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징카 Dec 05. 2018

 핀란드 대서사 6 :  체코인들이 만드는 구절판

맛있는 저녁 식사와 아쉬운 대화

시작하는 핀란드 대서사 06의 이야기는 사랑스러운 체코 친구에 관한 것이다.


사실 멍청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체코가 어딨는지 몰랐다. 그들이 섹시한 발음으로 From Czech Republic 이라고 자신을 소개 할 때 그곳이 어디야라고 묻기 미안하여 애매한 미소를 감추려 했다. 체코는 그 유명한 프라하를 수도로 하는 유럽 중앙에 위치한 국가였고, 그 나라에서 온 모니카와 얀, 에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 되었다. 


모니카를 처음 만난 것은 기숙사 오또낄라 자전거 창고 앞이었다. 자전거를 들고 낑낑거리는 나에게 친절하게도 창고 문을 잡아주며 웃던 여자와, 창고 안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있던 남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둘이 바로 모니카와 얀이었다. 둘은 내가 만난 커플 중 가장 사랑스럽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둘은 잘 어울렸다. 자전거 창고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나는 가끔 그들 사이에 끼어서 둘 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친구 1 정도가 되었다. 


어제는 체코 음식을 해줄 테니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자며 나를 초대해주었는데 "한국음식"으로 대표될 수 있는 음식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끝에 뜬금없이 궁중요리 구절판을 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대체 왜 하필 구절판을 만들었을까 싶지만은 아마 비교적 재료를 구하는 것이 쉬워서 였던 것 같다. 


사실 아주 능숙하게 칼질을 하는 얀과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일을 처리하던 모니카가 없었다면 구절판 따위 없었을 것 같다. 야채나 그릇에 담아 한국 음식이라고 소개할 번 하였다. 얀은 정말 능숙하게 채 썰기를 다했다. 그냥 나는 다시 어제와 같이 외국인이 한국음식 만드는 장면을 멍하게나 쳐다봤고 '오.. 잘하는데.. ' 하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냉동 새우와 파프리카를 사오는 것을 까먹어서 사실은 구절판이 아니라 칠절판이 되었으나 러시아 슬로비키아 친구들이 자기네 음식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양새와 맛인지라 신기해하고 맛있다며 체코 사람들이 만든 한국음식을 즐겁게 먹어주었다. 나는 괜히 내가 만든 것도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져서 다행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러시아 언니들이 들고 온 것은 우리나라 감자떡이나 똑같았고 체코 음식이라던 브람브랔(신원미상)은 우리나라 감자 녹두전 같은 것에 햄이랑 튜나를 더해서 튀긴 것 정도를 상상하면 되는데 바삭하게 튀겨서 내는 것이다. 세계 음식 각축전이라 할 만했으나 어쩐지 익숙한 맛이었는데, 슬로바키아 얀이 너네 다 배불러서 아무것도 못 먹을 때 팬케익 해주겠다며 농담하던 그 팬케익은 사실 진짜 생애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크레페처럼 얇게 팬케익을 굽고 바나나를 썰고 요거트랑 뭐를 섞었는지 기절할 것 같은 요거트 크림과 살구잼은 미친 맛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걸 먹을 때 얀이 너무나 진중하게 자신의 미국 여행 썰을 (정확히는 토바코 따위) 풀고 있어서 깝죽거리면서 말할 수 없었다. 대신 "이거 진짜 맛있다." 한 마디하고 마지막 건 내가 주워 먹었다. 


그런데 속상하게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동양스러운 무언가를 접하기만 하면 게이샤가! 스시가! 라고 하기 때문에 내 나라를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서양인들 역시 동양에 대한 많은 호감과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동양적인 모든 이미지는 일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밥=스시, 젓가락=스시, 아리랑을 불러주어도 = 게이샤 라했다.


그러한 반응에 모니카만 살짝 입을 삐죽이며 한국은 다르잖아, 일본이랑 달라,라고 말할 뿐이었다. 모니카는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었다고 했다. 일본어를 곧잘 적었으며 일본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동양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인지 모니카만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다르다고 했다. 


그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한국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란 일본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선의였지만 일본,중국과는 차별되는 한국만의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알리는 것에는 어려움과 답답함을 느꼈다. 


이 날의 국제적인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앞으로의 나의 작은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됐다. 남은 핀란드에서의 생활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을 것 같았다. 그때 어영부영 넘어가기 보다는 확실하고 친절하게 한국의 아이덴티티와 동양의 문화에 대해 말해주기로 다짐했다. 


아시아의 나라들은 각기 특별한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동아시아의 한국,중국,일본 중 어느 하나의 나라가 다른 나라의 문화까지 모두 대표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걸 안다는 것은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임을 분명히 전달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북쪽에 위치한 유럽, 핀란드에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스무 몇 해 동안 한국인으로 살아 온 나조차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해외에 나오니 한국은 곧 나였다.


때로는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내가 가졌던 편견을 덜 수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나또한 그들이 가진 편견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얀과 모니카의 지분이 8할인 8절판 


이전 05화 핀란드 대서사 5 : 쿠킹 클래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