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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Aug 23. 2022

청와대에 다녀왔다

6월의 청와대

깨톡!

국민비서 구삐에게 연락이 왔다.

청와대 개방 관람 이벤트에 당첨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개방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쯤 야심차게 첫 도전을 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실패를 하고(광탈한 입사지원서처럼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개방 한 달 즈음 두 번째 도전만에 당첨이 된 것. 나름 팁이라 하면 첫 번째에는 사람들이 가장 몰린 오후 시간을 노렸었는데 두 번째에는 사람이 가장 적은 제일 이른 아침 시간을 택했다.(물론 그래도 수천 명이 몰렸지만) 아무튼 작전 성공! 소중한 나의 주말 아침잠을 팔아 청와대 관람 티켓을 얻었다.


사실 청와대 개방에 크게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청와대 비스무리한 청남대(청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 다녀왔기도 해서 얼추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이제 막 개방한 터라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릴 걸 알고 있었기 때문. 가더라도 한 풀 꺾이고(어쩌면 오천만 온 국민이 다 한 번씩은 가봐야 꺾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을 때 갈 생각이었다. 이랬던 나를 누구보다 발 빠르게 청와대 관람 신청을 하게 만든 건 우리 엄마다. 평소 웬만해선 먼저 나서서 어디 가자고 하는 엄마가 아닌데 청와대만큼은 꽤나 보고 싶으셨는지 가야G~ 가야G~ 노래를 부르시며 얼른 신청하라고 조르다시피 나를 등 떠밀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어딘가를 가보길를 갈구(?)하는 것은 처음이라 (효자인 척) 엄마 말에 나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덕분에 나름 얼리어댑터로 청와대에 다녀왔다.



과연 명당이로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왠지 청와대로 가는 것 같은 사람들 무리를 졸졸 따라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청와대 정문이 아닌 영빈문에서 입장을 했다. 그래서 들어서자마자 반겨준 건 청와대가 아닌 영빈관. 뭐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으나(내가 아는 영빈관은 무도장뿐이라^^;;) 아침부터 줄이 어~엄청 길게 늘어서 있어 꼬리에 붙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영빈관은 들어가 사진 찍고 나오는 데까지 1분이면 충분하니 우선 본관부터 보시라는 안내요원의 친절하면서도 간곡하면서도 짜증 조금 섞인 멘트에 감동받아 그의 수고에 보답하고자 (아무도 말 안 듣길래 우리라도) 본관으로 향했다.


영빈관 |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빈 방문 시 공식 행사 또는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를 진행하던 장소
영빈관 내부
국빈 방문 시 만찬을 했던 식탁

영빈관 옆 좁은 문을 지나 골목은 아니지만 수많은 인파로 골목이 되어버린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병목현상이 서서히 사라질 때쯤, 쨔잔~ 마침내 광활한 대정원과 함께 선명한 청색 모자를 쓴 청와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영빈관 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어어어~엄청 긴 줄과 함께. 과연 오늘 안에 입장은 가능할까 싶었지만 일단 줄은 줄이고, 줄 서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나 청와대 왔다!' 하고 인증하는 일. 대정원 앞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인증숏을 찍는 사람들로 본관 입장 줄 못지않게 붐볐다.

대정원에서 바라본 청와대
청와대와 북악산
청와대 인증숏 존

인증숏 미션을 성공리에 마치고 본관 입장 대기줄에 합류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입장 속도가 빨랐다. 기다리면서 대정원 앞에서 못다 찍은 청와대 사진을 찍으니 시간 순삭. 어느새 청와대 본관 앞에 다다랐다. 줄 서는 내내 청와대만 바라보고 서있다가 청와대 앞에 도착하니 이제야 청와대 맞은편으로 펼쳐진 서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대통령님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아름다운 서울을 매일 보았겠지. 대정원, 종로의 빌딩 숲과 남산이 한 프레임에 담겨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서울의 매력이 잘 드러났다. 뒤로는 북악산이 있고 앞으로는 청계천이 흘러 도시가 발달해 있는, 이것이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정석. 과연 명당이로소!


