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계산기 조작이 안되신다고 했다.
손님을 앞에 두고 계좌 이체를 못해서 어쩔 줄을 모르셨다 했다.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으신 것 같다고 했다.
2월 7일의 일이고
2월 12일이 되어서야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들었다.
형에게 급히 전화해서 근처 신경과로 모시고 갔다.
병원에서는 소견서를 한 장 써주며 좀 더 큰 병원에서
정밀 MRI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시급을 다툴 일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하루 정도 경과를 두고 보겠다 하신다.
아버지는 병원 가기를 무척 싫어하신다.
아마도 수많은 사건과 질병으로 인한 입원 경력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가게에 손님으로 오는 보험설계사 아줌마를 통해
오래도록 가입했던 모든 보험을 해지했다.
그 정도로 병원과 거리를 두고 싶으셨기 때문일 거다.
저녁에 집에 들러 아버지를 만났다.
엄마 말로는 오늘 영양 주사를 맞고 컨디션이 많이 돌아오셨단다.
평소의 아버지 같으면 정치 이야기와 형에 대한 걱정의 도돌이표로 대화에 끊김이 없었을 텐데.
아버지의 말 수가 줄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예로 들어 질문하면 그 대답만 간결하게 하실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억 소실의 징후는 없다.
최근의 그리고 옛날의 일들을 명료하게 말씀하신다.
수기로 하는 산수 계산도 문제가 없었지만 정확히 필요한 말씀만 하셨다.
하지만 계산기와 핸드폰 조작이 안돼서 스스로도 답답하다 하셨다.
엄마는 며칠만 컨디션을 지켜보자 셨다.
그 며칠이 지나 설날이 됐다.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입이 벌어져 있다.
한참을 그러다 어느 순간 입을 앙 다무는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세배를 마치고 모두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형에게 전화를 했다.
상의할 사람은 형밖에 없다.
병원을 알아봐야겠어. 아산병원이 좋겠어.
그래, 아산병원이 좋아. 우선 네가 알아보고 연락 줘.
응.
챗지피티와 제미니에게
어머니에게 받은 소견서를 분석해달라고 했다.
TIA(미니 뇌졸중)이 의심되니 정밀 MR을 의뢰하는 내용이다.
소견서 볼 생각을 왜 이제 했을까?
신경과는 지금 외래 진료 예약을 하면 6월 5일에나 가능하단다.
그래도 예약을 했다.
그리고 형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너무 오래 걸리니, 설 연휴 다음날 경희의료원으로 알아볼게.
알았어. 나도 좀 더 알아보고 전화할게.
이미 수 일이 지났더라도, 더 지체되면 좋을 게 없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의사 소견서를 들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설날 오후에 형,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로 향했다.
접수처에 마스크와 가운을 걸친 당직의에게 소견서를 보이며 상황 설명을 했다.
내내 나를 둘러싼 불안감은 내 몸짓과 말투에서 드러났으리라.
며칠이나 지난 소견서를 들고 설명하는 나를 바라보던 의사의 눈은
그 떨림을 읽었는지 바로 접수를 진행해 줬다.
혈관 조영을 포함한 두 번의 MRI 촬영으로
아버지의 부분 뇌경색 발생 흔적을 찾아냈다.
혈관의 경화는 행동과 인지를 담당하는 영역을 교묘히 피해서 아버지의 기기 조작 능력 일부를 앗아갔다.
당초 입원 치료를 진행하자고 말했던 의사는 혈관 조영 MR 촬영 후 입원 치료 대신 외래 진료를 통해 진단과 치료를 이어가자 알려줬다.
다행히도 시일이 지났음에도 예후가 나쁘지 않아 서란다.
다행이고 다행이다.
응급실 약을 받아들고 종합병원 시스템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식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던 불안감을 손주 앞에서는 내비치셨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감각 때문이었으리라.
설 연휴가 끝나고 돌아온 첫날에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촬영했던 MRI를 확인할 수 있었다.
뇌로 들어가는 가느다란 혈관들 중 대여섯 개가 좁아졌고 그중 상태가 심한 한 곳에서 뇌경색이 발생했다고 한다.
의사는 혈전 용해제 등을 포함한 백십 일치의 약을 처방하고
두어 달 후에 심장초음파와 혈액검사를 지시했다. 제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불안감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응급실에서 처방받아 복용한 약의 효능이 있어 계산기 조작 등의 일부 인지 능력이 돌아왔고,
가장 크게는 전문가를 통한 원인과 치료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를 먹는 이상으로 부모님의 기력이 떨어지는 속도는 가팔랐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르게 부지런해야 인생의 후회도 줄어들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만큼은 작게라도 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일이다.
오늘을 그리고 최근 며칠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아빠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