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원더랜드 오타쿠걸 1장 : 최애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어 6
지난 챕터까지 덕질 소비의 기원과 각종 덕질 소비에 대해 다루어 보았다.
2020년대에 들어 덕질은 Z세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라이트해지고 점차 일상과 동기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SNS를 통해 표현하는 방식이 발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부분 및 다른 사람과 나누는 부분이 더 중요해지는 것도 알 수 있다. 요컨대, 덕질의 범위가 과거의 콘텐츠 소비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쯤 2023년 현재 일본의 덕질 소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IP들의 브랜드 파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쉬어갈 겸 화제를 전환해 본다.
상기 순위는 일본경제신문에서 발간하는 엔터테인먼트 정보지 '닛케이엔터테인먼트' 2023년 8월호에 게재된 2023년 5월 엔터테인먼트 브랜드파워 순위에서 상위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본 조사는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선택지 없이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질문에 장르 관계없이 떠오르는 콘텐츠를 주관식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IP 이외에도 서비스 플랫폼이나, 애니메이션, 프로야구 같은 거대한 장르 카테고리도 포함되어 있다. 근년의 인기 콘텐츠는 물론 오랜 시간 인기를 끌어온 스테디셀러들까지 다양한 연령층, 성별을 커버하는 인기 콘텐츠의 폭넓은 지형도를 볼 수 있다.
리스트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만화/애니메이션, 게임, 아이돌, VTuber 등 덕질과 관련된 콘텐츠이다. 브랜드 파워 조사는 매 조사 시마다 해당 콘텐츠의 노출 정도에 따라 순위가 다소 변동되는데, 덕질 관련 콘텐츠 외에도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횟수가 많은 플랫폼이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 필자가 주목하는 현재 일본 인기 IP 몇 가지를 발췌하여, 합계 접촉일 수와 합계 지출금액 수치를 포함한 그래프를 작성해 보았다.(코어팬 규모는 일본 인구에 비례해서 산출된 수치이며, 모든 데이터는 2023년 5월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세로축은 코어팬의 수. 주관식 형태로 취합된 데이터이므로, 실제 팬의 수 외에도 호감도 및 인지도의 정도도 영향을 줄 수 있음
가로축은 코어팬들의 합계 접촉 일수의 총합으로, 팬들이 얼마나 해당 콘텐츠를 접하고 있는지 터치포인트의 양이나 계속적인 노출 정도 짐작 가능
원의 크기는 합계 지출 금액으로 팬의 소비 규모, 해당 타이밍의 소비를 유도하는 이벤트 등이 있음을 짐작 가능
몇 가지 콘텐츠 별 추가 정보를 더하자면, ‘최애의 아이‘는 인기가 급상승하던 시기로, 인지도와 팬 수, 소비 금액 등 각종 화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또한, 각 장르의 아이돌들은 콘서트로 소비 금액이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콘텐츠 IP는 장기 콘텐츠는 팬의 유지, 신흥 세력은 타이밍에 따른 화력 극대화를 위해, 계속적이고 적절한 떡밥의 제공이 필요하다. 즉, 엔터테인먼트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어떻게 양질의 터치 포인트를 늘여서 빠져들게 만드는 가에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순위나 수치를 보면 다양한 장르, 작품, 심지어 플랫폼까지 세력 다툼을 하는 구도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단순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Z세대들 사이에서 최애는 바뀌는 것이라기보다는 늘어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섞기 금지 위험(まぜるな危険)"
일본의 세제류에는 종종 이런 경고 문구가 쓰여있다. 서로 섞으면 유해물질을 발생시키는 세제들에 대한 경고문인데, 오타쿠 분야에서는 서로 예상하지 않았던 장르, 대상을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2차 창작 분야에서 밈처럼 쓰이는 말이다. 한편 대조적인 두 장르의 팬들을 붙여두면 서로 자신의 최애가 더 뛰어나다고 여기며, 상대의 취향을 무시하는 등 대립하거나 논쟁이 생기는 것을 빗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같은 2D캐릭터와 아이돌, 배우 등과 같이 3D상 존재하는 실존 인물, 혹은 K-POP과 J-POP 팬덤 사이의 대립 등이 있다. 물론 장르 관계없이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과거에는 복수의 최애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 최애가 속한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덕질계의 상식이 뒤집히고 있다. Z세대 사이에서는 한 장르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장르의 덕질을 하는 경우가 당연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 복수 장르의 덕질을 하는 예를 들어보자면, 쟈니즈와 아메리칸코믹과 해리포터 최애를 가진 사람, K-POP에 J-POP, 2차원 아이돌까지 아이돌 박애주의 등 여러 사례를 볼 수 있다. 보다시피 장르와 국경은 물론 차원까지 넘나 든다.
