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원
어린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찰떡같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아주 오래전 느꼈던 그 감정을 다 큰 어른이 되고 다시 느꼈다. 어학원 수업은 주 5일 진행되었는데, 우리 반은 열명 정도였고, 그중 아시안은 나 혼자였기에 더욱 긴장했다. 소심한 탓에 혹시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업은 원서로 진행되었는데, 선생님의 적당한 위트와 균형 잡힌 진행, 그리고 주로 친구들과의 열띤 토론과 조별 과제를 함께 하는 방식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빠르게 친해졌다.
다행이었다.
한국에서는 I형, 외국에서는 E형
혹시나 타지에서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걱정한 탓일까? 그곳에서의 나는 왠지 조금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사회생활에 지쳐 극도로 I형(내성적)에 가까웠던 내가, 아일랜드에서 영어를 할 때에는 이상하게도 활발해졌다. 기죽지 않으려는 마음에 매일 아침 자존감을 스스로 끌어올리며,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모두 잘 어울리려 애썼다.
한국에서라면 학교나 회사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겠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여기는 아일랜드니까, 기왕 유학 왔으니까 영어로 한마디라도 더 해보자" 혼자 다짐했다.
방과 후에는 일부러 "끝나고 뭐 해? 피자 먹으러 갈래?"와 같은 말을 친구들에게 먼저 꺼내며 외향적 모먼트를 연습했다.
영어를 쓰는 나는, 한국어를 쓸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Bestie
학창 시절의 붙임성을 되살려, 이번에는 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친구들까지 섭렵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사람들과 잘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물론 다들 친하게 지냈지만 진정한 내 절친은 두 명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프란체스카, 그리고 멕시코에서 온 매기.
언제부터 그렇게 가까워졌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늘 함께였다.
프란체스카는 같은 반 친구였는데, 첫 수업 때 옆자리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처음부터 말이 잘 통했고, 유쾌하고 다정했다.
매기는 다른 반 친구였는데, 우연히 같이 쇼핑을 하러 갔다가 내가 빨간 코트를 골라주면서 친해졌다. 매기 역시 말도 잘 통하고, 개그 코드가 맞아서 언제나 함께 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앞으로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내 아일랜드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고,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명의 bestie이다.
언어, 역사, 문화
유학이라고 하면 단지 "언어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어학원 수업 과정에도 실제로 아일랜드에 대해서 배우거나,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 같이 토론할 일들이 많았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고, 서로 간의 국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문화 차이를 몸소 느끼는 동시에, 의외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새삼 돌아보고 공감하게 되었다.
서구권이라고 해서 모두가 수평적인 직장 문화를 가진 건 아니었고, 다른 나라 엄마들도 우리나라처럼 자녀 교육에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개그 코드가 외국에서도 통했다......
유학은 언어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보고 느끼고 깨닫는 모든 순간이 나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들은 모두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