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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Oct 04. 2022

메밀꽃 필 무렵 다녀온 평창

이효석으로 시작해 메밀로 끝난 여행

평창에 행사가 있는 여자친구의 로드매니저를 자청해 평창에 갔다. '평창'하면 생각나는 건 육백마지기, 대관령양떼목장, 겨울의 태기산, 동계 올림픽이 전부. 아, 동계 올림픽 하니까 작년 겨울 혹한의 캠핑이 떠오른다. 한겨울에 난로 없이 캠핑했다가 얼어 죽을 뻔했더랬다.

겨울 캠핑을 이어받아 떠오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이효석문학관. 캠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여긴 뭐지? 하고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으나 추위에는 이제 치가 떨린 나머지 차에서 단 1초도 내리기 싫어 그냥 지나쳤던 그곳. 겸사겸사 함께 가보기로 했다. 마침 7월 말, 메밀꽃 필 무렵이다.

메밀꽃은 일반적으로 9∼10월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성장 기간이 짧은 식물이어서 2모작(여름과 가을)이 가능하기 때문에 강원도 일대에서는 6∼7월도 (여름) 메밀꽃 필 무렵이다.




이효석문학관

설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이효석문학관으로 들어선 순간, 어디선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메밀꽃 필 무렵이 소설이었어? 시집인 줄 알았는데.'


음...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초중고 국어 교과과정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지만 평소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졸업과 동시에 까먹을 테니까. 솔직히 나도 소설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메밀꽃 필 무렵을 다시 읽는다는 기분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이효석문학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효석의 생애와 그의 문학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설 줄거리도 기억 못 하는 판에 이효석 얼굴을 기억할리 만무하지만 왠지 이효석하면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 푸근한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였다.(말하고 보니 故 이외수 소설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이효석은 내 고정관념을 산산이 조각을 냈다. 문학관에 전시된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모. 던. 보. 이. 누구보다 동양적일 거라 생각했던 내 상상과 달리 서구적인 스타일의 모더니스트였다. 실제로도 이효석은 서구 문물을 동경했고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보헤미안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한 방구석에 박혀 종일 글만 쓸 것 같았는데 글 외에도 예술분야 전반에 재능이 있었고, 특히 음악적 능력이 뛰어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단다. 그야말로 '조선의 만능엔터테이너' 였던 것이다.

이효석의 작품으로는 교과서에 나오는 메밀꽃 필 무렵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도 습작기부터 동반자 작가* 시절까지 (괜스레 이효석 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처음 보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래,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작품 하나만 쓰시진 않았겠지. 안 그래도 요즘 비슷비슷한 장르의 트렌디한 소설에 싫증이 나있어 소설을 멀리 하고 있던 참인데, 이참에 안 읽은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레트로 갬성으로.

*동반자 작가 :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당시 공산주의 운동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으면서 혁명운동에 동조하던 작가를 가리키는 용어
이효석문학관 매표소를 지나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뷰=평창 봉평 뷰
이효석문학관 (※내부 촬영 불가)
이효석문학관 주변 정원과 인증샷 포인트
이효석 동상


달빛이 내린다, 샤라랄라랄랄라~

이효석문학관 옆 갬성 공원, 효석달빛언덕에 도착했다. 사실 이효석문학관을 알게 된 것도 다 효석달빛언덕 때문이었다. 잠시 작년 겨울 캠핑 추억을 소환해보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이효석길(이효석 문화마을 도로명)을 지나게 됐다. 그 일대가 이효석 문화마을 인지도 모르고 달리고 있는 도로가 이효석 길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초원 위 바람개비와 커다란 당나귀 동상에 시선이 사로 잡혔다. 뭔가 특별한 곳임을 직감해 바로 검색해보아 이효석문학관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날이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바람개비는 휑휑, 당나귀는 덩그러니 외로워 보였던 겨울과는 달리 여름의 효석달빛언덕은 인증숏을 찍는 사람들이 사람들이 바람개비 사이사이 바람개비인 척 서 있었고, 본디 전망대인 당나귀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드나들어 활기찼다. 작년 겨울 스치듯 지나가며 당나귀를 봤을 땐 '뜬금없이 웬 당나귀냐? 안 어울리게.' 라며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효석문학관에 다녀온 이제야 그 답을 알고 나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었다.(메밀꽃 필 무렵에 당나귀가 나온다.)

