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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이기는 방법

세뇌의 기술 열두 번째 이야기

by 애들 빙자 여행러

장면 1>


며칠 전 제주에 내려가기로 했던 아내에게서 다급한 문자가 왔다. 김포에서 제주로 향하던 비행기가 제주 착륙에 실패하고 다시 김포로 회항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내는 매우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카톡에 각종 계좌 비밀번호를 적고 비행모드를 풀고 메시지 버튼을 눌렀단다. 만약에 비행기 착륙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동으로 메시지가 발송되게 세팅해 두었단다. 아내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던 것 같다.


나도 제주에 살 무렵에 한때 매주 서울과 제주를 오고 갔었다. 회사는 제주 이전을 발표했고 나는 제주에 근무했었다. 업무의 특성상 서울 출장이 많았는데 언젠가도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며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나도 매우 놀랐었는데 며칠 후 항공사를 다니던 여자 후배에게 이야기를 하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배,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보니 우리나라 기장의 운전 솜씨는 세계 최고야. 특히나 서울 제주 구간은 비행편수도 많고 지금까지 아무런 인명 사고는 없었어! 오히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는 확률이 더 클 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기장님들은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니 걱정은 붙드려 매셔”


후배의 당돌한 이야기에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제주에 살았던 나로서는 각종 악천후를 뚫고 비행기사 이착륙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오고 눈이 내려도 비행기는 운행했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태풍이 불거나 엄청난 바람이 부는 경우 결항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후 나는 어떤 비행 상황에서도 눈을 꾹 감고 잠을 청한다. 아무리 비행기가 아수라장이 되고 비명 소리가 들려도 편안하다. 바로 후배가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장면 2>


예전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간혹 점심을 먹지 않고 혼자 이런저런 일을 하곤 했다. 그날은 옆 자리 동료와 둘이 함께 남아있었는데 갑자기 옆 동료가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뭐야. 왜 그래?”
“아우씨, 방금 이상한 게 훅 지나갔어”
“뭐? 사무실에 우리밖에 없지 않아? 누가 또 있었나?”
“귀신같아, 가끔 점심시간에 사무실 귀신이 두리번거리며 지나간데. 아우 깜빡이야”
“남자야? 여자야? 양복을 입었나? 눈은 마주친 거야? 어땠는지 자세하게 얘기해 봐”
“더 이상 묻지 마. 생각하기도 싫어”


나는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

뭐 안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이 무섭지 않았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고 깜짝 놀라게 하는 그 효과음이 싫다. 귀신이나 유령은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귀천을 떠도는 존재라고. 그건 바로 이승에 ‘한’이 있어서라고 들었다. 무언가 억울하고 미쳐 저승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가끔 외국 유령들은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다치게 하는데 우리나라 귀신들은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놀라 도망치기 바빠서 그들을 외면한 것은 아닐지.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다시 사무실에서 그 존재를 만난다면 쫓아가서 대화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그런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공포란 어쩌면 예측하지 못하고 갑자기 찾아오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놀라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어떤 공포도 예측가능하고 - 공포영화를 두 번 보거나 할 때 말이다 - 통계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나 수치를 인식한다면 공포에 대한 두려움은 극복 가능할 수 있지 않을지. 그럼에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등골이 오싹하긴 할 것 같다.


“거기 계신 분, 나와서 대화 좀 합시다. 어떤 사연을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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