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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May 30. 2018

SuperValu 이야기(1)

#11.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


 드디어 첫 출근. 기대에 잔뜩 부풀어 가게에 도착했는데 저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다들 아이리쉬였고 그 사이에 저 혼자만 외국인이라 ‘뭐지 이 상황은?’ 싶었지만 어쨌든 반가이 인사를 건네고 이래저래 대화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갑자기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시방 영어가 맞는 거여? 싶을 정도로 그들의 대화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학원에서 의사소통에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저였는데, 그건 단지 명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얘기하고 다국적 학생들의 각기 각색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선생님의 출중한 능력 덕분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렇게 처음으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Irish accent’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맙소사! 이 아이들과 어떻게 함께 일하지? 그렇게 대외용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끄덕거리는 동안 뇌는 구겨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SuperValu는 영국의 Tesco, Lidl과 같은 형식의 아일랜드 대형 슈퍼마켓으로,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름 큰 회사라 첫 교육 시 매뉴얼이나 성희롱에 대한 교육을 받고 꽤 많은 양의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최저보다 높은 시급, 또 2주 전에만 제출하면 언제든 Day off를 사용 가능, Holiday는 한 달 전에만 작성하면 봄, 여름, 가을 1~2주씩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꽤나 좋은 조건이라 첫 교육 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날 불렀던 쾌재는 다음 날 정식 첫 출근에 외마디 비명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첫 아르바이트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스무 살 때 빵집에서 처음으로 시급 3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돈을 번다는 건 듣던 대로 쉬운 일이 아니 구나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더블린에서의 시급 €9.68(약 13,000원)짜리 첫 아르바이트. 외화 벌이는 정말이지 딱 높은 환율만큼의 고통을 주는구나 아주 사무치게 느끼게 되었지요.     


 첫 근무는 직원 담당 매니저 Dorota의 교육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처음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물어보라며, 다들 친절히 도와줄 거라 합니다. 저는 캐셔로 고용되었지만 이 곳 SuperValu에는 셀프 계산대가 있어 손님들이 계산을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빠르게 가서 해결해주는 것이 주 업무였습니다. 일단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 일을 처음 배울 때 정신없고 힘든데, 영어로 알아듣고 말해야 하니 고통이 두 배가 됩니다. 또한 이 곳은 그저 계산만 하면 되는 곳이 아니라, 각종 복권과 담배들을 함께 파는 곳이었습니다. 내가 흡연자였으면 바랄 정도로 어마어마한 담배 종류를 각종 악센트로 알아들어야 했는데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담배가 말보로 라이트라 그걸 사는 사람에게는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경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Irish accent’에 익숙해지기였는데 한 번은 ‘오이스’를 찾는 손님을 동료에게 데리고 가 “오이스가 뭐야...?”라고 소심하게 물어봤더니 그가 갸우뚱하며 냉동고에서 얼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 ‘아이스’... 그 후론 긴가민가할 때 그 손님이 말한 단어의 모음 ‘O’를 'I'로 치환하여 머릿속에 입력시키곤 했습니다.     

@ 셀프계산대를 이용하는 손님들
@바코드가 없는 제품은 이렇게 스크린에서 검색해서 구매할 수 있답니다.

 덧, 가끔 특정한 제품을 찾는 손님이 있으면 도대체 그것이 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여기 뽀또 파나요?”와 같은 건데, 아일랜드 과자 이름을 제가 다 알 리가 없으니 매번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어리둥절해하며 동료에게 손님을 데려가기 일쑤였지요. 때로는 손님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여러 번 되묻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진 손님의 고성방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누구인가,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근본적인 자기성찰의 시간은 마치 저의 업보인 양 저를 따라왔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한 2개월은 저에게 암흑기와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짧은 문장조차 쉽게 입술 사이를 뚫고 나오질 못하고 심각한 영어울렁증에 걸리게 되었지요. 나는 이 곳에서 완전히 무능한 타지인이구나 인지하고는 갑자기 모든 의욕을 잃고 우울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3개월 차. 어느 순간 조금씩 귀에 익는 담배의 이름들과 늘어가는 눈치로, 이 정도면 최저 시급 정도는 받아도 마땅한 직원이 된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동료들의 다독임이 있었습니다. 첫 출근부터 'SAY NO'(매니저의 추가 근무 요청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를 가르쳐주고 늘상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저를 위해 인내심을 가져준 동료들. 그들과도 역시 100% 소통이 어려워 제가 슬금슬금 피할 때도, 동료들은 굳이 꼭 저에게 다가와서 “Hey Song!” 살가운 인사와 함께 농담을 걸어주곤 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저도 자신감을 서서히 찾아가기 시작했고, 지난해 12월에는 Best Employee로 뽑히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간 제가 나름 이루었던 성과들은 어느 정도 이미 가진 기본 발판에서의 도약으로 이룩한 것들이었다면 이번엔 아주 나뒹굴어 떨어진 함정에서 거친 밧줄을 잡고 차근차근 올라와 드디어 지반을 딛고 선 기분이었습니다.      


@ Song의 Checkout 100% 달성을 기리며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서 응당 느낄 수 있는 사소한 멸시나 소통의 한계에 맞닥뜨릴 때면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서 고생 끝이 아니 구나 뼈저리게 실감하며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지요. 그래도 따박따박 새로이 쌓이는 유로 잔고를 주 단위로 확인하며 버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되어보진 못했던 것 같은 'Best employee'의 명예를 먼 반대편 땅인 더블린에서 안아보는, 이제야 면접에서 “당신이 이룬 최고의 성과는?”이라는 질문에 회사가 원하는 대답을 할 자격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경험이 빚어진 듯합니다. 사실은, 이제 그런 것쯤은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간 제가 지니고 있는지도 몰랐던 담대함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와 저에게 표면적인 용기마저 주었다는 것. 그래서 더블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한국에 돌아가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하고 느꼈던 조급함을 약간은 떨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타지에서도 이렇게 꿋꿋이 버텨왔는데 조국에 돌아가서 뭔들 하지 못하리 하는 그런 새로운 부류의 자신감을 충전하게 된 제 자신을 참으로 오랜만에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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