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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

세뇌의 기술 열일곱 번째 이야기

by 애들 빙자 여행러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외부의 변화에 의한 나 자신의 변화가 더욱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 나는 한심하게도 외부 환경의 변화가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그러한 변화를 고대하고 기대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


회사의 조직개편이 그 예일 것이다. 회사가 위기에 휩싸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개편이 있을 것이란 소문이 퍼진다. 누구는 그 개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하고 정보를 미리 알아 줄을 서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하지만 결과는 전혀 딴판이고 예측은 빗나가기 일쑤이다. 언젠가부터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밑에서 거짓된 정보에 놀아나는 불쌍한 범인인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냥 주어진 그림에 맞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맞서봤자 그것이 결과적으로 최선인지는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조직 개편에 술렁이기보다는 이번엔 어떤 멍청이가 어떤 명분으로 조직을 휘두르려 하는지 그 의미와 광경을 지켜보는 재미가 생겼다.


그래서 요즘엔 시간이 흘러가면 이뤄지는 그 결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시간이 흘러 나타난 결과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식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지. 임기응변에 능하다? 아니. 모든 결과를 예측하여 각각의 전략과 대응을 하기 위한 것이 많은 리소스와 노력이 들어가고 절실함이 묻어있을 수는 있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는 나올 테고 그때 상대해도 늦지 않는다.


그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보다 볕 좋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프로의 삶.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은 과연 개미는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개인에 의해 바꿀 수 있는 세상은 개인의 성취일 뿐 그 힘은 미약하다고 혼자 세뇌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비난해도 좋아.
나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두려움은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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