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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폭격

언제부터 비행기로 폭격을 했을까?

by 박지욱

1911년 11월 1일 수요일,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의 남동쪽에 있는 타지우라(Tagiura, Tajoura) 오아시스에 주둔 중인 오스만 튀르크 군대의 머리 위로 폭탄 세 발이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아인 자라(Ain Zara)의 튀르크군 병영에도 폭탄 한 발이 떨어졌다.


폭탄은 적군인 이탈리아의 대포에서 날아온 것이 아니었다. 손으로 던질 수 있는, 무게는 1.8kg 나가는 시펠리(Cipelli) 수류탄이었다. 이 수류탄을 누가 던졌단 말인가? 믿을 수 없겠지만 조금 전 머리 위를 왱왱거리던, 연약해 보이는 이탈리아 군의 비행기에서 떨어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던져진 것이다. 작정을 하고 하늘에서 수류탄을 튀르크 군의 머리 위로 던진 것이다. 이렇게 폭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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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폭격에 사용된 시펠리 수류탄


비행기를 몬 조종사는 이탈리아군 항공대 소속의 쥴리오 가보티(Giulio Gavotti) 소위였다. 그는 단엽기 타우베(Etrich Taube)기에 수류탄을 실어 적진으로 날아와 180미터의 낮은 고도에서 비행기 밖으로 투척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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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오 가보티, 사상 최초의 폭격자(bo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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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폭격기가 된 에트리히 타우베 단엽기. 사진은 독일 공군의 타우베 단엽기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저고도 비행에서 조종도 해야지, 적정도 살펴야지, 게다가 한 손으로는 수류탄까지 투척도 해야지, … 무척 바쁘고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류탄이 무슨 목표를 겨냥하고 정조준 해서 던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무엇을 겨냥하고 던지기보다는 무엇이라도 맞겠지 하는 심정으로 휙 던지지 않았을까?


최초의 폭격은 성공했을까? 부상자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실패한 걸까?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수류탄이 탄약고를 맞히거나 병사 몇 명이라도 다치게 만들었다면 큰 전과를 얻었다고 하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


이제 하늘을 나는 낭만적이지만 연약한 비행기도 두려운 존재가 되었으니까. 이제 적기가 날아오면 혹시라도 공격을 할 건지 눈치를 살펴야 하고, 혹시 모르니 몸도 숨겨야 하고 행진도 중단하고 흩어져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이렇게 폭격 자체만으로도, 비행기의 출현 만으로도 심리적인 효과가 아주 크게 생겼다. 이제 비행기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류는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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