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기술 열 네번째 이야기
얼마 전 내 평생 모아둔 나의 모든 데이터가 날아간 날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나의 멍청함이었다. 아이폰이 고장 나 맥 PC에 백업을 받아두었는데. 그만 백업에 문제가 생긴 걸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발견한 방법을 따라 하다가 그만 PC의 모든 데이터를 삭제해 버렸다. PC에 있던 모든 데이터가 삭제됐으니 아이폰 백업도 날아가버려 졸지에 난 벌거숭이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복구업체에 연락했다. 돈이 얼마나 들더라도 복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온 답변은 불가능하다였다. 일반적으로 복구란 하드디스크 등 물리적 고장이 발생했을 때 가능한데 나처럼 스스로 설정에 들어가 초기화했다면 99%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이럴 거면 범죄자가 아이폰을 초기화하면 데이터를 복구할 수 없는데 그들은 왜 본인 스마트폰을 버리거나 바꾸는 걸까. 포렌식은 가능하지만 일반인이 진행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옆에 있던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괜찮아?
식사 시간 모여 있던 아이들도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빠 괜찮아?
밥은 넘어가지 않았다.
뭐랄까. 나의 한평생이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내 청춘,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진 느낌이었다. 바보처럼 돈을 아끼자고 클라우드에 백업하지 못한 후회도 밀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후련함과 함께 작은 미소가 번져 나왔다.
“난 새로 태어났다”
사라진 데이터를 생각해 봤다. 크게 회사 데이터와 개인 데이터로 구분할 수 있었고 다른 방향으론 내가 만든 데이터와 남이 만든 데이터로 구분될 수 있겠다. 우선 회사 데이터와 남이 만든 데이터는 아깝지 않았다. 남이 만든 데이터는 만든 사람이 원본을 갖고 있으니 필요하면 요청하면 되겠다. 회사 데이터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굳이 과거의 자료나 데이터가 현실에 쓰일 일은 없어 보였다. 그저 나이 들어 추억할 때나 필요한 것을.
문제는 개인데이터 그중에서 내가 만든 원본 데이터였다. 어차피 내가 만든 원본 데이터는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 필터가 들어가야 하는 사진은 대체 불가였다. 평생 찍은 사진이 다 날아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건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은 나도 갖고 있고 내가 백업받은 것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랬다. 생각해 보니 아내도 많은 데이터를 백업하고 있었기에 모든 사진을 건지지는 못했으나 아내의 데이터에 우리 가족의 사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또 뭐가 문제가 될 수 있을까.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있을 뿐 없어지고 사라져서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마치 오래된 물건이 집안 다락에 쌓여있는 모습처럼, 아니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미련의 모습처럼, 그 묵직한 것들이 나에게서 사라져 나는 가벼워진 듯했다.
5년이 아닌 10년간 쓰이지 않는 물건은 그 이후에도 쓰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리는 그것을 부여잡고 물리적 정신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을지. 100기가도 훨씬 넘는 나의 평생의 데이터가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듯 그것이 사라진 것은 나의 소멸이 아니라 정신으로의 승화가 아닐지.
물론 초기화된 아이폰과 맥 PC를 다시 복구하여 기존 상태로 돌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다. 혹시라도 건질 수 있을지 기본 클라우드에 백업되어 있던 소량의 데이터도 복구할 수 있었다. 그 데이터도 역시 가족들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백업을 생활화하지 않았던 아내도 이내 바로 백업을 시작했고 이렇게 브런치의 소재로도 쓰일 수 있으니 어찌 아쉽기만 하겠는가. 이는 세뇌의 기술로 나의 멘탈을 붙잡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 발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