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기술 열세 번째 이야기
얼마전 프로야구에 푹 빠진 초등학생 딸과 야구장에 다녀왔다.
나야 근 수십 년간 내가 응원하던 팀은 언제나 꼴찌였기에 한 번도 순위표를 본 적이 없었다. 올 초 딸이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하냐고 해서 아빠 팀을 응원하는 일이란 도를 닦는 느낌이라며 한사코 말렸는데도 딸은 그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올해 보니 그 팀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어색한 일이었다.
야구장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관중의 반이상이 젊은 여성팬이었다. 어릴 때 프로야구장에 몇 번 갔을 때 아저씨들이 소주 먹고 병 집어던지고 욕하던 경기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일어나 응원가를 합창하면서 춤을 췄을 땐 충격까지 먹었다. 원정팀이 잘하니 경기장엔 원정팀 응원단이 훨씬 많았다. 표 구하기도 너무나 어려웠다.
야구장이 아니라 공연장 같았다.
예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의 유쾌한 상상이 가미되어 있었다. 당시 프로야구팀 중에 삼미 슈퍼스타즈란 팀이 있었는데 ‘도깨비’ 팀이란 별명답게 연전연패로 새로운 역사를 쓸 때도 있었다. 당시 그 팀의 중계를 시청하다가 해설자가 ‘패전처리’ 투수가 등판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었다. 그의 표정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는 게임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한 때 취업전선에 뛰어든 적이 있을 때 지원하는 업체마다 항상 탈락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자신감이 바닥이었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무능한 사람이 아닐까 자책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보다는 역시나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마음을 지니고 다녔다. 나는 지는 게임에 등판하는 패전투수의 느낌이었다.
시끄럽고 흥분된 야구장에 앉았는데 갑자기 패전처리 투수가 생각이 났다. 요즘에도 그런 투수가 있을까. 화려한 이 경기장에 패배를 마무리 지으러 올라가는 그 투수의 심정은 어떨까. 그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질지 부끄럽고 창피한 모습을 자책하면서 공을 던질지 궁금했다.
우리 팀이 대역전에 성공했다. 이제 패색이 짓던 상대팀은 투수를 바꿔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팀의 패배를 마무리하러 올라온 젊은 투수는 씩씩하게 마운드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차게 공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
젊은 투수를 동기 부여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는 게임에 임하는 그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내일은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 나로 인하여 팀의 전력이 쉬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 게임은 내일도 있다는 생각. 언젠가 나도 선발로 그리고 해외로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 마운드에 올라올 수 있는 기회도 또 내일도 던질 수 있다는 희망도. 그 희망만 생각하면 힘이 나요”
내일은 이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