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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n 06. 2018

SuperValu 이야기(2)

#12. 다섯 가지 관점으로 본 나의 일터


 더블린 Talbot street에 위치한 SuperValu. 저는 이 곳에서 일하면서 다섯 가지의 관점으로 이 매장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일터로서의 SuperValu. 앞서 언급했듯 아일랜드 최저 €9.25(2017년 기준)보다 약간이지만 높은 시급이 만족스러웠고 일요일에 일하면 1.5배, Bank Holiday와 같은 휴일에 일하면 2배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지정된 Holiday 기간에는 페이도 따로 챙겨준다는 것(한 주 당 20시간으로 계산하여 같은 시급으로 지급)을 나중에 알게 되어, 여행 중 갑작스레 입금된 ‘꽁돈의 환희’를 만끽할 수 있었지요.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저의 동료들입니다. 첫 출근부터 ‘SAY NO’를 가르쳐준, (매니저의 추가 근무 요청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항상 친절하고 살가운 이들 덕에 찬찬히,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단점을 꼽자면 식사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과 직원 할인이 없다는 것(사실 처음 고용되었을 때 여기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입니다. 이 두 가지만 제외한다면 아르바이트하기엔 꽤나 좋은 조건인 것 같습니다. 간간이 어느 매니저가 다른 지점으로 옮긴다던가, 자회사 내 타 상점들과의 경쟁에서 수상했을 때,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는 직원들을 위한 파티도 열어주는 등 직원 복지도 꽤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WELCOME TO SUPERVALU

 두 번째는 배움터로서의 SuperValu. 드디어 학원 밖에서도 영어를 활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특히, 더블린에 도착하고 처음 몇 달간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Irish accent’와 수년간 아주 체계적으로 다져진 저의 콩글리쉬의 맞대결이 성사된 시점이기도 하지요. 주로 제가 일하는 타임을 담당하는 매니저들은 폴란드, 아일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폴리쉬들의 발음은 잘 들리는 반면 아이리쉬들은 정말 단순한 대화임에도 당최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리쉬들이 말을 걸 때면 “흐흐...” 호흡곤란과도 같은 어색한 웃음으로 그 자리를 피해버리기 일쑤였지요. 나중에 한 아이리쉬 매니저는 제가 다른 폴리쉬 매니저와 농담을 하며 깔깔 웃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는 “나는 Song이 영어를 정말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거야?” 울상을 지으며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하필이면 Friendly 하기로 유명한 아이리쉬들이라, 단골손님들은 물건을 사고 나면 꼭 무언가 한 마디씩 여담을 저에게 건네곤 하는데 조금이라도 잘 알아듣는 날이면 그 날 하루 번 돈을 다 기부하고 싶을 정도로 상당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1년이 조금 지난 지금도 여전히 100% 이해는 무리지만, 그래도 Irish accent와 아주 조금은 친해진 듯합니다.     


저를 가장 많이 괴롭히지만 가장 많이 도와주기도 했던 매니저 Sateeb

 세 번째는 생활의 중심 상권으로서의 SuperValu. 저는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그리운 한국식 집 밥을 해 먹느라 바빴기에 로컬 마켓보다는 아시안 마켓에 자주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이제는 퇴근 전이면 SuperValu 매장을 한 바퀴 돌며 손님들이 자주 사는 것들을 눈여겨봤다가 집어가기도 하고, 특정 제품의 세일 주기를 꿰뚫어 보고는 쓸어가는 다소 주부 같은 면모를 지니게 되었지요. SuperValu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건 역시나 술. 대낮에도 맥주 한 박스는 기본이고 한 손에 쥘 정도로 작은 위스키도 불티(특히, Negan of Smiroff)가 납니다. 가장 신기했던 건 각종 공공요금 납부가 이 슈퍼마켓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통신사 상관없이 모든 핸드폰 크레딧, 전기나 가스 요금 등등. 그 외에 스포츠나 콘서트 티켓조차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것들이 은행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이루어져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일까 의문이었지만 아일랜드에서 ‘슈퍼마켓’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다른 워홀러나 학생들보다 더 많이 배워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다잡아 봅니다.     


@GLUTEN FREE PRODUCT

 네 번째는 관광지에 위치한 슈퍼마켓으로서의 SuperValu. 제가 일하는 SuperValu는 호스텔이 즐비한 시티 센터에 자리 잡고 있어 손님 중에 관광객 비율도 꽤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매장보다 훨씬 일찍 열고 늦게 닫는 ‘이 구역 주요 매장은 나야 나’ 정책을 펼치고 있었지요. 제가 여행객의 입장일 때는 여행지의 마트에 방문할 때 물이나 음료, 기껏해야 맥주나 간식거리들을 간단히 사서 나갔던 것 같은데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은 스테이크라든지 감자와 같은 식재료들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서 저에게 내밉니다. 유럽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가더라도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 다니고, 저녁도 숙소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가끔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들이 찾고 있는 물건을 손짓 발짓으로 아주 애절하게 설명할 때가 있는데, 보통은 아이리쉬 동료들보다 저를 포함한 다른 외국인 동료들이 그들의 의도를 빠르게 캐치하고 물건을 찾아줍니다. 그것은 아마 외국인 vs 외국인이기에 통하는 텔레파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10:00pm 이후에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

 마지막은 범죄의 온상지로서의 SuperValu.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 것 아닌가요?’하고 물을 수 있지만 현실은 선정적이기까지 합니다. Talbot street은 시티센터와 가깝지만 노숙자, 술 취한 사람들, 인종차별적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10대들도 많은, 더블린 내에서도 악명 높은 동네 중 하나입니다. 매일이 도둑과의 실랑이, 복권에 혈안 된 사람들, 10시 이후에는 술을 팔지 않기 때문에 10시 되기 10분 전이면 헐레벌떡 뛰어와 박스채로 맥주를 사려는, 이미 술이나 마리화나에 잔뜩 취한 사람들. 손님과 매니저들이 벌이는 몸싸움은 그저 일상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광경들에 약간 놀랐고, 그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동료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느덧 SuperValu에서 일한 지 1년. 이제는 셀프 계산대에서 물건을 훔쳐가려는 사람들의 손놀림보다도 한 수 먼저 돌아가는 저의 날렵한 동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Security guy는 저에게 “Song. 내가 여러 SuperValu에서 근무해봤지만 정말이지 이런 곳은 처음이야.” 혀를 내둘렀지요. 어떻게 보면 이 곳은 슈퍼마켓이 아니고 각종 범죄를 가까이서 목격하고 처리하는 지구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유럽’이라고 하면 테라스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커피를 마시는, 넉넉해 보이는 외국인들을 떠올리겠지만 저는 이 곳 Talbot street에서 더블린의 어두운 면을 아주 낱낱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라고 해서 우리나라가 가진 어두운 사회와도 그리 다르지 않구나 라는 걸 아주 절실히 깨닫고 있지요. 처음에는 치안이 걱정되어 일터의 위치를 옮겨야 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블린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중입니다. 슈퍼마켓이라는 곳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장 밀접한 장소이기에, 이래저래 아일랜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합니다. 이제는 여행을 다닐 때에도 그 나라의 마트를 열심히 구경하는 직업병이 생겼습니다. 현지인들은 주로 무엇을 사는지, 어떤 과일이나 맥주가 있는지, 한국이나 아일랜드랑은 또 다른 종류의 간식거리가 있는지 아주 꼼꼼하게 말입니다. 새삼 버스정류장에서 저에게 말을 걸어준 그분께 감사스러운 마음이 드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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