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렇지만 첫 회사는 그런 정도를 넘어서 너무나도 멋졌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회사가 있다니!"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아직 좋은 회사와 별로인 회사 구분도 어렵던 때였고, 그저 여러 제도들로만 회사를 판단하던 때라는 것을 감안해도 첫 회사로 그런 곳을 가게 된 건 참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대표적으로 좋았던 제도들 몇 가지를 꼽아보면 이렇다.
셔틀버스
회사가 있던 분당에서 서울 및 근처 곳곳으로 출퇴근 셔틀버스가 운영됐다. 그것도 1~2개의 노선이 아닌 여러 개의 노선으로, 그리고 무료로. 덕분에 출퇴근이 한결 편안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출근시간에 셔틀버스를 타면 자연스레 모두가 잠에 빠져들어 어느새 회사에 도착하는 마법 같은 상황도 매번 경험할 수 있었다. 진짜 마법이었다. 어떻게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저렇게 곤히 잘 수 있었는지.
아침식사
회사에서는 아침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식사까지 제공했다. 간단한 김밥 정도지만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날에는 구경을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일 정도였다. 동료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동료 것까지 미리 챙겨놓는 사람들 때문에 한 사람당 하나씩만 챙기라는 말이 수시로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제도. 역시 잘 먹어야 한다.
단체보험
단체보험이 적용되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부 정액만 내면 나머지 병원비는 모두 보험에서 내줬다. 아마 1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내가 연수를 받는 도중에 미혼의 누나가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비용까지 다 나왔다. 내가 회사에 무슨 기여를 했다고, 그냥 교육받고 있을 뿐인데. 애사심이 급격하게 차올랐던 것은 물론이다.
신입사원 연수
입사 후 4주 동안 신입사원 연수를 했다. 각종 기본 교육들, 현업에서 온 분들의 생생한 경험담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일본 연수까지. 연수를 받고 있는데 첫 월급까지 들어왔다. 대체 내가 뭐라고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나 싶을 정도로 좋았던 연수였다. 나 이후로 연수의 수준이 조금씩 떨어졌는데, 역시 운이 좋았다.
자유로운 복장과 분위기
회사원이 된 후 당연히 넥타이와 양복을 입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챙겨 입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 모두가 자유롭게 옷을 입고 자유롭게 말을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결재서류 들고 기다리기, "좋은 아침!" 하며 출근하기 같은 건 없었다. 나름 로망이었는데 조금은 섭섭했던(?) 부분.
사내 카페
사내에 카페가 있어서 일하다가 힘들 때 언제든지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하면서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가격 역시 한잔에 천 원 내외 정도로 부담이 없었다. 덕분에 일찍부터 과다 카페인에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덤. 카페엔 언제나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것이 바로 창의로운 분위기라고 신문에 나오는 것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안다. 저런 것들은 회사의 표면적인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좋은 회사에 덧붙여지는 양념 정도는 되지만 좋은 회사를 만드는 핵심 요인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저런 제도들은 중요하다. 지금은 많은 회사들에서 적용을 하고 있는 제도들이긴 하지만 2008년 당시에는 많지 않았고, 저런 걸 보고 회사를 고르지는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저런 환경을 만나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큰 운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회사에 대한 인식이 시작부터 상당히 긍정적으로 형성되었다.
가끔 회사의 겉모습만 보지 말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아무리 해도 어차피 체감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 체감도 1~2년에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아무리 말해봤자 무엇하나. 겉모습은 중요하고,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회사들이 더 좋은 제도로 많은 주니어(사회 초년생 또는 3년 차 미만)들을 유혹했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회사가 직원을 존중한다는 가장 확실한 표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