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새댁 투어 - Episode Ⅳ
“여자들끼리 힐링 좀 하고 올게~ 오빠도 오빠만의 시간을 가져.”
“뭐야 나만 냅두고... (앗싸! 자유다~!!!^^)”
여자친구와 하노이 새댁이 함께 마시지부터 뷰티까지 풀케어를 받으시러 가겠다고 하여 덕분에 난 남자들의 로망인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이런 기회는 매주 같은 날 찾아오는 아파트 5일장 같은 기회가 아니다. 함께 여행 와서 따로 놀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이게 바로 커플 여행의 베스트 코스?!(이놈의 주둥이야 그만 설쳐대라!) 흔히 남자들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속설 같은 정설이 있다.(적어도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그렇기에 난 정설이라 믿는다.) 전문 용어로는 ‘남자의 동굴’이라고도 한다. 여자친구가 날 위해 주는 여행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호안끼엠 호수 북단의 작은 섬. 그 안에 지어진 응옥썬 사당(Đền Ngọc Sơn)으로 통하는 다리인 테 훅 교(Cầu Thê Húc)가 한순간에 도떼기시장처럼 붐비기 시작했다. 호안끼엠 호수를 대표하는 사진 맛집 중 한 곳인지라 거의 그렇다고는 하지만 유난히도 더 붐비게 된 데는 패키지여행 군단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반갑게도 한국 사람들이다.
"자~ 이따 나가기 전에 사진 찍을 시간 충분히 드릴 거니까 일단 한 줄로 저 따라오세요~"
어느 패키지여행이나 대열의 꼬리는 항상 주요 관심 대상. 한순간도 놓치기 싫은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거의 이 꼬리를 차지한다.(내 이야기다.^^;;) 여행 가이드님은 다리 위에서 행여나 다른 여행자들의 민폐가 될까 싶어 선두에서 말미까지 내려와 한 분 한 분 다 챙기셨다.
"다리 건너시면 나오는 게 응옥썬 사당이라는 곳이에요. 저 앞에서 잠시 설명드리고 자유시간 드릴게요~"
여전히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마지못해 끌려가듯 걸어가는 꼬리 행렬에 나도 은근슬쩍 따라붙는다. 사실 빨간색이 매력적인 테 훅 교에 이끌려 왔을 뿐 거기가 응옥썬 사당인지, 어떤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다 오셨나요? 이곳은 응옥썬 사당이라는 사원이고요..."
가이드님의 열정적인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패키지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 천천히 둘러보시고, 아까 다리에서 사진 못 찍으신 분들도 찍으시고, 20분 후에 이쪽으로 다시 모이실게요~"
"(일동) 네에~~~!"
"그리고, 그전에 저기 맨 뒤에 쳥년!"
순간 뜨겁디 뜨거운 하노이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대부분이 어머님, 아버님 뻘, 그리고 청소년쯤 돼 보이는 자녀들로 구성된 패키지여행팀이었기에 무리 중에 청년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 저요?!"
"그럼 여기 청년이 자네 말고 누가 또 있나?!"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여기도 있어요!"
"(일동) 하하하하하"
왠지 아재개그 만렙이실 것 같은 부장님 포스의 한 아저씨가 나름 유머러스하게 받아쳐 주신 덕에 다행히 얼었던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하지만 이 순간에 나만은 웃을 수 없었다.
"자네 우리 팀 아닌 거 같은데, 뒤에서 다 들었지?"
"아... 네..."
"에유~ 뭐 어때요~ 지나가다 들리면 다 같이 듣는 거지 뭐.“
인자해 보이고 푸근한 인상의 한 아주머니께서 감사하게도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에이~ 그러면 안 되죠! 요즘 같은 지식 정보화 시대에."
아무래도 가이드님은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가실 의향이 전혀 없으신 거 같다. 일단 죄송하다고 먼저 사과를 드려야할 것 같기는 한데 당황한 나머지 선뜻 굳은 입술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러분들 각자 핸드폰 다 꺼내시고 이쪽으로 한 팀씩 서보세요."
그리고는 나를 불렀다.
"자네가 여기서 사진 좀 찍어드려."
"아! 네!"
"저분들 덕에 같이 들은 거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예쁘게 잘 찍어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응옥썬 사당에서 바라보는 호안끼엠 호수를 배경으로, 난 그 어느 때보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이고~ 고마워요~ 덕분에 인생 사진 건졌네~"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그래요, 여행 재밌게 해요~"
"네, 즐거운 여행 되세요~(꾸벅)"
마지막 팀 촬영을 끝으로 가이드님과 유쾌하고 정 많은 패키지여행팀과 작별 인사를 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 기분. 사당에 와서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고 가게 됐다. 첫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 둘째, 사소한 것이라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