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하는 것까진 몰라도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 정도는 잘 알아야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로 일하다보면 별의별 질문들을 받게 된다. 생각해보면 직장이라는 건 인생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보니 당연하다. 특히나 대기업이 아닌,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는 스타트업(=작은 회사)이니까. 이 회사가 (스타트업은 사실 매출이 중요한게 아닌데도) 매출은 얼마인지, 그래도 그나마 스타트업에 대해 좀 안다면 투자는 어디에서 얼마나 받았는지(하지만 이것도 사실 기사에 다 나와있다), 연봉은 얼마인지(스타트업에 연봉 테이블이 있을리 만무하고..이 씬에서의 연봉은 말그대로 역량껏이다. 거기다 JD를 보면 그 회사가 보상에 신경쓰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말고도 정말 별의별 질문들이 쏟아지곤 한다.
그러다보니 사실 사람들이 이미 다 나와있는데 그걸 얼마나 잘 확인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또 시야가 좁고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야말로 설득하기 가장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기는 아예 대화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 다음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어떤 회사는 워라밸을 보장하는대신 평균 수준의 보상을 제공하고, 어떤 회사는 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보상을 제공하는대신 퍼포먼스 지향적이다. 공격적인 보상과 워라밸이 같이 가기는 쉽지 않다.
또는 이제 막 각광받는 시장을 개척하는 일은 동시에 레퍼런스가 많지 않고 나도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본인이 직장, 커리어, 일에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그래서 더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서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어떤 건 절대로 견딜 수 없는지이지를 아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그 누구보다도 그간 내가 제일 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간 내가 했던 행동들은 이것도 저것도 원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실행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한 격이었다.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까지 알 수 없다면 가장 견딜 수 없는 게 무엇인지라도 알았어야 했다.
거기다 인생은 내가 위에서 예시로 든 '보상 VS 워라밸'처럼 극명하게 Trade Off 할 수 있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또 엄밀히 따지면 사실 보상과 워라밸도 트레이드 오프의 대상은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고민 없이 충동적으로 내가 견딜 수 없어하는 것들(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 내가 될 수 없는 캐릭터들을 가진 업계 사람들, 디렉팅을 받기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나의 성향 등)을 총망라한 연극을 선택했던 것,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연극도 해보지 못한 건 정말 크나큰 실수였음을 채용 일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다.견딜 수 없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삶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삶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나날들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만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것들로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