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쏨바디 Jul 23. 2020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 글 쓰는 거 아냐 넣어둬

브런치 작가, 11전 12기 


“꼭 대단한 사람만 글 쓰라는 법 없잖아, 나도 혼자 끄적끄적 글 써보려고. 작가가 되겠다는 건 아냐” 

어느 날 저녁 엄마랑 같이 집 근처  공원을 걷다가 내가 말했다. 잠깐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진지함이라는 하나도 없는 어조로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는….. 글은 아냐. 넣어둬 ” 


아니, 보통 사회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부모는 자식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너는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를 믿어!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 윌 스미스가 아들에게 "누구도 너에게 넌 할 수 없어라고 말하게끔 하지 마. 그게 나라도 말이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엄마가 이어서 덧붙이셨다. “내가 너 9살 때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을 봤는데 말이다, 보는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어쩜 일기가 나는 무엇을 먹었다. 어디를 갔다 밖에 없니. 글쓰기에는 재능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정도였어. 오히려 기대도 안 한 남자인 네 동생이 더 잘 쓰더라. 그리고 너 그건 기억은 나니? 네가 가끔 일기 자체를 쓰지를 못해서 내가 그냥 받아 적으라고 몇 문장 불러주었잖아. 고문이 따로 없었다 얘. 내가 다 스트레스를 받았어 ”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바로 반문하지 못했다. 나는 글쓰기에는 잼병이었고, 학창 시절에 종종 논술로 상을 받았던 남동생과 달리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독서광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정신적으로 좀 방황하면서 책을 읽기는 했지만 ‘겉멋’ 든 철학 책에 심취했을 뿐이다.  ( 나는 그때 왜 ‘체 게바라’에 열광했는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나는 그리기에도 소질이 없었다. 표시된 선을 따라서 스케치를 하거나 자르라는데 왜 나의 선은 다르게 가는가. 그러고 보니 손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행위에 소질이 없었나 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좋아했다. 특히 내가 회사일로 힘든시기를 보냈을 때는 도서관에 가서 미친 듯이 에세이 책들을 수집했다. 다른 코너는 보지 않고 에세이 코너로만 직진했다. 소설을 읽는 것보다 ‘진짜 사람 냄새'가 풍기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듣는 게 더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되는. 설령 그것이 100% 사실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살면서 이상하게도 불행에 대한 감수성만 키운 듯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행복의 덧없음 때문이었을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대한 감수성이 더 잘 발달하고 그것이 어느덧 내면 기질로 고착되었다는 사실이지요. 불행을 겪는 가운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도 커졌어요. 당신이 겪은 불운과 불행에 주눅이 들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장석주, 2019 


위와 같이 좋은 문장들은 몇 번이고 곱씹어보게 된다. 꼭꼭 씹어서 삼키고 이해하려고 말이다. 이렇게 에세이를 통해 대리 만족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현생’, 현실의 삶에 치어서 잠시 보지 못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자극적인 것보다 평범한 것의 압승이어라.  


그래서 소박하게나마 꿈을 꾸었었다. ‘브런치’를 알고 잠시나마 나를 위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 오? 느낌 좋은데 하고 작년 1월에 제출했던 글의 첫 탈락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1년 반이 걸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 내가 잘하는 것이다. 탈락의 상처가 치유되고 잊을만하면 제출하고, 다시 탈락하고. 이 짓을 11번을 반복했다. 그리고 정말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작성한 글로 나는 기여코 12번째 만에 합격하게 된다. 거짓말이 아니라, 합격 메일을 보았을 때 내 눈에 눈물이 핑 고였다. 햇살 가득한 출근길 버스, 아직 울기는 이른 시간에  혼자 심취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직에 성공해도 울지 않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꾼다. 내가 텍스트들에서 받은 위로처럼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기를. 다음 꿈은 내 브런치를 언젠가 엄마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이것 좀 봐. 그래도 나 제법 쓰지?”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