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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집 Nov 22. 2019

좋은 어른이 될게요.

10대의 뇌

가르친다는 것. 아니 배운다는 것. 도난. 폭력. 담배. 일탈. 집단 괴롭힘. 10대들을 만나면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적절한가. 나의 개입은 충분히 민주적인가. 나의 간섭은 동료성(性)을 무너뜨리진 않는가. 성(性), 나이, 학습량, 지위 따위에서 비롯되어 만들어진 권력을 (무)의식적으로 휘두르는 것은 아닌가. 피할 수 없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 십여 년 전 누군가 내게 “누군가를 정확히 사랑하는 행위에는 해부학적 이해도 포함한다.”는 말을 건넸고, 그 말을 신뢰하기에 나는 〈10대의 뇌(프랜시스 젠슨 외, 웅진지식하우스)〉를 집어들었다.           

첫 번째, 인간의 뇌는 가소성(可塑性)이 높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 어떤 정보들에 주로 노출되느냐, 어떤 경험들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뇌는 ‘만들어질 수’ 있다. “길을 찾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해마, 그중에서도 공간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커져 있”고, “손가락을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첼로 연주자들은 운동겉질이 강화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략) 그렇다면 ‘가소성’이란 ‘학습’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p.102).” 10대의 뇌는 아동기 못지않게 만들어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며, 이는 학습과 미디어 사용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프렌시스 젠슨은 “10대의 뇌는 “학습의 욕구로 충만해 있”으며,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p.26)”고, “정보를 대단히 중요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실제 자료가 있으면 10대와 대화를 나누기 쉽다(p.28).”고 주장한다. 내가 현장에서 계속 발견하며 고무되는 특징이기도 한데, 10대들은 기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매우’ 높다. 단순히 신기하고 낯선 이야기들에 흥미를 보일 때도 하지만, 자신들의 삶과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에 관련된, 그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마리들이 담겨 있는 이야기들에 눈을 반짝거리는 태도를 종종 경험했다. (이런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엎드려 자도록 하는 교육과정은 범죄에 가깝지 않은가.)     


“어떤 정보가 더 자주 반복되고 재학습될수록 뉴런도 더 강해지고, 뉴런 사이의 연결도 잦은 왕래로 다져진 숲길처럼 변한다. 여기서 핵심은 ‘빈도’와 ‘근시일’이다. 무언가를 배운 다음에 그것을 더 높은 빈도로, 그리고 되도록 근시일 내에 다시 떠올리거나 사용할수록 지식은 더 견고해진다(p.105).” 10대의 뉴런은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함으로써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복되는 정보에 집중하고, “실제로 장기증강은 10대에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성인기보다 10대 시절이 무언가를 기억하기 쉽고, 일단 기억하면 그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p.111).”     

그렇다면 (쪽지)시험을 자주 보는 게 학습에 도움이 될까. 그런데 공부가 누군가가 정한 지식 체계를 일방적으로 잘 전달받는 능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작동하는지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인지 학습과 실제적인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방식의, 이를테면 프로젝트 학습이 보다 유효하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전제가 있는데, 활동과 인지 학습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인지학습이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활용되고, 활동은 습득한 이론들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운 것을 활용하고, 활용하면서 배운 것을 확인하는 빈도와 근시일.      


10대의 뇌는 가소성이 (상대적으로 더) 좋을 뿐만 아니라 “성인의 뇌보다 보상의 느낌을 더 많이 받고, 도파민의 분비와 반응” 역시 강하다. “사춘기가 자극 추구와 관련되는 이유도 이것”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뇌에서 “자신의 행동을 저울질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마 바로 뒤쪽 이마엽인데, 이 영역은 뇌에서 가장 늦게 발달한다. (뇌는 뒤통수에 있는 후두엽부터 발달해 앞쪽으로 향한다.) 때문에 10대의 뇌는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의 속도가 크기는 높으나(그래서 학습도 잘할 수 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적절히 판단할 수 없다.     


학교 폭력과 집단따돌림, 반복되는 도난 사건도 자신의 행동이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뇌의 부분(이마엽)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성숙한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위험한 행동에 대해 과장된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또래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의 행동에 뒤따르는 결과를 정확하게 평가하지도 않는다(p.282).” 또한 “이마엽이 다른 뇌 영역과 아직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대해 인지적인 통제를 행사하기가 더 힘들다. (중략) 청소년들은 금지된 일의 유혹을 참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p.143).”한다.      

