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님의 가르침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였다. 우리 회사가 그룹사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또한 과연 모든 직원이 전원 재택근무가 가능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직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고정관념을 바꿔보기로 한 것 같다. 안 되는 이유보다는 되기 위해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논의해 보기로 했다. 신기하기도 절대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닭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쉬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다.
마치 세상이 망한 것처럼 모든 것이 공포였을 때 몇 가지 트렌드 변화가 감지됐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아내와 내가 함께 재택을 하다 보니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집에 사무환경을 만들다 보니 아내는 가구도 새로 구입하고 후다닥 을지로에 나가서 간접 조명 재료에 인부를 구해서 간단하지만 인테리어 공사도 수행했다.
이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내가 내일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는데.
바로 제주도 집 앞마당에서 아침 향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올랐다.
땅을 구매한 지 꽤 되었는데 집을 언제쯤 지을 수 있을지 예측이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건축 비용은 조만간 상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회사 스톡옵션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건축이 완료 예정인 현재까지도 상장은 감감무소식이긴 하다.
당시엔 바로 건축사를 만나 상담하고 계약서도 오고 가고 했지만 치솟은 건축비와 결정장애로 몇 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건축비가 내려가거나 콘셉트가 보다 명확해지면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혹자는 오른 자재 및 인건비는 다시 내려가지 않으니 바로 지금이 가장 저렴한 때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나는 회사에서 지금껏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는 다양한 분야를 다뤄왔는데 근래 들어서는 웹툰을 담당하고 있어 창작자와의 접촉도 빈번했다. 특히나 내가 아주 존경하고 저명한 만화가님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겨울 때쯤 이 분이 지방으로 작업실을 이전하게 되셔서 겸사겸사 찾아뵙게 되었다. 작품 활동은 물론 다양한 사업 특히 서울에서 공간을 운영하시며 여러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다가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질문을 드리게 되었다.
“작가님, 제가 저의 로망인 제주에 집을 짓고 싶은데. 건설자재비도 많이 오르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도 같기도 하고 언제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작가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서울의 해당 공간을 매입했을 시 부동산시장이 안 좋을 때라고 하셨다.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하셨는데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거리에 마침 좋은 매물이 나왔기에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결과적으로도 그때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됐다 하셨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하고자 할 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요?”
그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미래에 건축비가 내려갈지 오히려 올라갈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다면 당시의 결정이 어떻든 미래에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건 본인의 역량일 것이다. 그동안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았던 무엇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작가님이 구입한 공간(건물)은 작가님의 로망대로 운영되고 있어 그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더욱 값어치 있을 것이다. 작가님은 바램은 완성이 아닌 현재 진행중이었고 그 최종 꿈은 더욱 더 커 보였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용기가 있다면 미래도 나의 길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않을까. 이때를 기점으로 제주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