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캠퍼스를 혼자 거닐 때면 노래를 듣지 않아도 이어폰을 꽂고 빠르게 걷곤 했습니다. '혹시누가 내게 인사했는데그걸 놓치면 어쩌지?' 하는걱정에서 나온 습관이었습니다.이처럼저는 인사부터가까다롭던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기억할까?'에서출발하여 '더 친해졌다친구가 늘면 체력 관리는 어쩌지?!'까지 가던무궁무진의 고민꾼이었죠.(ㅋㅋ)
그런 제가의도적으로접근한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저희 아버지였습니다!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오히려 저희 가족은 서로 장난도 자주 치고 재미있는 편입니다. 하지만저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꽤나 본인 의견이 확실한 타입이다 보니종종 충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집안은 얼음장이 되고다른 가족들이며칠 내내 불편을 겪곤 했지요.(죄송…)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마음 한 켠에선 아버지로부터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건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셨을 겁니다.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전 그 말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걸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거 봐! 나 아빠 딸이지!!" 할 때마다 아버지가 질색을 하셨거든요.(ㅋㅋㅋㅋ)
그러던 어느 날심각성을 느낀 계기가 있었습니다.여느 때처럼 아버지와 대판 싸운 날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아빠를 공격했습니다. "아빠는 내가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거짓말은 쉽게 들통났습니다.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화목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사이, 그것이 저와 아버지의관계였습니다.
누가 누가 더 잘못했나?
생각해 보면아버지와 저는 늘 서로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충 레파토리는 이랬습니다. '나는 널 위해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그건 쏙 까먹는다', '아빠는 잘못을 인정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등. 둘 다 물로 벨 수 없는 단점만 늘여놨습니다. 사실 전 초반엔 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나보다 세상에 먼저 태어난 선배신데,내가 태어나고 싶다 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 점을 감안하고 자식을 낳으셔야 했던 게 아니냐 하는 심보였죠.
하지만 그건 오늘날 와서야 퍼진 생각이고, 아이를 낳는 게 당연했던 부모님 세대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겁니다. 고생해서 낳은 자식이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배은망덕하기 그지없습니다.(ㅋㅋ)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자면 저보단 부모님이 힘든 환경에서 자라오신 게 맞습니다. 그러니 제가 앓는 소릴 내기 어렵기도 했고요. 어쩌면 부모님은 묵묵히 살아가고 계신 건데 제가 괜한 투정을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게다가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를 해본 적 있느냐?'라고 물으면 딱히 할 말도 없었고요.그래서 나름의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인사 한 번, 밤에 인사 한 번
기존에도 인사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제가 늦게 일어나다 보니 아침엔 아버지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고, 밤에는 제 할 일을 하다가 앉은 그자리에서 인사를 드린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조금 더 정성들여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당탕탕탕. 아침에 늦게 일어난 제가 방에서뛰쳐나오는 소리입니다. 그러곤 산발을 한 채로 현관문을 나서는 아버지께 손을 흔듭니다.약간 일찍 일어난 날이면 거실에 누워서 출근하실 때까지 기다렸고, 뒤늦게 눈이 떠진 날이면 메신저로라도 인사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두었습니다. 밤에는 문이 열릴 때쯤 대기를 타다가 인사를 드렸고, 때로는 근처에 숨어있다가 아버지를 놀래켜 드렸습니다.(ㅋㅋ)
일단 예시로 가져오긴 했는데 언제부턴진 모르겠습니다 ㅋㅋ
그러자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인사가 어색하셨는지, 대충 호응은 해주셨지만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셨습니다. 저는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흐느적거리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딱히 뒤돌아보지 않으셨던 건 기억합니다(어쩔 땐 버스 시간 때문에 급히 나가신것도 있습니다).물론 저 역시어색했습니다.너무 어색해서 멈추고 싶었습니다. 대화를 하고 사는 사이인데도어색해서 '이제 그만 멈춰… 아니야…멈춰…아니야……'를 반복하고 있었죠.(ㅋㅋ)
그런데 점차 현관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대답해 주시는 목소리가 선명해졌고, 설렁설렁 손짓을 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열심히 파닥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인사뿐만 아니라 소소한 잡담 시간도 늘어나게 됐습니다. 버스시간이 애매할 때면 식탁이나 현관에서짧게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결과, 오늘날엔 어떻게 되었냐면……아버지께서 제게문이 닫힐 때까지인사해주고 계십니다! 심지어 요즘엔 뭐로 다투는지 아십니까?누가 더 똑똑하느냐로 다투는 게 아니라누가 더 바보 같으냐로 다툽니다. 근래엔 이런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아빠를 바보로 만들어도 좋으니 뭐든 글 소재로 갖다 쓰라!'고요.
…그렇게 쉽게 바보 타이틀을 따실 생각입니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합니다.(비장)
저는 욕심 많은 사람이라완벽한사람을 원했습니다
이런 일화를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혼내고 나서 밤 몰래 찾아와 연고를 발라주셨다는 둥, 온갖 감동적인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케이스들을 접하며 저는 좋은 부모, 좋은 형제, 좋은 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이 아예 나빴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적인 사람을 원했습니다. '왜 내겐 그런 사람이 없을까?', '그런 사람들은 언제쯤 찾아올까?'하며 주변에 소홀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자연스레 인간관계에 의욕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혜성처럼 뜻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 저와 함께 해주길 바랐습니다.하지만 저부터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대하는데, 어떤 사람이 제게 정성을 쏟고 싶겠습니까?어쩌면 더 빛날 수 있던 사람들도 이런 제 마음을 눈치채고 평범하게 자신을 숨긴 걸지도 모릅니다.
사실 전 인간관계에서 약간의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다가서면 결국 그 사람과는잘친해지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요.(ㅋㅋ) 그래서선뜻 나서지 못하고가만히 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와생각해 보면제가 먼저 나서서 친해진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던 건데괜히 겁만 먹고 친해지려는 시도를 꺼리게 된 거지요. 이렇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 봤음 됐을 것을,그거 하나가어려워가족에게도 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친해진 것 좀 자랑해 보려고이 글을 씁니다.(ㅋㅋㅋ)물론 아버지께도 허락을받고 올리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