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징카 Oct 06. 2019

핀란드 대서사 8 : 자전거 분투기2

핀란드에서는 자전거가 필수품이다.


튼튼한 자전거를 얻어 신이 났었다. 빨간 색의 몸통의 자전거는 기어까지 조정할 수 있어 꽁꽁 얼은 눈밭에서도 잘 굴러갔다. 그리하여 나와 친구들은 기숙사부터 날리깔리 비치까지의 여정을 시작했다.


기숙사 (Valkkyla)부터 날리깔리 해변 (Nallikari Beach) 까지의 루트


한 십 여분 자전거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이었다. 그때, 갑자기 자전거 발 구르는 것이 어려워 지더니 급격하게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른쪽에서 나와 속도를 맞추던 친구가 멀찍이 앞으로 가며 "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자전거 페달을 굴러도 자전거가 가지 않는 다는 사실에 놀라 멈춘 나는 경악스러웠다. 자전거의 타이어가 자전거에서 분리된 것이다.


핀란드는 굉장히 춥기 때문에, 비록 22분의 자전거 여정이라 지도가 안내하고 있다 한들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여섯 일곱 겹을 겹쳐 입고 나온 눈밭의 거리는 십 오분 넘게 걷는 것이 매우 지친다. 큰 맘 먹고 50 유로를 지불한 나의 자전거가 정말 우스꽝스럽게도 10분의 주행으로 망가졌다. 황당해서 웃음만 나왔고, 친구들도 어이가 없어서 다들 깔깔댔다.


바퀴빠진 자전거는 그 길 위 나무근처에 묶어 두었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하는 수 없이 미카엘의 자전거 뒤에 앉아 날리칼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러운 점은 친구의 뒤에 얹혀서 도착한 날리칼리 비치가 찜찜함을 모두 잊게 만들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바다는 언다. 핀란드 사람들은 바다에서 스키를 타고 있었다. 저 멀리 늘어진 수평선 위로 사람들은 폴을 굴러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파스텔톤의 색깔들로 채워진 곳이었다. 추운데도 따뜻한 느낌이 가득했다. 우리는 등대 위로 올라가 풍경을 보기도 했고, 등대의 벽에 쓰여진 다양한 낙서들을 구경했다.



해가 지고 있는 날리깔리 비치



감격스런 풍경을 만끽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미카일에게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고장난 자전거가 있는 곳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나무 곁에 세워둔 바퀴 빠진 자전거는 그대로 있었다. 문제는 걸어서 족히 40분을 걸릴 거리를 자전거를 들고 가야 하는 것인데, 바퀴가 빠졌기 때문에 자전거가 구르지도 못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한 명은 핸들과 앞바퀴, 한 명은 몸통, 나는 뒷바퀴를 들고 가기로 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냥 걷는 것도 힘든 핀란드에서 자전거를 들고 나르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겨우 시내로 나오게 되었을 때는 이미 우리 모두 지쳐있었다. 기숙사까지 자전거를 들고 나르는 일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근처 도서관에 자전거를 대어두기로 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다음날에 찾으러 와야지 했으나, 일정이 바빠 일주일 뒤에 다시 도서관을 찾게 됐다.


핀란드의 흔한 눈길


터벅터벅 삼십 여분을 힘들게 걸어 도서관 근처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나의 자전거를 찾았는데,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도서관에 가까워 질 수록 긴장감이 더해졌다. 설마 설마, 나의 자전거가 맞는걸까. 


아, 자전거에 안장이 없다.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 분명했다. 

바퀴도 안장도 없는 자전거를 보니 절망적이었다.


그걸 기숙사까지 다시 끌고 돌아오느라 마음 고생을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뻗어버렸다. 


다음 날이었나 나의 사정을 지나가던 네덜란드 사람에게 설명하니, " 오우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네. 근데 얼마 전에 내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자전거가 다 분해됐거든. 그 분해된 안장과 바퀴를 달아줄게." 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더니 과연 자전거국 사람들 답게 호탕하게 웃으며 내 자전거를 수리해주었고, 그들에게 어디서 주어 배운 "당케벨 (Thank you)" 한 마디 했더니 매우 좋아하며 No problem이라 해 주었다.  


50 유로로 산 자전거의 분해와 수리까지 시트콤 같은 여정이었다. 더욱 웃긴 것은, 오울루를 떠나는 날에 나를 대신하여 자전거를 처분해 달라고 기숙사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한국행 비행기를 타 지갑을 열어보니 그곳에 자전거 자물쇠 열쇠가 있었다. 


내 자전거는 지금 어디에 누구와 있을까?


아무쪼록 핀란드에 거주하는 이들이 있다면, 좋은 자전거를 구매할 것, 자전거를 잘 관리할 것을 말해주고 싶다. 진심이다.

이전 07화 핀란드 대서사 7 : 자전거 분투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