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전 중입니다
5년간 다닌 직장에서 무작정 퇴사를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왜냐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16년 동안 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는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은 이런 고민을 사춘기부터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한다던데, 난 예비군을 졸업하고 민방위로 입학하는 31.9살이나 먹고서야 하게 됐다. 어쩌면 지금이 뭐든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찾아보기로 했다. 설사 끝내 찾지 못한다 해도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2015년 12월, 퇴사를 했다.
퇴사 후 운동, 독서, 영어공부 등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하루를 채웠다. 좋아하는 것들을 쫓다 보면 뭐라도 하나 걸리겠지. 그렇게 지내오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닉 소프(Nick J. Thorpe)’라는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가 쓴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지루하고 지친 삶을 극복하는 52가지 프로젝트)'를 읽게 됐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 순간 그냥 일기가 떠올랐다. 그날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그리고 얼마 후, 평소 즐겨 읽는 여행 에세이를 보고 있는데 세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여행-책-일기
여행과 책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일기를 글쓰기라 치면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어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걸 보면. 세 단어와 연관 지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답은 손에 쥐고 있는 책에 있었다.
여행작가
2016년 5월,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여행작가 되는 법’을 찾아보다가 여행작가 아카데미라는 교육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학기제로 운영되어 당장 시작할 수는 없었다. 다음 학기에 등록하기로 하고 일단은 ‘브런치’에서 글쓰기 연습을 먼저 시작했다.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행들을 풀어냈다.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는 기분이 좋았다. 이 맛에 여행작가 하는 건가? 여행 글쓰기에 점점 재미가 붙었고 여행작가에 대한 욕심도 더 커져갔다. 몇 달 뒤, 다시 아카데미 새 학기가 돌아왔다. 들뜬 마음으로 수강신청을 하려는데, 왕왕왕왕.(좌절 효과음)... 통장이 텅장(텅텅 빈 통장)이 되어 결제를 할 수가 없었다.
퇴사 후, 난 줄곧 퇴직금을 까먹으며 지냈다. 계산대로면 길게 8개월까지는 버틸 수 있었는데 어느새 8개월이 돼버린 것이다. 사실 8개월은 스스로 약속한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그 안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하고, 못 찾으면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다시 돌아가느냐, 아니면 갈 때까지 더 가보느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나름 고민 끝에 한 퇴사인데 이렇게 퇴직금만 홀라당 까먹고 돌아가기에는 억울하고 허무했다. 하고 싶은 일도 이제 막 찾았는데... 에잇! 갈 때까지 가보자! 돈이야 알바라도 해서 벌면 되니까. 고민 끝에 낮에는 알바, 퇴근 후에는 글쓰기를 하며 다음 학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5개월 후, 또다시 찾아온 새 학기. 혹시 몰라 다시 한번 통장잔고를 확인한 후 드디어 신청을 하려는데, 아아아악! 이번에는 조기마감이다. 시트콤에나 나올법한 현실이 믿기지 않아 전화로 다시 확인했지만 행운의 예비 7번이란다. 하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행운일 거란다. 결국, 이렇게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멘붕으로 의욕상실이 돼버린 난 검색창에 여행작가를 쳐놓고는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반가운 기사 하나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예비 여행작가를 비롯해 여행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정말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다른 기관에서 주관하는 여행작가 아카데미 프로그램이었다. 됐다! 바로 신청 고고!
2017년 2월, 여행작가를 위한 공식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2개월 후, 여행작가 교육도 수료했겠다 이제 열심히 여행 다니면서 글 써서 책 한 권 내면 될 것 같은데, 내 주변 상황이 더 이상 나 몰라라 앞만 보고 달릴 수만은 없게 됐다. 내게 있어 여행작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가족과 미래의 가족이 될 짝꿍과 함께할 미래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삶의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이제는 다시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역시 전공을 살리는 것만큼 안전한 곳은 없었다.
2017년 4월, 다시 출근을 했다.
직장인으로 돌아온지도 어언 3년. 이제 여행작가는 포기했냐고? 놉! 대신 방향을 살짝 틀었다. 일과 여행, 글쓰기를 병행하는 직장인 여행작가로. 틈틈이 여행하고, 퇴근 후 꾸준히 글을 써온 덕에 좋은 기회로 여행잡지에 기고도 하고 서포터즈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느리지만 매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는 출간이다. 작가라면 당연히 자기 책 한 권은 있어야 하니까.
2020년 5월 현재, 나는 아직 도전 중이다.
도전은 실패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
-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Richard Milhous Nix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