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은 결혼식을 했습니다. 형제와 그 사람의 배우자까지 참석하는 조촐한 식이었습니다. 식은 적은 사람 수와 다르게 풍성하고 벅차오르는 울음보와도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즐거웠고 나는 특히나 많이 울었습니다.
대본을 준비하자는 아내(결혼 전이니 예비 신부 혹은 나은이) 말을 처음에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은이의 말이 맞는 줄 알면서도 지기 싫은 마음, 다른 방법도 있을 거라는 탐구, 실전에 가서는 운 좋게도 모자람이 없을 거라는 기대로, 나은의 계획을 귀찮은 일로 여기기를 자주 했습니다. 막상 식이 진행되다 보니 대본이 없이는 어쩌면 엉망진창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레트를 깔아 두고 신혼집 거실에서 엉성하게 진행하는 것 마냥 막무가내 결혼식이 되면 어쩌냐는 처형(나은이 언니)의 걱정이 앞서 있었습니다. 우린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우리 결혼식을 마가레트 결혼식이라고, 식전에 불렀습니다.
나은이가 한 줄 한 줄 적은 글귀를 따라 우린 서로를, 만나게 된 계기를, 나은과 나에 대한 퀴즈를 소개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참석해 준 사람들이 우리에게 쓰는 편지도 찬찬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글을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나은의 헌신 아래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알맞게 굴러갔습니다.
나는 나은에게 미리 들려주었던, 22년 11월에 쓴 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벅차올랐습니다. 내가 받았던 예전의 상처들... 외로웠던 기억이 편지를 훑고 내 눈물샘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를 펑펑 울게 만드려고 했습니다. 난 그래서 나은에게 대신 읽어줄 수 있는지 부탁했습니다. 나은은 당신이 직접 읽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내 앞의 가족들은 기다려주었습니다. 나는 한 줄씩 그 편지를 읽었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읽는 중에도 신경이 쓰였지만, 역시나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 눈물은 물론이거니와 콧물이 밑으로 줄줄 새어 코 훔칠 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편지를 읽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내게 축복입니다. 친근한 계기입니다. 나은과 결속을 다지는 전환점입니다. 결혼 전까지는 딩크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쩌면 이해하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년째 동거를 이어왔고 가족끼리만 모여 지나가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수백 명의 확인을 받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너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식사하고, 음료를 들고, 얘기하고, 감동하고 웃는 동안 나은은 내게 또다시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삶의 진정한 동반자, 나를 구원하는 몸짓. 나은이는 내가 가장 닮고 싶고 곁에 두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아이디어 그 자체가 되어, 하얀 원피스를 입고 지상에서 몇 센티는 부양하는 생명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전과 다른 결속력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느끼며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축복해 준 모든 사람들. 지금까지의 내가 있도록 해준 계기들. 나를 상처 주었고 웃게 해 주었던 모든 것들. 그 전부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계기로 이제 예전의 나는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보내드리고, 아프고 괴롭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있음을 켜켜이 느끼려 합니다. 저는 지금 나은과 손잡고 앞서다가 뒤서다가 위나 아래로 살짝 꺾일 삶의 끝으로 걸어가는 중입니다.
- 내가 읽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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