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인생 잘못 살았나 싶어. 내 마음에 딱 맞는 친구 하나, 그 1명이 없는 느낌이야.
100프로 다 맞는 사람 없다지만, 그래도 배려심이라든가 어느 정도는 맞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
며칠 전에 엄마가 내게 인간관계 고민을 토로할 때 하셨던 말이다.
인간관계는 정말 정답이 없어서 더 힘든 것일까. 친구랑도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구네 어머님도 요즘 친구관계에서 자체적으로 , (쉼표) 즉 쉬어가는 시기라고 하셨다. 누굴 만나도 재미있지가 않고 오히려 회의감이 드신다고. 그렇다고 사람 간의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만나자니 휴식이 낫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60대가 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같은 건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다른 문제인가 보다. 죽을 때까지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고민인가.
솔직히 말하자면사실 나는 인간관계로 크게 힘든 적이 없었다. 적어도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돌이켜 보았을 때 사람 사귀는 게 어렵지 않았고 다들 어떤 필요나 이유에 의해서든 나랑 친해지고 싶어 했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는 '보아 춤'을 춘 이후에는 학교에서 잘 나가는?! 살짝은 무서운 친구가 "나 너와 친해지고 싶어"라고 우연히 같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말했다. 그래서 굳이 다가오는 사람 막지 않았고, 멀어지는 사람 막지 않았다.
당시 내가 살았던 동네에 꽤 큰 특목고 입시학원이었던 G학원. 특목고 입시는 우리 세대의 광풍이었고, 남들이 가니깐 가야 하는 줄 알았다. 빠듯한 형편에도 무리하면서 간신히 턱걸이의 성적으로 특목고 입학에 성공. 하지만 이것이 천운이었는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처럼 악운이었는지는 지금도 가끔 아리송하다. 뭐 그런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처음이었다.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 학창 시절부터 인간관계가 힘들었으면 그동안 쌓인 내공이나 내 나름의 대처 방법 같은 것이 있을 터인데. 고등학교 입학 이후, 처음 맛보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뒤에서 세는 게 빨랐던 나의 성적. 인간관계도 내 맘 같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만족할만한 게 없었다. 말을 하는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느 그룹에도 소속되지 않은 듯한 기분. 사회시간에 배우는 소속감, 준거집단. 나에게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았다. 사춘기의 소녀는 ‘어느 그룹 혹은 무리’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다. 중국으로 갔었는데, 일정 중 배를 타고 관광하는 코스가 있었었다. 2칸씩 양 옆으로 2열 종대 같이 앉는 구조. 다들 짝을 맞추어서 자리에 앉는데 어쩌다 보니 혼자 앉게 되었다. 그 당시의 전후 상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건 덩그러니 비어있었던 나의 옆자리. 내가 혼자 앉아있었다는 사실. 그거 하나뿐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외롭고, 초라하게 느껴졌었던 기억. 여기가 중국인 것과 장관인 풍경은 그 당시의 나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좋은 풍경을 보며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항상 누군가가 내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적어도 그때 나의 기분은 그랬다.
나는 사실 과거를 들추어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구태여 아픈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 복습하거나 되새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장점이다. 아무튼 지금은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아니었나보다. 특히나 혼자 무얼 하는 걸 주저하지 않고 자타공인 혼자 놀기의 고수인 내가 이상하리만치 그때의 기억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걸 보면. 아마도 정체성을 찾으며 방황하던 시기여서 더 마음속에 뿌리 깊게 각인되어 버렸나 보다. 아무튼 한마디로 모든 게 불안했다. 소속감이 전혀 없던 기분에 내가 방황하고 힘들어하며 엄마에게 전학 얘기를 슬며시 꺼내놓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친구들한테 밥 한번 사줄까?"
그때 당시에는 내 마음을 이해도 못해주는 엄마가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 입장에서는 저게 최선의 방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삶의 숙명. 죽기 직전까지는 계속하는 것인가 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에 대한 이치를 깨달아 고민을 덜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던 나의 생각과는 반대였다. 노년이 되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시간이 많아짐으로써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1,2번 곱씹게 되다가 결국 상대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되는 것일까.
가끔은 상상한다. 우리가 의도치 않게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거짓말 탐지기처럼 진동을 보내는 애플리케이션을. 집에 와서 앱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타인에게 말로써 실수한 점이 었는지. 하지만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기계적인 방식보다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지금의 방식이 좋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