효석달빛언덕 입구
효석달빛언덕 가는 길
달빛나귀 전망대
계단을 올라가 창문(나귀의 눈 부분)으로 가면 효석달빛언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나귀와 함께

효석달빛언덕은 단순히 갬성팔이만 하는 건 아니고 이효석 생가도 있다. 정확히는 실제 살았던 터는 아니고 고증을 바탕으로 생가를 재현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실제 생가는 원래 모습을 잃은 상태라고 한다. 생가 옆에는 근대문학체험관이 있었고(문이 닫혀있어 패스~) 그 뒤 정원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평양에서 거주했었던 집도 재현되어 있었다. 이름은 '푸른집(BUISH HOUSE)'. 내부를 실제처럼 꾸며놓아 이효석 작가가 잠시 외출한 사이 집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입구에서 나귀와 함께 보이는 이효석 생가
깔끔하게 재현된 이효석 생가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 새집 같은 느낌, 약간은 일부러 허름하게 연출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효석 생가에서 나귀를 바라보며
덩굴에 둘러싸인 푸른집, 이정도면 초록집이 더 잘 어울릴 듯 / 푸른집 인증숏 포인트

효석달빛언덕 갬성 끝판왕은 푸른집 뒤 커다란 보름달, 일명 '연인의 달'이다. 비록 낮이라 그냥 하얀 동그라미에 불과해 그다지 갬성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화창한 날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아래(평창이 또 별 맛집이다.) 노랗게 빛나고 있을 달을 상상하니, '달빛이 내린다~♬ 샤라랄라랄랄라~♪' 몽환적, 아니 몽롱해졌다. 아마도 때가 된 것 같았다. 밥때.

낮에는 그냥 하얀 동그라미, 밤에 보아야 예쁠 것 같다


건강한 맛있는 맛

평창 봉평에 왔으니 봉평 메밀을 먹어야 한다. 이 또한 메밀꽃 필 무렵의 영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허생원, 동이의 이름을 딴 식당, 심플하게 지역명 봉평을 내세운 식당 등 이효석 문화마을 내에만 많은 메밀집들이 있었다. 그중 우린 등장인물 이름도 지역명 봉평도 안 들어간 '풀내음'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왠지 메밀 하면 건강식 느낌이고 풀내음이라 하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메밀모듬과 메밀비빔국수를 주문했다. 맛은 메밀이라 그런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싱거운 것도 아닌 그런 맛? 한국사람들은 종종 자극적이지 않다고 하면 맛없는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맛없지 않았다. 누구나 호불호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쫄깃한 메밀 식감에 신선한 채소와 새콤달콤 양념이 어우러지니 입안에서는 그야말로 풀내음이~ 배불리 자~알 먹었습니다!


메밀전문점 풀내음
메밀모듬


< TRAVEL INFO >


[이효석 문화예술촌]

이효석문학관
봉평 남안교를 건너 물레방앗간 뒷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가터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02년 9월 7일 제4회 효석문화제 기간 중 문을 연 이효석문학관에는 선생님의 작품 일대기와 육필원고 유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되는 육필원고와 유품 등은 가산문학 선양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지난 5월 25일 해마다 있는 선생님 추모식에는 미국에 있는 장남(이우현)가족과 차녀가 참석하여 소장하고 있던 선생님의 육필원고와 훈장증을 기증하기도 했다.

효석달빛언덕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2018평창동계올림픽 예술창작 특구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 8월 문을 열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달빛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 체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효석달빛언덕 중앙을 흐르는 정겨운 도랑, 근사한 공연을 만날 수 있는 나귀광장, 그리고 봄부터 가을까지 손님을 맞이하는 메밀꽃. 모든 것이 찾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고 아름답게 물들이는 곳이다.

[관람시간]
 - 9AM-18:30PM (비수기 17:50PM까지)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이용요금(일반기준)]
 - 이효석문학관 2,000원
 - 효석달빛언덕 3,000원
 - 통합권(이효석문학관+효석달빛언덕) 4,500원

[문의]
 - 이효석문학관 033 330 2700 / 033 335 9669
 - 효석달빛언덕 033 336 8841


풀내음
메밀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짚, 황토, 원목으로 지어진 건물과 물레방아, 장승과 같은 소품들은 토속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효석 문화마을 초입에 있어 이효석 문화예술촌 여행을 하기에 좋다.

[영업시간] 매일 10AM-19:30PM (라스트 오더 19PM)
※매주 화요일 정기휴무

[메뉴 및 가격]
 - 메밀모듬 20,000원
 - 메밀비빔/물국수 8,000원
 - 한방편육 25,000원

[문의] 033 335 0034


참고: 다음/네이버백과, 위키백과, 카카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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