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담당자로 일하다보면 2
수습기간에 대한 개인적 생각
"3개월의 수습기간이 있고, 서로의 핏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면 수습기간 내에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우리 회사 채용 공고에 적혀 있는 문장은 대략 위와 같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들 물어보신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 말하는 분들도 계시고, 직설적으로 여쭤보시는 분도 계신다
요지는 "수습 기간에 정말 잘리나요?"이다.
당연히 불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회사를 다닐 것인지는 인생에서 나름 중요한 선택을 하는 건데, 거기다 이미 유명하고 좋은 외국계 또는 IT 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넘어오시는 분들, 이미 좋은 스타트업에서 넘어오시는 분들, 혹은 아예 스타트업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 가정이 있는 분들, 첫 커리어를 선택해야 하는 신입 분들 등등 모두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특히나 적은 인원으로 체계 없이 굴러가는 스타트업에서는 무조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스타트업은 더욱 기댈 곳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이 회사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그 부담은 당연히 나도 있다. 실제로 수습 기간 내에 평가 미달로 나가시는 분들,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 중에 외부에서 인력들이 들어오며 기존 인원들이 권고사직 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러니 나도 언제든 소위 말해 '잘릴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는 있다. 그래서 그 걱정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잘리지 않는 직장이 있나요?"
물론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은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고는 수습기간 내에 잘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정말로 여러 가지 이유로 '잘릴 수 있다' (나는 이 표현보다는 회사와 핏이 맞지 않는다, 가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잘리지 않는 직장에 가고 싶은 것이라면 냉정하게 말해서 당연히 스타트업에 오면 안 되는 것 같다. 동시에 정말로 잘리지 않는 직장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실제로 근로자를 '해고'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할 수는 있다.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도, 인수합병 될 수도, 매각될 수도 있다. 또는 내 팀이 바뀔 수도, 내가 하는 일이 바뀔 수도, 팀장이나 팀원이 나와 정말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러니 결국 내 경쟁력을 스스로 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물론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말임을 알고 있다. 기회의 평등이 담보되지 않고, 실은 담보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이 회사에선 여러 이유들로 '정말로 잘리게 된다'해도 다른 회사를 찾아보면 되니까. 한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회사에서든 일할 수 있는 나만의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조심스럽지만)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 먹고 나니 나도 현직장에서의 수습기간을 어느 정도의 부담감을 안은 채로, 동시에 나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마칠 수 있었다.
비단 회사뿐만이 아니다. 내 삶을 좌우할 절대적 권위를 어떤 것에게든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그게 사람일 수도 일일 수도 본인의 꿈일 수도 있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렇게 되면 결국 나에게 좋지 않으니까말이다.
어쩌다보니 또 연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한 선생님은 오디션에서 연기를 할 때면 눈 앞의 심사위원들에게 속으로 "너희를 만족시키러 여기 온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연기를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재수없게 굴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나는 어딘가에는 맞을 수 있고, 어딘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두루두루 맞을 수 있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더 갖춰야 할 것이고, 혹은 더 뾰족하게 자신의 강점을 벼려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