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고르는 기준

#9. 게으름을 피워낼 굴뚝이 있었으면

by 송석영


이스라엘과 쏘와 함께 복작이는 생활도 벌써 한 달이라는 말미가 다가오고 있었고, 새 둥지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우스메이트들은 다른 방 침대가 하나 남으니, 원한다면 이 곳에 더 머물러도 괜찮다고 제안했지만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저는 싱글룸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틈틈이 다프트 사이트(아일랜드 집 구하기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좋은 곳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뷰잉 요청 메일을 보내곤 했지요. 이제는 정말 알을 낳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구해야 했기에 신중하고 싶었는데... 사실 ‘신중’이라는 단어는 선택지가 많을 때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에 더블린에서 집을 구할 때는 이 단어가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뷰잉 요청 메일에 답장조차 오지 않았지만 웬일인지 조바심은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에게 있어 ‘집’이라는 것의 활용도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집’이란 그저 부모님이 저에게 공짜로, 무려 한 칸씩이나 내어준 공간이라, 내 공간이긴 하지만 엄마가 불쑥 노크하지 않고 들어와도 딱히 침범을 책망할 수도 없는 사적 공공재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곳 더블린에 오고 나서는, 비록 하루살이 같은 노동일지라도 밥숟가락 양만큼 싹싹 긁어모은 돈으로 나의 영역만큼은 철저히 지켜낼 수 있었지요. 저에게 ‘집’이란 귀걸이라든지 사회적 마스크라든지 제가 매일 착용하는 장신구를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할 만한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순도 100% 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 자고로 본연의 나란, 이틀쯤은 샤워를 하지 않아도 괜찮고, 하루에 정해진 사회성 할당량이 있어 그것을 일찍 소진하게 되는 날이면 바로 돌아와 배터리 충전이 요망되는 존재. 가끔은 방 밖으로 한 발자국조차 움직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홀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광합성은 필수요소가 아닌 생물이지요.


이에 더불어, 시티 센터에서 그래도 가까웠으면 좋겠다거나 아이리쉬 10대에게 감자를 맞고 싶지 않으니(실제로 어떤 한국인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걸어 다니기에 안전한 동네라거나 하는 위치적 요인에 대한 소망도 충족시켜야만 했습니다. 더블린에 두 달 정도 있어보니 다행히 좋은 동네와 위험한 동네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더블린은 구역이 숫자로 나뉘는데, 그중 짝수 지역, 다시 말해 리피강 기준 강 아래쪽이 비교적 치안이 좋은 동네라고 합니다. 악명이 높은 지역은 북쪽 Summer Hill, Mount joy, Fairview, 남쪽에서는 Tallaght라고 불리는 동네인데, 사실 잘 생활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다만 본인이 치안에 대해서 걱정이 큰 편이라면 피하시길 권유드립니다.) 그중 안전하다는 동네만을 공략하여 대략 30개는 넘게 메일을 보낸 것 같은데 집을 보러 오라는 답장을 받은 곳은 단 두 곳. 둘 다 시티센터에서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노숙자가 될 판에 그 마저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는 Dundrum이라는 부촌에 있는 하우스 주거단지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창동 느낌이라 할까요? 아일랜드 유학생 모임 카페에 주인이 직접 이제 막 인테리어를 마치고 있는 단계라는 설명과 함께 올린 파릇파릇한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새 집이라 처음 입주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을 것 같고, 청결성에 대한 문제도 없겠지만 주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뭐 각기 장단점이야 있겠지만 엄마랑 같이 살아도 가끔은 눈치가 보이는 마당에 집주인과의 동거는 더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복잡한 주소를 구글로 검색해서 겨우겨우 찾아갔더니 예전 홈스테이 때의 마을을 상기시키는 키가 작은 주택가들이 연이어 보였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니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이며 저를 맞아줍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니스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새 집의 내음은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두루뭉술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문 앞에서 마주친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귀여운 두 아이가 ‘누구세요?’하는 올망졸망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한국인이었고 식탁에 앉자마자 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더블린엔 언제 왔는지, 얼마나 머물 건지, 이왕이면 6개월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도 덧붙이시고, 학원은 어디인지, 나이는 몇인지 등등 고가의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꽂고는 저에 대한 정보를 아주 살뜰히 종이에 적으셨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임에도 아줌마라는 단어보다는 센 언니의 느낌이 물씬 들었습니다. 그리고 방을 보여주셨는데... 하늘색 벽지로 사방이 뒤덮여있어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감각이 피부에 맞닿는 듯했고, 파란색 침대는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폭신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붙박이 옷장, 새하얀 책상과 의자라니. 창문을 열면 아늑한 정원을 볼 수 있는 2층 방이었습니다. 내일까지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더 있으니 결정된 뒤 연락 주겠다는 주인의 말을 뒤로한 채 보랏빛 노을 아래 깔린 오솔길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예쁘고 깨끗하고. 정말 다 좋은데. 이상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 수잔. 난 나쁜 남자야. 당신처럼 순수한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난 당신을 결국 더럽히고 말 거야!’라고 절규하는 고전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왠지 청소를 매일 미친 듯이 해야 할 것만 같고, 옷가지 하나도 함부로 걸쳐둘 수 없는, 내 지문조차 묻혀서는 안 될 공간 같았지요. 한 편으론,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예쁜 집에서 내가 언제 살아볼 수 있겠어? 하는 속삭임도 들려왔습니다. 그 집에 맞게 내가 변하면 되지! 어딜 가나 누군가와 집을 공유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러다 보면 나도 더 부지런해지고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깔끔쟁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도 걸어보았지요.


