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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Nov 07. 2017

성 마리아 성당에 종소리가 울리면...

폴란드 크라쿠프, 성 마리아 성당의 전설

멀리 보이는 첨탑이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내 안의 설렘은 한 걸음씩 커졌다

구시가지 위로 솟은 성 마리아 성당의 두 첨탑



마침내 성 마리아 성당(Bazylika Mariacka) 앞에 도착했을 때, 단연 크고 웅장한 성당의 자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곧 내 시선은 그 앞에 있는 사람들, 나와 같은 여행자들에게 쏠렸다. 다들 이 웅장한 성당을 한 프레임에 담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앉아도 보고 바닥에 엎드려도 보고, 이리저리 아무리 각을 맞춰봐도 안되면 결국 뒷걸음질 치기 일쑤다. 그 모습이 꽤나 재밌다.

나도 그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그런데 남의 일이 아니다. 한 프레임에 담으려 애를 쓰다 보니 어느새 내 무릎은 땅에 닿아 있고 몸은 슬금슬금 뒤로 가기 시작한다. 내가 그랬듯 누군가 역시 이런 나를 보고 재밌어할 게 분명하다. 뭐 아무렴 어떠한가? 지금 나에겐 카메라 안에 비친 성 마리아 성당만 보일 뿐이다.


무릎 투혼으로 찍은 첫 사진은 실패! 첨탑 한쪽 끝이 잘렸다


카메라에 담기엔 너무 큰...


뒤로 가자니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한 번에 안 들어오고, 최대한 가까이서 웅장한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은데 욕심만 앞선다.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렌즈가 허락하는 거리까지 뒤로 가서 다시 찰칵!


몇 번의 시도 끝에 한 프레임에 담기 성공!


지나치는 사람, 머무는 사람


성 마리아 성당이 있는 곳은 크라쿠프 구시가지 중앙광장으로 유동인구 아주 많은 핫플레이스 중에 핫플레이스다. 때문에 이 곳만큼 사람 구경하기 좋은 곳도 없다. 남녀노소, 국적 불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거의 대부분이 서양인들인지라 내 눈엔 다 외국인 같지만 실제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외국에서 온 여행자는 아닐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여행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 있다. 성당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사람은 크라쿠프에 사는 혹은 크라쿠프에 자주 오는 폴란드 사람일 것이고, 성당 앞에 서서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카메라 셔터를 연실 눌러대는 사람은 분명 여행자일 것이다. 매일 혹은 자주 보는 현지 로컬이 아닌 이상 성 마리아 성당이 풍기는 웅장함에 압도되어 어쩔 수 없이 시선이 끌리게 될 수밖에 없다.


한차례 패키지 여행팀이 지나가고 한산해진 성당 주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성 마리아 성당과 폴란드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 동상




단순히 크기만 한 성당이라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에 걸맞은 역사를 가지고 있거나 볼거리가 있어야 응당 사람들이 찾을 것이다. 이 곳 성 마리아 대성당에는 흥미로운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형제의 비극


성 마리아 대성당의 첨탑을 짓기 위해 크라쿠프 최고의 건축가 형제가 고용되었다. 형은 남쪽의 첨탑(사진 안의 왼쪽 첨탑)을 맡았고 동생은 북쪽의 첨탑(사진 안의 오른쪽 첨탑)을 맡았다.

첨탑 건설이 시작된 초기에는 두 첨탑의 높이가 비슷했다. 하지만 곧 형의 남쪽 첨탑이 동생의 북쪽 첨탑을 추월해 더 높아졌다. 이에 질투에 눈이 먼 동생은 형을 죽이고 말았다. 이후 동생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형의 남쪽 첨탑을 더 높이 올리지 못하도록 큐폴라로 마무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첨탑을 더 높이 올리기 위한 공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어느 축성(봉헌)의 날, 죄책감에 시달린 동생은 형을 죽일 때 사용했던 칼을 들고 탑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자신이 형을 죽였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그곳에서 뛰어내렸다.


잘 나가던 건축가 형제의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비극을 듣고 나니 우선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이 세상 모든 아우들의 반발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옛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틀린 게 없나 보다.

동생이 죄책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살인자였지만 그래도 자살했다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끝내는 형보다 더 높은 첨탑을 지어 잘 먹고 잘 살았더라면 후세들에게 악행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나쁜 전설로 전해져 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과연 우리 후세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권선징악이라는 세상의 순리를 져버리지 않은 동생의 선택은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을 만하다. 동생이 사용했던 칼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사람들에게 대대로 상기시키기 위해  현재 직물 회관(크라쿠프 중앙시장 광장에 있는 쇼핑몰) 입구에 걸려있다.


사라진 나팔소리


중세시대에는 형이 만든 높은 첨탑에서 나팔 소리가 연주되곤 했다. 첨탑은 도시를 감시하는 망루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크라쿠프 성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과 적들의 침략을 알렸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나팔소리가 끈겼다.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2세기, 폴란드가 타타르족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 폴란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밤낮으로 나팔수가 탑을 지켰다. 여느 때처럼 감시를 하던 중 타타르족이 침입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크라쿠프 전역에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나팔을 불고 있는 그에게 타타르족이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이 목에 꽂히면서 나팔수는 죽었다.


보통 전설이라고 하면 신적인 영역의 이야기이거나 인간의 사랑,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한데 나팔수의 전설은 그냥 하나의 역사적 사실 같은 이야기다. 전설이라기보다는 국사책에 나올만한 옛날이야기 같았다. 당시 나팔수들이 실제로 있었고 그들 덕분에 지금의 폴란드가 있다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역사보다는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게 한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국사책으로 보는 역사보다는 전설로 듣는 역사가 더 재밌고 기억에 오래 남을 테니까.


역사는 기록에 남지만
전설은 기억에 남는다


두 전설의 흔적은 현재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높이가 다른 두 첨탑과 한쪽 첨탑의 큐폴라에는 형제의 비극이 있다. 사람들은 성 마리아 성당의 첨탑을 보면서 두 형제를 떠올릴 것이다.

두 첨탑 중 높은 첨탑에는 나팔수의 혼이 있다. 매일 매시 정각, 전설 속의 나팔수를 추모하기 위한 나팔 연주가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은 크라쿠프를 수호하던 나팔수를 기억할 것이다.





때마침 종소리가 울린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다.

이제 이 종이 다 울리고 나면 나팔수의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매시 정각을 알리는종소리

 

첨탑의 창문 하나가 열린다. 빼꼼히 나팔을 내민 나팔수가 등장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는 당시 나팔수가 죽기 직전 연주했던 부분까지만 연주된다.


나팔소리는 첨탑에서부터 광장으로 은은히 퍼져나간다.

아름답고 구슬프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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