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의도적인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최초의 기내 출산 기록은 언제 어디에서 있었을까?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29년에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때는 1929년 10월 26일 토요일이었고, 장소는 미국 플로리다 주였다. 공교롭게도 대공황이 시작된 것으로 치는 '검은 목요일(10월 24일)'로부터 이틀 지난 날이었다. 의사인 토머스 에번스(Dr. Thomas W Evans)는 포커사가 제작한 트리모터(Fokker Trimotor; F.VII)까지 빌려 만삭인 아내 마가렛을 태우고 신축 1년 된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팬아메리카 비행장(Pan American Airfield; 지금은 마이애미 국제공항)을 이륙했다. 비행기에는 부부 외에도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산모의 친정 엄마도 탑승한 것으로 보아 다분히 공중 출산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이륙 후 20분이 지나 마가렛은 기다렸다는 듯 진통을 시작했고 비행기는 데이드카운티 법원 상공을 선회했다.
왜 하필이면 법원 근처를 배회한 걸까?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건물은 1928년에 신축한 28층짜리 마천루였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가 360피트(110미터)에 이르는 이 건물은 카운티 최고층 건물일 뿐만 아니라 한동안 볼티모어 이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남았다. 한마디로 그 지역의 랜드마크였던 셈이다.
110미터이면 어느 정도일까? 1971년에 완공된 31빌딩(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소재. 왼공 때부터 63빌딩이 완공된 1985년까지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었다)와 높이가 같다.
출산이 진행되는 동안 비행기는 법원 주변 상공을 370미터로 빙빙 돌았고 마침내 딸을 출산했다. 비행기는 바다로 나간 다음 비행장으로 되돌아와 착륙했고 모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딸아이의 이름은 에어린(Airlene)으로 정해졌다.
이후로 하늘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지금도 전세계적인 통계가 잡히지는 않는다. 민항사들의 통계는 잡히겠지만 전쟁터에서 난민을 수송하던 항공기에서도 태어날 것이고, 산간도서 지방의 산모가 헬리콥터로 후송되던 중에도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산모를 후송하던 119구급차, 해군 경비정, 경찰순찰차 등에서 아기들은 태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의 항공사들은 어떨까? 확인해본 결과 대한항공에서만 3건이 확인되었다. 1995년 5월, 2008년 5월, 2010년 11월에 있었다. 아기에게 평생 무료 항공권을 선물로 주었다는 소식은 없고 꽃다발과 금일봉이 주어졌다고 한다. 다른 국적사는 아직 없다. 요즘처럼 이렇게 엄격히 임신부들을 기피하는 추세라면 아무 기내 출산 기록을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