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기술 열다섯 번째 이야기
그는 한 조각의 편린에 몸을 싣고 큰 바다 위에 둥둥 떠있었다. 어젯밤 커다란 폭풍우가 지나갔나 보다. 집채만도 더 높은 해일이 그를 덮쳐왔었다.
살아있었다. 대양의 한가운데 눈부신 햇살아래 그저 구름만 응시할 뿐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까지 떠내려왔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된다.
‘난 살 수 있다, 내 결말은 해피엔딩, 재즈에 온몸을 맡기자’ 같은 세뇌를 시켜봐도 당최 통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또 언제 다다를지도 모르는 망망대해에 누워있기 때문이다. 가끔 바닷속 이름 모를 물고기가 그의 근방을 호위하기도 한다. 그를 노리는 식인 물고기는 아닌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답을 알 수 없고 방향도 알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웃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웃음을 지을 수도 울을 수도 없었다. 그저 아무런 표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구름이 흘러가는 곳으로 방향을 정했다.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러한 방향조차 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존재의 의미가 없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힘이 닿는 한 손을 저어서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바람이 아니 조류의 흐름이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더라도.
구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세뇌가 필요 없는 상황은 가장 행복한 시기이거나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겠다.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세뇌조차 의미가 없는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방향만 방향만이라도 정하여 보자. 내가 오늘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방향으로 난 나아가고 있다는 존재의 의미일 뿐 일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