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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의 민족

하노이 새댁 투어 - Episode Ⅱ

by 트래볼러

하노이 새댁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하노이 최대 시장인 동쑤언 시장(Đồng Xuân Market)을 찾았다. 시장에 가면 사람 사는 향기가 느껴져 좋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여기에 현지 특산품과 기념품은 물론 현지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한 공간에서 모두 접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지는 없지 않나 싶다. 때문에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시장 한 군데는 꼭 가는 편이다.

동쑤언 시장에서는 주말이면 야시장이 열렸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사람들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축제 현장 같았다. 맛있는 길거리 간식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고, 베트남 느낌 팍팍 나는 아기자기 액세서리들은 짝꿍의 눈과 감성을 자극했다. 짝꿍과 난 이왕 온 거 기념품 하나 골라 보기로 했다. 우리의 쇼핑을 하노이 새댁과 그녀의 남편이 돕겠다고 나섰다. 가격 흥정하려면 자신들이 필요할 거라며.

우리의 타깃은 한집 건너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옷 커플룩. 하노이 새댁 부부도 커플로 맞춘 옷이 있다며 우리에게 강력 추천했다. 솔직히 난 과연 저 옷을 입고 호텔방 말고 어디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짝꿍은 재미있겠다며 전투적으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와 있는 행거를 뒤적뒤적거리기를 몇 차례, 파란색 바탕에 파인애플과 꽃이 섞인 옷이 픽업됐다. 개중에 그나마 무난한 스타일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천.만.다.행.^^;; 가게 사장님께 고른 옷을 보여 드렸다. 이제는 하노이 새댁 부부의 차례. 일단 초반 기싸움이 시작됐다. 선봉장은 하노이 새댁이었다.


하노이 새댁 : "!@#@^%$#^!$"
가게 사장님 : "#$&^@%$"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들이 오고 간다. 짝꿍과 내가 알 수 있는 건 오롯이 억양과 추임새에서 나오는 분위기뿐. 아마도 1차 협상은 결렬인 듯했다. 그러자 곧장 후위대로 있던 하노이 새댁 남편이 투입됐다.


하노이 새댁 남편 : "@%#%$#"
가게 사장님 : "&%$&^%$&^%$"
하노이 새댁 남편 : "%$&^%&%"


전세가 완전히 넘어온 것은 아니지만 끝에 우리가 한마디를 더 한 것으로 보아 왠지 승기를 잡은 것 같았다. 애써 웃음 짓는 듯한 어색한 사장님의 미소도 우리의 승리가 가까워졌음을 암시했다. 이제는 짝꿍과 내가 나설 차례! 우리는 싸게 해줄까 말까 고민이 한창인 것 같은 사장님을 보며 '에잉~ 싸게 해주세요옹~'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쌍으로 미소를 날렸다.(내 미소는 썩쏘였을 것 같아 바로 후회했다.ㅠㅜ)


"OK! (우리를 가리키며)#@$%#@$@%$."


OK라면... 성공했다! 역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배달의 민족 못지않은 전통 있는 시장 문화로 단련된 흥정의 민족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노이 새댁 부부가 우리 민족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준 덕에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마지막에 우리한테는 뭐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너네들이 예뻐서 싸게 주는 거래~"


사장님 아주 센스가 있으셨다.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덕분에 서로 웃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었으니. 요런 게 바로 시장 쇼핑의 맛 아니겠나? 만족스러운 쇼핑에 가게를 나오며 한국말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또 올... 거예요 아마 우리 말고 저 부부가. “


(그들은 그 뒤로 진짜 또 갔다고 한다.)


불금이닷! 동 쑤언 야시장 가는 길
바글바글 동 쑤언 야시장
짝꿍이 좋아하는 작고 예쁜 거, 근데 안 비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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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양해서 선택장애 올뻔 한 과일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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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 구경도 식후경, 먹으면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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