여기서 다시 Z세대가 접한 시대상을 짚고 넘어가 보자. 현재 Z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불확실성에 대한 큰 불안을 안고 있는 현실적인 세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상이나 동경하는 대상에게도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덕질도 분산투자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매스미디어에서 멀어지며 취향이 세분화됨에 따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인물의 등장은 점점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콘텐츠의 다양성과 접근성만큼은 2000년대 이후 대폭 상승했다.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환경 아래 성장해 온 Z세대는 콘텐츠 수용에 대한 한계치가 기성세대보다 높은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Z세대의 콘텐츠 수용 경향에 대해, 특히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가상인물(2D)과 실존인물(3D) 양쪽의 덕질을 하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덕질의 세계에서 가상인물과 실존인물이란 대상의 자아 유무나 비주얼 등 각각의 기준에서 대척점에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팬이 추구하는 가치나 취향 문제에서 양립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분야였다.
그 간극이 줄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2D나 3D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에 주목해 보자. 원소스 멀티유즈나 미디어 믹스가 당연한 것이 되면서, 성우 아이돌, 2.5차원 뮤지컬 등 가상과 실제를 적절히 섞어주는 새로운 콘텐츠 시장이 대두된다. 성우 팬이 작품에 빠지거나, 작품의 팬이 배우도 좋아하게 되는 등, 덕질을 하는 콘텐츠를 기점으로 현실에서의 최애가 추가되는 시스템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에 더해 최근에는 Vtuber, 버추얼 아이돌 등 양쪽의 장점을 적절히 취하며 차원의 틈새를 이어주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이 경우는 최애가 기점이 되어 다른 차원에 대한 수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덕질 세계에서의 2D와 3D의 경계는 이렇게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리고 Z세대 여성들은 콘텐츠를 보는 넓은 아량으로 오는 최애들은 막지 않으며, 다수의 최애에게 공평하게 열정을 쏟는다.
무언가의 덕질을 하지 않으면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이 오타쿠의 슬픈 본능이다.
한 장르에서 감정적으로 지치거나 힘들어지면 다른 장르로 도피하는 이른바 분산 투자도 결국 덕질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잘 모르는 콘텐츠나 대상일지라도, 우선 배척하거나 뒷걸음치는 것은 결국 오타쿠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손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덕통사고가 당신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실 "섞기 금지 위험"이라는 밈에는 다른 패턴이 존재한다.
"섞기 금지 자연(まぜるな自然)"이라는 것인데, 전혀 상상 못 한 것들을 섞었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좋다는 의미로 쓰인다.
세상은 넓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많다. 슬기로운 덕질 생활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의 덕질을 하는 요즘 같은 시대, 오픈마인드로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은 필수 덕목이다. 아울러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최애들은 막지 않는 소녀들처럼, 가끔은 새로운 장르와 콘텐츠를 편견 없이 접해보고, 좋은 점을 찾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출전 및 참고자료
일본경제신문 '닛케이엔터테인먼트' 2023년 8월호
SHIBUYA109式 Z世代マーケティング | 長田 麻衣 (2023년 발행)
https://xtrend.nikkei.com/atcl/contents/18/00837/
https://xtrend.nikkei.com/atcl/contents/18/00864/00001/
https://prtimes.jp/main/html/rd/p/000000046.0000207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