이는 스마트폰과 같은 미디어 사용과 학교 폭력, 집단따돌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한 연구에서는 게임을 열심히 하면 “작업기억과 시공간 능력에 중요한 일부 뇌 영역, 즉 내후각피질, 해마, 뒤통수엽, 마루엽이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2년에 중국에서 발표된 게임 중독에 관한 연구는 “게임을 하는 청소년은 이마엽으로의 연결성은 떨어졌지만 니코틴 중독 같은 예에서 관찰되는 영역에서의 연결성이 더 높았다(p.230).”고 보고한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분명하고 커다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않으면 중독은 강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도박, 도난, 약물 등.     


때문에 “청소년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선택에 따른 (장기적인) 영향을 유추하거나 통찰이 어렵다는 10대의 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벌은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10대들에게 성인과 똑같은 수준의 형벌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데, 프렌시스 젠슨의 관점에 기반하면 그 역시 10대라는 특수성을 간과한, “이마엽”이 발달했다고 하는 성인들의 “편도체”에 기반한 접근과 판단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우린 여전히 10대를 ‘단지 작은 어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      


“청소년기를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놓인 개별적인 시기로 바라보는 개념이 등장한 때는 고작해야 20세기 중반”이었으며, 슬쩍 지나가는 수준의 언급이었지만 “만 13세에서 만 19세 사이의 연령대를 다른 연령대와 구별되는 별개의 단계로 지칭하는 의미로 10대teenager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인쇄물은 1941년 4월에 발간된 어느 잡지(p.35)”였다. 미국에 ‘고등학교’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인 대공황 시절이었다. 대공황 시대 실업자가 넘쳐나자 그중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을 수용하고 학습을 빌미로 취업 전선으로의 진출을 지연시키는 전략으로서 등장했다.      

〈10대의 뇌〉의 저자들은 끊임없이 두 가지 태도를 강조한다. 하나는 회귀론적 관점에 대한 경계이고, 하나는 “부모, 과학자 혹은 교육자”로서 10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꾸준히 관찰하면서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10대의 그것을 대신해 그들의 ‘이마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호르몬이 발견된 이후로 나머지 20세기 동안 성호르몬은 청소년의 행동을 설명하는 지배적 이론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청소년의 행동을 성호르몬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 이론에는 문제가 있다. 10대가 젊은 성인에 비해 호르몬 수치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청소년은 호르몬에 그저 다르게 반응할 뿐이다.(p.43)”     


뇌 역시 마찬가지. 저자들은 “인간의 뇌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과”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연구에 사용되는 기술, 영상의 선명도, 실험 표본이나 설문 대상의 선택 등 이것저것을 신중하게 따져야 하고, 마지막으로 주어진 뇌 영역과 특정 인지 기능 사이에 일대일 대응 관계를 찾아내고픈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한마디로 그런 대응 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p.305).” “뇌의 역할을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생물학적 시스템과 맥락으로부터 구분하여 분석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p.305)“하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뇌를 비교하는 챕터에서는 좀더 흥미롭게 이 같은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는 조금 다르다. 남성의 뇌는 여성의 뇌보다 조금 크지만, 뇌간은 여성이 남성의 그것보다 더 크다. 남성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 각각 반구 내에서 뉴런의 연결이 활발하지만 여성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 사이 뉴런의 연결이 반구 내 연결보다 훨씬 더 활발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성과 여성에 대해 얘기할 때만큼은 해부학적 차이만을 가지고 뇌 기능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실 어리석은 일이다. 남녀 사이에 신경해부학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p.248)”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계속 주목하고 있을 것’(p.319)”을 요구한다. “10대는 잘못을 저지르면서 배우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성숙해지니 부모는 그들의 ‘성숙한 뇌’ 역할을 해주면서 때로는 현명한 조언자가, 때로는 말이 통하는 친구가 되어야(p.11)”하고, “비웃거나, 비판적으로 말하거나, 못마땅해 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는 대신 “아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p.27).” 게임처럼 성적 행동과 감정적 행동을 담당하는 편도체에 강하게 전달되는 자극에 대해선 “분명한 경계를 정해주는 것이” 좋다.      


자율성과 주체성. 내가 한계를 정해주는 것, 대신 판단해주는 행위는 이마엽이 조금 더 발달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이 어른이랍시고 휘두르는 권력이 아닌지 자문하고 싶을 수 있다. 저자들의 다음 답변은 이 같은 자기 의심에 대한 완벽히 모범적인 답안이다. “자녀가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충고와 설명, 그리고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최고의 도구다. 내가 두 아들을 키우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아무리 산만하고 흐트러져 보이고, 허구헌 날 학교에서 과제물 챙겨오는 것을 깜빡하는 아이라 해도, 그 아이는 늘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의 모든 어른들을 계속해서 판단하고 있다(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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