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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Nov 11. 2017

그냥 지나치지 말아줘

크라쿠프 성 마리아 성당, 소박한 외모에 가려진 내면의 화려함

흔히 유명한 유럽의 대성당들을 보면 뾰족뾰족 솟은 크고 작은 첨탑들과 독특한 디자인, 외벽의 문양이나 장식 등으로 화려함을 뽐낸다. 때문에 대성당이라는 이름처럼 크고 웅장한 것은 물론이요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성당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 예술품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만약 이런 느낌을 기대하고 폴란드 크라쿠프의 성 마리아 성당(Bazylika Mariacka)을 찾았다면,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크라쿠프 성 마리아 성당은 크기 면에서는 앞서 말한 유럽의 유명 성당들에 뒤지지 않지만 화려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성당 입구와 꼭대기의 두 첨탑이 나름의 화려함을 담당하고는 있지만 다른 유럽의 유명 대성당(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가우디 성당),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바티칸 대성당),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밀라노 두오모),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피렌체 두오모)등)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다. 전체적으로 붉은 벽돌만을 이용해서 지은 성 마리아 성당의 모습은 꼭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교회 같기도 하다.(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붉은 벽돌 천국이다.) 그래서일까? 소박하니 심심한 게 왠지 친근하다.


폴란드 크라쿠프 성 마리아 대성당(Bazylika Mariacka)
입구 우측에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20주년 기념일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왼쪽은 한 때 대주교로 지냈던 바벨성, 오른쪽은 교황 선출 후 지냈던 성 베드로 성당
 입구 좌측에 있는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빈 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당시 폴란드 국왕, 빈 공방전 2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소박함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려함이라는 방이 우릴 환영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제단이 보이고 그 순간 기대 이상의 화려함과 마주치게 된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과 안이 다른 차원의 세상에 있는 듯할 만큼의 반전이다. 겉보기에 소박했던 그 성당이 맞나 싶어 다시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 확인해본다. 물론 당연히 내가 본 그 성당으로 제대로 들어온 것이 맞다. ‘설마’하는 의심의 찌꺼기도 훌훌 날려버렸으니 이제 이 화려함을 만끽할 일만 남았다. 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제단 앞으로 향했다.


제작 기간만 무려 12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 마리아 성당의 '비트 스트보쉬(Wit Stwosz)' 제단


비트 스트보쉬(Wit Stwosz) 제단은 독일의 유명한 조각가인 '바이트 슈토스(Veit Stoss)'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단 앞에 서니 일단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화려하게 빛나는 제단과 그 뒤 알록달록 스테인드글라스의 조화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휘황찬란한 반짝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니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좁은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무려 200명! 그것도 대충 사람의 형상으로만 해놓은 것이 아니다. 가까이 보면 사람들의 행동, 표정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했다. 마치 한편의 움직이는 인형극을 보는 듯 생동감이 있다.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일지라도 대강의 큰 스토리 라인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안에 사람이 정말 200명? 숨은 사람 찾기 해보실 분?


성 마리아 성당의에 한국어 설명서




제단을 등지고 바라본 성 마리아 성당 내부 전경, 천장, 파이프오르간과 그위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어느 것 하나에도 아름다움이 빠지는 것이 없다.


성 마리아 성당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는 제단을 만든 바이트 슈토스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세 사람은 폴란드 화가 브와디스와프 우슈츠키에비츠(Władysław łuszczkiewicz, 1828~1900년)와 예술사학자 스타니슬라브 톰구이츠(Stanislaw Tomkowicz, 1850~1933년), 그리고 언론인, 시인, 작가이자 미술학자였던 타데우슈 크르자놉스키(Tadeusz Chrzanowski, 1926~2006년)이다.


19세기 활동했던 두 사람(앞의 두 사람)은 성 마리아 성당의 보전과 복원작업의 감독관이었다. 특히, 브와디스와프 우슈츠키에비츠는 폴란드 국민화가인 얀 마테이코의 스승이자 동료였다고 한다. 때문에 성당 안의 그림들 중에는 얀 마테이코의 작품들도 다수 있다.

가장 최근까지 실존 인물이었던 타데우슈 크르자놉스키는 197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크라쿠프 기념물 복원위원회의 회장이었다고 한다. 정확히 2006년 12월 24일에 사망했는데, 사망 5일 후인 12월 29일에 이 곳 성 마리아 성당에서 그를 위한 추모 미사가 열렸다고 한다.


성 마리아 성당 내부의 아름다움을 책임지고 가꿔온 이들의 모습은 성당 외벽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왼쪽부터 브와디스와프 우슈츠키에비츠, 스타니슬라브 톰구이츠, 타데우슈 크르자놉스키)





바이트 슈토스 제단과의 아쉬운 생이별을 하고 다시 성당 밖으로 나왔다. 제단의 여운이 나를 뒤돌아 보게 한다. 안에 들어가 보기 전 소박하고 심심하게만 보였던 성 마리아 성당은 이제 다양한 재료가 맛깔스럽고 짭짤하게 뒤섞여 간이 잘된 소가 들어있는 만두 같은 느낌이다. 만두는 소을 먹어야 진짜 만두를 먹었다고 할 수 있듯, 성 마리아 성당은 안에 들어가 봐야 성 마리아 성당에 가봤다고 할 수 있겠다.


유럽여행을 다니다 보면 무수히 많은 성당이나 교회와 마주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유럽 종교는 대부분이 가톨릭이기에. 그래서 유럽 여행을 한 번 이상 다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성당이나 교회에 대해 권태를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동네 성당조차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지만 나중에는 웬만큼 유명한 성당이 아니고서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에 점점 인색해진다.


다른 곳은 몰라도 성 마리아 성당 앞에서 만큼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 마리아 성당은 깊이 알아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유럽 최고의 제단은 다른 어느 성당을 가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성 마리아 성당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벅찬 감동도 사진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다.


혹 누군가 폴란드 크라쿠프에 간다면 딱 이것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꼭, 성 마리아 성당만은 그냥 지나치지 말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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