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역사
옷장이란-
잠깐 옷장을 떠올렸다. 옷장은 단지 옷을 걸 수 있는 곳 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역사의 한 줄이 기록되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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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 걸린 빈 옷걸이들이 사라질수록, 전신거울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 옷을 입는 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옷을 입는 것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며 한편으로 내가 보여지는 것이다. 시선을 느끼는 것으로, 굳이 언어가 오가는 대화를 하지않아도, 나는 벌써 말을 한 듯 싶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시선의 대화이다. 이 대화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시각신경에 자극을 준다면, 누군가로부터 나는 판단된다. 이 판단의 깊이에 따라 나는 구체적일 수도, 단편적일 수도 있다.
하루를 마치며, 몸과 분리되는 옷에는 그 날 마주친 사람들로부터의 시선과 나에 대한 판단이 담겨있고, 그 날의 내가 묻어난다. 나와 분리된 옷이 옷장에 걸리는 순간, 옷장 속에는 하루의 역사가 쓰여진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수백 수천의 일기를 쓴다. 이 일기가 담겨진 옷과 이 옷이 담겨진 옷장은 얼마나 무거운가? 옷장에 걸린 옷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무게가 진중해질 수 밖에 없다.
문을 여는 순간 매일 새로 쓰여지는 서사는 누구에겐 설레이지만, 누구에겐 무심할 수 있다. 옷을 입을 때에는, 자신에 대한 만족과 타인에 대한 의식이 존재하기때문에, 이 서사는 거울 앞에서 무엇보다 가증스러우면서 무엇보다 진지하다.
그래서 옷장에 얽힌 서사는 소중하다. 바로 내가 거울 앞에 서는 순간, 하루의 자아와의 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옷을 입는 것이 행위로써 완벽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