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이유

by 백윤

나는 거의 매일이 슬픕니다. 어제 영향받은 일본의 고전(1990년대이지만 난 고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삼인방 그룹이 만든 노래의 필이 이끄는 대로 선글라스를 끼고 밖으로 향합니다. 볕이 잘 드는 작은 카페 앞에 앉았습니다. 아직 쌀쌀하지만 볕이 좋아 겉옷을 벗도록 합니다.


우선 책을 읽었습니다. 번역된 책은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뇌가 금방 집중력을 잃는 다는데, 그래서 백색소음에 조금 더 신경 써가며 어렵게 글자를 읽어나갔습니다. 하늘이 모르긴 몰라도 푸르렀습니다. 선글라스 위로 삐져나온 틈으로도 어렴풋 보였습니다. 나는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덮은 책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고 아까 말한 삼인방의 Baby Blue를 틀었습니다. 후에 하늘을 주시했습니다. 왼쪽 시야에 걸리는 다세대주택 건물은 하얀 벽면에 정사각형 창틀이 층마다 두 개씩 네 행이 깔려 조형미가 있습니다. 어쩐 일인지 오른쪽 건물에서 삐져나온 처마라고 해야 할지, 지붕 끝이 이 하얀 건물의 옥상 라인과 묘한 동일선상을 이루었습니다. 애매하지만 맞아떨어지는 기분입니다. 뒤로는 푸른 하늘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베이비 블루의 경쾌하고 울적한 비트는 기분 좋게 반복됩니다. 나는 왜인지 눈물이 납니다. 이루지 못한, 못할 것들이 나를 외롭게 하는 기분입니다. 고요한 예술의 세계. 맞아떨어져 애환이 없는 평화의 세계. 사랑이 배경을 이루는 담담한 푸른 세상. 선글라스 아래 내 눈꼬리 끝엔 눈물이 맺힙니다. 어째서 외로울까요? 슬펐습니다.


나 혼자서만 너무 대단할 걸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과 불안정한 자기 확신이 이유인 것으로, 돌이켜보니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음악이 만드는 꿈과 같은 세상은 실제로는 내가 일상에서 속할 수 없는 곳이고 오로지 현실과 상상(허구)이 혼재되는 꿈(혹은 코마)의 세계에서만 잠시 방문하고는 다시 뒤돌아 나와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루지 못할 꿈을, 그것도 주변 사람들은 관심을 덜 두어 하소연할 수도 없는 그 꿈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나는 슬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겨울의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바깥공기가 티셔츠 아래 내 팔의 살갗을 스쳐 지나가는 것에 집중하며 노래가 계속 튀어나와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동력에 흘러들어와, 투과해 빠져나가는 감각에 포개어집니다. 나는 그래도 계속, 지속해서 임의로 순간만이라도 할지라도, 꿈에 몸 담그고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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