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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pr 15. 2020

완벽하지 않아서, 나는 네가 좋아

네 번째 기록

 보름 하고 조금 더 전 즈음인가. 택배기사님께 죄송할 정도로 택배를 하루걸러 하루 받아본 적이 있었다. 른 게 아닌 교재 때문이었다. 4월 중순에는 개강하리란 예상을 깨뜨리고 학교가 5월 개강을 공지하자, 적지 않은 과목의 교수님들이 학습 자료를 PPT에서 교재로 변경하셨다. 이왕 주문하는 거 한꺼번에 시키면 참 편했을 텐데, 들쭉날쭉 올라온 공지 탓에 책을 매일 한 권씩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꺼번에 시켰다 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 때문에 택배 기사님께 죄송스러운 건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이번 학기 동안 나를 고생시킬 악당들이지만, 집에 갇혀 살던 무료한 나날들에 모처럼 찾아온 새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설레긴 하더라. 들뜬 마음으로 택배를 개봉했다. 근데 이게 웬걸. 군데군데 뭉개진 모습의 책들설렘을 실망으로 바꾸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래도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사용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옛날 같았으면 파손 문의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마 어릴 적의 내가 이 책을 받았다면 분명 입이 댓발로 나왔을 것이다. 그 꼬맹이는 뭉개진 책에다 정성껏 필기하는 지금의 나를 상상조차 못 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의연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실망했더라도 "뭐, 할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뭉개진 책을 품는 게 지금의 태도일 뿐이다. 새삼 성격 변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새 것이며 완벽한 것들은  좋아하던 내가 처음으로 하자품 받아들였을 때 말이다.


 열일곱 생일, 당시 재미 삼아 보던 애니메이션 두다다쿵의 인형을 선물로 받았었다. 나만 그런 건가. 이상하게 EBS 프로그램은 홀린 듯 보게 된단 말이지. 툭 튀어나온 두다의 앞니는 실제로 봐도 참 귀여웠. 야자를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간식으로 허기를 어느 정도 달랜 후에야 가방 속 두다가 생각나더라. 선물 상자에 담긴 편지를 읽고는 상자에서 두다를 꺼내 마주 보았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에이 설마. 학교에서 봤을 땐 멀쩡했는데? 그렇게 한참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두다와 눈싸움을 벌 후에야 알아낼 수 있었다. 두다가 좌우 비대칭이라는 사실을.


 봉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지, 가운데 봉제선을 기준 오른쪽이 왼쪽보다 위로 살짝 들려 있었다. 두다의 좌우 비대칭은 그의 앞 발톱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오른 발톱이 왼 발톱보다  길었던 것이었다. 뭐지. 얘 기타라도 치는 건가. 기타 치는 두더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 눈을 의심하던 찰나, 나는 더 이상한 걸 깨달았다. 좌우 비대칭 두다를 받은 나의 마음이  실망스럽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두다는 완벽하지 않았다. 오른 신체가 살짝 들리고, 오른 발톱이 왼 발톱보다 더 길었다. 그런데 난 그 이유로 두다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나의 두다는 하나같이 똑같은 인형을 생산해내는 공장에서 희박한 확률로 만들어진 하자품으로 정의될 수 있겠다. 여기 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자. 나의 두다는 세상에 하나뿐인 리미티드 에디션이 된다.


 획일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두다는 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온 날이 몇 번 있었는데, 책상 앞에 앉은 나와 눈이 마주친 두다는 이렇게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겉모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으므로 나의 매력이 생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살라고.


 리미티드 에디션 두다를 만난 후로 중고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내가 중고품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책은 무조건 새 책이지!' 했던 내가 서점보다 도서관을 즐겨 찾게 되었다. 손때가, 그리고 흠집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간혹 몇 장이 찢어져 있기도, 줄이 그어져 있기도 하다. 근데, 그래서 사실 더 좋다. 완벽하지 않은 물건을 다루는  마치 나를 쓰다듬는 기분어서일까. 이 책도 처음 빳빳한 새 책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겠지. 비록 주인의 끝사랑은 없었지만 이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구나. 부럽네. 완벽하지 않은 나도 언젠가는 이 책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겠지. 아니, 완벽하지 않은 나를 언젠가는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겠지.


 쓰고 보니 그리 대단한 성장은 아닌 듯하다. 남들에 비해서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손때 탄 물건을 좋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자 있는 인형을 거리낌 없이 사랑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선 꽤나 큰 변화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평생 완벽한 것만 좋아할 줄 알았던 내가, 이젠 찌그러진 책들도 스스럼없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열일곱 생일에 두다를 선물해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친구는 내가 인형 하나 가지고 이런 생각까지 했을 줄 전혀 모르겠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의 두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완벽하지 않음의 매력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리미티드 에디션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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