청와대의 상징, 청기와
청와대 앞에서 바라보는 서울 (서울N타워, 신무문, 종로빌딩숲)
청와대 본관(로비) | 청와대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1991년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신축)
청와대 본관 내부1
청와대 본관 내부2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것들


관저 입구 옆 작은 연못으로 관저 뒤 뒷동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뒷동산이라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으나 그래도 꼴에 산이라고 시작부터 제법 가파른 길을 본 엄마는 부담스러웠는지 나는 못 올라가겠다 손사래를 쳤다.


"가서 사진 잘 찍어와!"


엄마에게 '사진 잘 찍기'라는 어머어마한 고난도 미션을 부여받고는 동생과 함께 청와대 뒷동산 산책(아니, 등산)을 시작했다.


초반의 언덕은 숨이 차고 다리가 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차피 이 길을 걸을 사람이 대통령 내외나 가족들뿐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산이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전반적으로 길이 좁았다. 마주오는 사람을 만날 때면 살짝 비켜주거나 기다려주는 양보의 미덕이 필요했다.(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울창한 나무숲에 가려 딱히 '뷰'라고 할만한 풍경이 보이지 않아 진짜 그냥 걷기만 하다가 끝나겠구나 싶었는데 중간 즈음에 나무숲 틈 사이로 '뷰'라고 할만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스폿이 나왔다. 너도나도 멈춰 사진을 찍느라 생긴 병목현상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민폐인 것 같아 난 날다람쥐처럼 산비탈 위로 올라가 잽싸게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대통령 관저 입구와 입구 앞 연못
대통령 관저 | 대통령과 가족들의 거주 공간 (본채, 별채, 뜰, 사랑채 등으로 구성)
관저 뒷동산 뷰 (미세먼지만 없었더라면...)

맺혀있는 땀이 슬슬 주르륵 흘러내릴 때 즈음 쉬어갈 수 있는 스폿이 나왔다. 오운정(五雲亭)이라는 정자. 실제로도 휴식을 위해 지어진 정자로 사람들은 오운정 주변 돌난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쉬면서 오운정 본연의 의미를 만끽해볼까나 했으나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생각해 엄마에게 보여줄 사진만 건지고는 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 개방 소식과 함께 주요 볼거리로 소개되면서 국민들 곁으로 돌아온 미남불,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에 도착했다. 웅장하고 화려한 사찰 안에 있어야 할 부처님이 이런 누추한(물론 청와대 안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뒷동산 산길에, 그것도 오운정보다도 작은 누각 안에 모셔져 있는 걸 보니 우리나라 '보물 제1977호'치고는 너무 푸대접을 받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심으로서 국민들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으니 이건 또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무튼 미남불을 끝으로 엄마의 미션은 클리어!^^V


오운정 | 경복궁 후원에 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딴 것으로 '5색 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곳과 같다'는 의미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 2018년 보물 지정. 9세기에 조성된 통일신라 석불좌상,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

나름 성심성의 껏 찍어온 사진을 본 엄마는 '위에 이런 게 있구나.', '아우~멋지다!' 하셨지만 누가 봐도 찐감동에서 우러나오는 찐리액션은 아니었다. 하긴, 원래 사진만으로 직접 본 사람만큼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순간의 온도, 분위기, 냄새 등 온 감각이 반영된 입체적인 풍경이다. 그러니 건강상의 무리가 없다면 관저 뒷동산에는 꼭 한번 올라 보시길.


[Appendix - 6월의 청와대]

침류각 | 1900년대 초의 전통가옥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다
침류각 아래 연못
상춘재 |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
녹지원 |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으며 어린이날 행사 장소로도 이용
춘추관 | 대통령 기자 회견 및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
대변인 체험
프레스센터
대한민국 청와대 로고




< TRAVEL NOTE >


청와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구(舊) 관저로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및 주거실 등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경호실·춘추관·영빈관 등 부속건물로 되어 있고 넓은 정원과 북악산(北岳山)으로 이어지는 후원(後園) 및 연못이 있다. 본관은 2층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靑瓦]를 덮은 덕에 ‘청와대’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2022년 5월 10일 국민에게 개방되었다.

관람 안내
 - 아래 [청와대, 국민품으로] 웹사이트에서 관람 신청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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