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서, 나는 네가 좋아

네 번째 기록

by 유월

보름 하고 조금 더 전 즈음인가. 택배기사님께 죄송할 정도로 택배를 하루걸러 하루 받아본 적이 있었다. 다른 게 아닌 교재 때문이었다. 4월 중순에는 개강하리란 예상을 깨뜨리고 학교가 5월 개강을 공지하자, 적지 않은 과목의 교수님들이 학습 자료를 PPT에서 교재로 변경하셨다. 이왕 주문하는 거 한꺼번에 시키면 참 편했을 텐데, 들쭉날쭉 올라온 공지 탓에 책을 매일 한 권씩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꺼번에 시켰다 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 때문에 택배 기사님께 죄송스러운 건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이번 학기 동안 나를 고생시킬 악당들이지만, 집에 갇혀 살던 무료한 나날들에 모처럼 찾아온 새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설레긴 하더라. 들뜬 마음으로 택배를 개봉했다. 근데 이게 웬걸. 군데군데 뭉개진 모습의 책들은 설렘을 실망으로 바꾸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래도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사용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옛날 같았으면 파손 문의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마 어릴 적의 내가 이 책을 받았다면 분명 입이 댓발로 나왔을 것이다. 그 꼬맹이는 뭉개진 책에다 정성껏 필기하는 지금의 나를 상상조차 못 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의연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실망했더라도 "뭐, 할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뭉개진 책을 품는 게 지금의 태도일 뿐이다. 새삼 성격 변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새 것이며 완벽한 것들은 다 좋아하던 내가 처음으로 하자품을 받아들였을 때 말이다.


열일곱 생일, 당시 재미 삼아 보던 애니메이션 두다다쿵의 인형을 선물로 받았었다. 나만 그런 건가. 이상하게 EBS 프로그램은 홀린 듯 보게 된단 말이지. 툭 튀어나온 두다의 앞니는 실제로 봐도 참 귀여웠다. 야자를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간식으로 허기를 어느 정도 달랜 후에야 가방 속 두다가 생각나더라. 선물 상자에 담긴 편지를 읽고는 상자에서 두다를 꺼내 마주 보았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에이 설마. 학교에서 봤을 땐 멀쩡했는데? 그렇게 한참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두다와 눈싸움을 벌 후에야 알아낼 수 있었다. 두다가 좌우 비대칭이라는 사실을.


봉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가운데 봉제선을 기준해 오른쪽이 왼쪽보다 위로 살짝 들려 있었다. 두다의 좌우 비대칭은 그의 앞 발톱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오른 발톱이 왼 발톱보다 더 길었던 것이었다. 뭐지. 얘 기타라도 치는 건가. 기타 치는 두더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 눈을 의심하던 찰나, 나는 더 이상한 걸 깨달았다. 좌우 비대칭 두다를 받은 나의 마음이 금도 실망스럽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두다는 완벽하지 않았다. 오른 신체가 살짝 들리고, 오른 발톱이 왼 발톱보다 더 길었다. 그런데 난 그 이유로 두다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나의 두다는 하나같이 똑같은 인형을 생산해내는 공장에서 희박한 확률로 만들어진 하자품으로 정의될 수 있겠다. 여기서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자. 나의 두다는 세상에 하나뿐인 리미티드 에디션이 된다.


획일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두다는 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온 날이 몇 번 있었는데, 책상 앞에 앉은 나와 눈이 마주친 두다는 이렇게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겉모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으므로 나의 매력이 생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살라고.


리미티드 에디션 두다를 만난 후로 중고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내가 중고품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책은 무조건 새 책이지!' 했던 내가 서점보다 도서관을 즐겨 찾게 되었다. 손때가, 그리고 흠집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간혹 몇 장이 찢어져 있기도, 줄이 그어져 있기도 하다. 근데, 그래서 사실 더 좋다. 완벽하지 않은 물건을 다루는 게 마치 나를 쓰다듬는 기분이어서일까. 이 책도 처음엔 빳빳한 새 책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겠지. 비록 주인의 끝사랑은 없었지만 이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구나. 부럽네. 완벽하지 않은 나도 언젠가는 이 책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겠지. 아니, 완벽하지 않은 나를 언젠가는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겠지.


쓰고 보니 그리 대단한 성장은 아닌 듯하다. 남들에 비해서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손때 탄 물건을 좋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자 있는 인형을 거리낌 없이 사랑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선 꽤나 큰 변화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평생 완벽한 것만 좋아할 줄 알았던 내가, 이젠 찌그러진 책들도 스스럼없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열일곱 생일에 두다를 선물해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친구는 내가 인형 하나 가지고 이런 생각까지 했을 줄은 전혀 모르겠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의 두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완벽하지 않음의 매력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리미티드 에디션 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물에 엄격한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