다음 날은 Rathgar라는 마을에 있는 집을 보러 갔습니다. 저는 더블린의 Rathmines라는 마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색색 깔깔 원색의 문이 달린 낮은 플랫이 많고, 웬만한 상권이 들어서 있음에도 꽤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Rathgar는 Rathmines의 끄트머리에 위치해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더블린 중심가에서 목적지까지 걸어갔는데, 은은히 날리는 벚꽃 잎이 뭔가 좋은 예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동네에 뭐가 있는지 설렁설렁 구경을 하다가 제가 더블린에서 그토록 찾아다녔던 아기자기한 빵집을 찾아냈습니다. 더블린에서는 주로 슈퍼마케에서 빵을 팔기 때문에 직접 빵을 빚어 파는 곳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집을 보지도 않았는데 저는 이미 동네에 반해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이 다 되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으나 아직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몇 번을 딩동 딩동 벨을 누르다 뭔가 시선이 느껴져 옆을 봤더니 고양이 두 마리가 ‘넌 누구냐?’하는 표정으로 저를 갸우뚱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Dundrum에서 만난 강아지나 아이들처럼 환영의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냥 먼저 살갑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 보았습니다. 이윽고 키가 큰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집 앞에 섰습니다. 그의 이름은 Ian. 본인은 그저 세입자일 뿐이지만 집주인이 게으른 탓에 대신 집을 보여주게 되었다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집이라니. 부엌은 말할 것도 없고 Ian이 보여준 방은 넓긴 했지만 먼지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뷰잉이 끝난 후 집을 나서면서 Ian에게 아주 당당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이 집 너무 마음에 들어요! 꼭 연락 주셨으면 좋겠어요!”


글쎄요. 그냥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사람도 아주 훤칠하고 잘생겼다고 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 듯, 이 집도 그랬습니다. Ian이 집을 보여주면서 나눈 대화는 제 마음을 상당히 편하게 해주었고 동네도 Dundrum만큼이나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Rathgar만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현관에서는 신발을 벗고, 2층 방으로 올라가 나의 모든 치장을 내려두고, 지워내고, 스스로를 충전할 저의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집이 꽤 더러웠는데 왜 그게 그리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결국 나중엔 문제가 되었지만) 그 날 저녁, Dundrum 집주인에게 그쪽이 마음에 든다는 소개팅 애프터 같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직 Rathgar의 Ian이 나를 선택할지 아닐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저는 그녀에게 죄송하다는 거절의 문자를 보내고 Ian의 최종선택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짜잔! 닦고 쓸어 탄생시킨 저의 보금자리입니다.


그리고 3일 뒤, 저는 Ian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도 그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 입주하고 나서 먼지투성이인 카펫 때문에 꽤 비싼 청소기도 새로 장만하고, 침대 진드기 때문에 갖은 가루약을 뿌리고 굿을 하듯 소금을 쳐대며 개고생을 했지만 마침내 지금은 한국에도 존재하지 않는 저만의 안락한 영역을 창조해냈습니다. 여전히 부엌이나 거실과 같은 공용공간은 더러운 상태이지만 마음은 왜 이리 편안할까요. 이 곳에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실컷 듣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가끔은 부족해진 감성도 만땅 채우며 게으름을 실컷 피우렵니다. 그것이 따스히 알들을 품어내어 뭐든 건강하게 부화시킬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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