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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Jul 20. 2021

팔당 물안개 공원 차크닉

쉬러 갔는데 한 시도 쉴 수 없었던

수주팔봉에서의 차박 마지막 날 아침. 아침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부리나케 자리를 정리하고 도망치듯 수주팔봉을 떴다. 신의 한 수였다. 고속도로를 타자마자 스콜성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차 지붕 위에서 큰 대야에 물을 받아 그대로 들이붓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같은 시각 수주팔봉도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달천이 꽤나 불었을 것이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그늘막과 텐트들은 비바람에 맞춰 춤을 췄을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서울에 도착하니 언제 비가 내렸었냐는 듯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보였다. 뭥미!?(ㅡㅡ^) 살짝 약이 올랐다. 차박 마지막 날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는데... 커피 한잔 하면서 수주팔봉 더 보고, 그런 여유로운 엔딩을 꿈꿨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All's Well That Ends Well)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반대로 적용하면 끝이 나쁘면 다 나쁜 게 된다. 마무리가 좋지 못하니 아쉬움이 계속 맴돌았다. 뭔가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를 깔끔하게 못하고 나온 것 같은?(으... 너어~무 싫다!) 계속 이렇게 찝찝한 채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다시 떠나기로 했다. 대신 차박은 아니고 차크닉으로. 타프, 릴랙스 체어, 감성 도구는 다 접어두고 최소한의 짐으로 미니멀하게. 대~충 먹고,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그냥 멍~하니 푹~쉬다가 와야지. 장소도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검색했다. 서울 근교의 차박러들 사이에서 제법 입소문이 난 곳을 찾았다. 팔당 물안개공원. 기껏 물을 피해서 왔건만 다시 물이 있는 곳이라니. 아침과 같은 무식하게 퍼붓는 물폭탄이 아닌, 분무기를 뿌린 듯 촉촉한 물안개가 은근하게 깔린 운치 있는 공원이기를 바라며 액셀을 밟았다.



팔당 물안개공원은 촉촉하다기보다는 축축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각인지라 당연히 물안개는 없었고, 걸쭉한 습도를 머금은 공기만이 온몸을 감쌌다. 햇빛 아래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땀 이날 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차크닉을 할 물가 근처에 나 홀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무 아래로 바짝 붙여 차 뒤꽁무니를 들이댔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자 자연 그늘막이 완성됐다. 일단 인간 통구이는 면했다. 차크닉 세팅은 최대한 단출하게 맥주가 든 아이스박스와 군것질 거리가 든 폴딩 박스만 밖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소설책,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폴딩 박스에서 과자를 꺼냈다. 이츠 책맥 타임! 맥주 한 모금에 과자 한 줌, 책 한 페이지. 오랜만에 여유 넘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자연 타프(그늘막)가 되어준 나 홀로 나무
차크닉은 최대한 단출하게
이 영상의 주인공은 제가 아닙니다. 뒤로 흘러가는 구름과 꿈틀대는 발가락이 포인트!^^;;

맥주와 과자를 다 먹고 나니 더 이상 독서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사실 책은 거들뿐! 맥주와 과자를 먹기 위한 독서였는지도...^^;;) 잠이 오는 건 아니었고,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요, 그냥 말 그대로 글을 읽고만 있었다. 최대한 집중해보려 애썼지만 끝내는 그냥 책을 덮고 말았다. 독서 끝! 이제 뭐 할까? 하다가 순간 잊고 있었던 이번 차크닉의 콘셉트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빨리 화장실 다녀오라고 보채는 방광만 달래주고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기로 했다.

공원 입구에 있는 공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데 문 옆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잠시 멈춰 섰다. [제1회 광주시 공원 사진 공모전] 공고였다. 쉬고 싶은데 사진 공모전에도 지원해보고 싶었다. 결정을 내린 지 못한 채 차로 돌아왔다. 일단 차에 누웠다. 대자로 쭉 뻗고 누우니 차 밖으로 보이는 초록 초록한 물안개 공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결국 카메라를 챙겨 차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팔당 물안개 공원 한 바퀴를 스윽~ 돌며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난 편히 쉴 팔자는 아닌 것 같았다.

차에 누웠을 때 보이는 차 밖 풍경
물가에 외로이 정박해 있는 나룻배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팔당 물안개공원
사진 공모전 출품작 #1 - 꽃길만 걸어요
공원 산책 중이신 노부부
사진 공모전 출품작 #2 - 봄비 내린 후에 (공모전 입상작!!! ^^V)
귀여섬 가는 다리
사진 공모전 출품작 #3 - 귀여섬의 봄
귀여섬 산책로
초록초록 귀여섬

사진 수십 장을 건지고야 차로 돌아왔다. 뙤약볕에 돌아다니느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잠시 차에 시동을 걸어 에어컨으로 땀을 식혔다. 땀이 식고 나니 나른해졌다. 이제 정말로 필요한 건 휴식. 눈 좀 붙여야지 싶어 차에 누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창으로 비치는 붉은빛이 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 가고 있는 시각, 팔당 물안개공원에 노을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둘 중 하나 선택을 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카메라 들고나가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잠을 제물로 바치고 , 그 대가로 노을을 얻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나의 차크닉도 끝이 났다. 수주팔봉 차박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여유를 즐기러 온 차크닉이었는데 오히려 차박보다 더 바쁜 차크닉이 돼버렸다. 하... 여전히 피곤쓰;;;

팔당 물안개공원에 지는 노을
차크닉 끝!




< CAMPING NOTE >


팔당 물안개공원
광주시 귀여리에 위치한 팔당 물안개공원의 원래 명칭은 귀여섬이였으나 최근에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공원은 다목적광장, 시민의 숲, 희망의 숲, 코스모스길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가을이면 길을 따라 코스모스들이 한가득 피어나 코스모스 명소로 유명하다. 자전거 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대여소에는 2인용 자전거, 3인용 자전거, 패밀리 카트, 클래식 전동카 등 취향에 맞게 골라 빌릴 수 있다. 차크닉 혹은 차박은 공원 주차장 반대편(공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왼편)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 공터에서 즐길 수 있다. 단, 취사 및 야영은 불가능해 텐트를 치거나 조리를 할 수는 없으므로 스텔스 차박만 가능.

[이용시간 및 요금] 연중무휴, 무료
 - 하절기 5AM-20PM
 - 동절기 7AM-18PM

[시설] 화장실
 ※취사 및 야영 불가

[문의] 031 762 3010 (경기도 광주시 관광안내소)


참조 :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음/네이버 블로그, 광주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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