하겠다고 집어 든 SQL 책. 같은 팀 분의 추천이 있어서 봤는데 C언어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DB가 이렇구나, 데이터를 이렇게 저장하는 거구나. 인터넷 관련 회사에 다니면 알아두면 좋을 그런 내용들이었다.
SQL 책을 절반 정도 봤을까. 도저히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하고 이직을 했다. 사실 회사에서 일반 책을 보면 조금 눈치 보이기에 컴퓨터 관련된 책을 본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이북으로 소설도 2권 정도 보긴 했다) 그런데 내가 책을 보러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제 경력 약 4년 정도 돼서 뭔가 조금씩 알 것 같고 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나고 그러고 있는데 일이 없이 허송세월을 할 수는 없었다. 첫 퇴사와 다르게 다른 회사를 정해놓은 이후에 나왔다. 이제 더 이상 대책 없는 27살은 아니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2년 3개월, 두 번째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1년 8개월.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벌써 세 번째 회사에 가게 된 셈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일단 안정적으로 3년 이상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래야 무슨 일을 맡겨도 성과가 날 때까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다. 그런데 나는 남들은 한 회사 다닐 동안에 벌써 세 번째 회사라니. 그건 당연하게도 내 약점이 됐고, 면접 때 역시나 질문으로 돌아왔다.
"첫 회사는 왜 그만뒀어요? 얼마 안 다녔던 것 같은데."
"놀고 싶어서 뒤 없이 일단 그만뒀습니다."
"그럼 지금 회사는 역시나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왜 그만두려고 해요?"
"일이 너무 없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얜 뭐지 하고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이런저런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좋은 모습은 아니었고, 그건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다른 답을 잘했는지 천만 다행히도 합격을 했다. 조건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봤다. 조건은 내가 잘해서 이후에 많이 올리면 되겠지, 지금 당장은 내 커리어가 더 중요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의 시간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좋은 매니저도 만났고, 상세하게 무언가를 정하는 일을 넘어서 좀 더 상위 단계의 추상적인 개념을 정하는 일들도 새롭게 해 볼 수 있었고,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사업성을 검토하는 일도 조금은 했다. 덕분에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나오기 전 마지막 6개월가량은 정말 심심했다. 우리 팀의 새로운 계획은 이런저런 일로 계속 지지부진했고, 가벼운 일들 몇 개만 제외하고는 너무 여유로워서 공부를 하고도 시간이 남을 정도였다. 이럴 땐 웹툰도 재미없다. 회사 내의 다른 조직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팀은 그랬다.
회사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다닌다. 그리고 기왕이면 내 가치도 점점 더 올라서 더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성장을 해야 하는데 두 번째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내가 크게 성장할 것이 없어 보였다. 회사원이라면 더 이상 한 곳에서 배울 것이 없거나 내 가치를 올리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무조건 이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당시 내 나이 29살.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왠지 모를 압박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30살은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그런 걸 어릴 때는 알 턱이 있나. 이게 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 때문이다.
가장 아쉬웠던 건 편하게 서울로 출근하다가 멀고 먼 판교로 출근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까운 것보다 내 커리어를 생각할 때였다. 일단 합격을 한 이상 내가 앞으로 1~2년 더 다니고 회사생활을 그만둬도 될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선택은 쉬웠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벌고 싶었다. (메신저로 사람들 간에 소통이 더 잘 된다면 그것이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