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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콩 Nov 06. 2024

세 명의 선생님과 함께 춤을 췄어

오호호, 김여름, 딸기달 선생님

  서로 무한 칭찬을 쏟아부으며 일 년 동안 나름대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낸 (자칭) 고품격 창작 공동체 ‘글적라이프’의 탄생 과정은 이러했다.


오호호 선생님과의 첫 만남


  중등학교 교사는 5년마다 근무지를 옮긴다. 2022년 내가 처음으로 D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 오호호 선생님은 이 학교에 온 지 4년 차였고 아직 부장님이 아니었다. 오호호 선생님은 1학년, 나는 2학년 담임이었다. 학년이 달랐지만 같은 과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국어과 회의를 할 때 종종 마주쳤다.

  D 고등학교에서는 시험 기간에 해당 과목 시험 시간이 되면 교사들이 2층 회의실에 모인다. 문제에 오류가 발견되거나 학생이 질문할 때를 대비해 50분 동안 대기하는 것이다. 시험 본부에서 교사들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제발 그 어떤 수정 사항도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지나가는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하는 아주 예민한 시간이다.

  그때 나는 학급 안에서 발생한 학교 폭력 사안 때문에 심란해하고 있었다. 연말이라 처리할 일들이 이미 많은데 예측할 수 없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졌다. 앞으로 가야 하는데 발을 잘못 디뎌 지뢰가 있는 땅만 밟는 것 같았다. 지뢰 찾기 게임에서는 지뢰를 찾으면 모든 게 터지고 게임이 끝난다. 하지만 이 판은 아무리 지뢰가 팡팡 터져도 정해진 시간이 모두 흐르기 전까지는 종료할 수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했지만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두드려 맞아 움츠러든 상태였다.

  본부 테이블 한쪽에 구겨진 종이처럼 박혀있던 나에게 동그란 안경을 쓰신 오호호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이야기 들었어요. 많이 힘드시겠지만 다 지나갈 거예요.”

  종종거리며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러 다녔지만 민감한 사안인지라 다들 말을 얹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 속에서 고립된 작은 섬 같았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속담을 처음 말한 사람의 마음이 200% 이해되던 시기였다. 짧은 한 마디라도 위로가 절실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작은 선의에 큰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다정한 선생님이 있다니!

  시간이 흘러 다음 해 오호호 선생님은 국어부 부장님이 되었다. 5층 국어부실은 학교에서 가장 높고 구석진 곳에 있어 접근성이 나빴지만 그래서 오히려 차분하고 깨끗했다. 그곳에서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서 즐거웠다니, 인지부조화가 오는 단어의 조합 같지만 정말이었다. 부장님은 신입에 불과한 나의 말을 늘 경청해 주셨다. 과감하지만 어설픈 내 아이디어를 현실적이고 체계적으로 바꾸어 함께 맡은 과목인 ‘문학과 매체’ 수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셨다. 부장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옳은 방향을 알려준 든든한 인생 선배였다.



김여름 선생님과의 첫 만남


  김여름 선생님은 여리여리한 체구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분이었다. 각종 돌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돌파구를 찾아내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셨다. 2022년, 2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문학을 가르치던 때 김여름 선생님도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셨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담임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살며시 다가와 웃으며 전해주시곤 했다. 그런 선생님이 좋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면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신기하게도 거대한 눈덩이 같던 걱정들이 사르르 녹아 주먹만 한 눈뭉치로 작아졌다.

  그때 우리 반에는 자해 충동이 강한 김설탕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상담할 때 맑은 미소를 띠고 별 문제가 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집에 가면 다시 스스로 상처를 냈다. 학교 상담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드리고, 상담 선생님의 연결로 병원에도 꾸준히 다녔지만 설탕은 계속 불안해 보였다. 차라리 펑펑 울면 어떻게든 위로를 해줄 수 있을 텐데 내 앞에서는 늘 밝은 모습만 보이려 노력하는 게 안타까웠다.

  나는 제자가 의지할 수 없는 교사인 걸까. 경력이 많고 삶에 대한 지혜가 풍부한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면 상태가 금방 호전되지 않았을까. 한 학기가 지나도록 설탕이의 마음을 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이 이어졌다. 그렇게 여름 방학이 오고 순식간에 2학기가 되었다. 새 학기에는 조금이라도 상처를 덮어주고 싶었다. 설탕은 <소피의 세계> 같은 철학 책을 즐겨 읽었고 언어 쪽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 효과가 좋았던 방법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김여름 선생님은 나와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며 설탕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 알고 계셨다. 나는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 바쁘신 와중에 죄송해요. 혹시 저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그 아이에게도 따듯한 칭찬을 많이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휴, 당연히 되죠! 쌤. 제 수업에서 설탕이가 교과 부장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선생님은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매번 수업이 끝나면 설탕이의 수업 태도와 발표한 내용과 쓴 글에 대해서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오늘 수업에서 어땠는지 전해주셨다.

  김여름 선생님과 콤비를 이루어 나는 설탕의 생활 태도를 칭찬했다. 너의 성실함과 속 깊음과 진중한 말투와 예쁜 미소가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열심히 말해주었다. 설탕은 수줍어하면서도 감사하다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칭찬으로 들리지 않도록, 나는 설탕을 열심히 관찰하고 구체적으로 칭찬하려 노력했다. 책 추천도 많이 해주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자 상담 선생님은 설탕이가 많이 밝아졌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물론 설탕이 변화한 데는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컸다. 학기말에 진행한 설문조사 <2학년을 떠나보내며 하고 싶은 말>에 “올해 '문학'과 '독서' 과목을 배우면서 국어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라고 쓴 글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사히 한 학년을 마친 설탕이가 정말 대견하고 고마웠다.

  담임이 되어 한 반을 이끈다는 건 3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 정상을 찍고 등산로 입구로 다시 돌아오는 동안 낙오되거나 다친 학생은 없는지 세세하게 살펴야 한다. 그 산을 처음 오른다면 등산화, 등산복, 물과 오이와 초콜릿까지 야무지게 챙겨도 돌부리에 발이 거려 넘어지거나, 지도를 잘못 보고 다른 길로 접어든다거나 하는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여름 선생님은 본인도 30명의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는 분주한 상황에서도 내가 길을 잃은 학생을 찾아 무사히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선생님은 심지어 학년이 바뀌고 나서도 복도에서 마주친 설탕에게 칭찬을 해주셨다.

  세상에 이렇게 따듯한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또 크게 감동했다.



딸기달 선생님과의 첫 만남


  사서이신 딸기달 선생님은 C컬이 깔끔하게 들어간 단발머리와 동그란 안경,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우아한 분이었다. 그녀는 2023년에 D 고등학교에 채용되어 5층 도서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국어부실과 도서관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오고 가기가 수월했다. 딸기달 선생님은 국어부 소속은 아니었지만 함께 진행하는 업무가 많아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학기가 막 시작된 3월, 나는 이사를 앞두고 버스로 한 시간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었다. 퇴근길에 딸기달 선생님은 '날도 추운데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태워주셨다. 그때 선생님은 처음 온 학교에서 처음 본 학생들과 잘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다. 경력이 풍부한 분이었지만 D 학교 학생들이 지닌 특유의 당돌함에 많이 놀라신 상태였다.

“올해 도서부 부장이 누구냐고 했더니 2학년 여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어요. 작년에 선배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출, 반납 봉사랑 도서관 행사를 진행했냐고 물으니까 ‘잘 몰라요. 그냥 냅두시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이러더라고요.”

“작년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안 계셔서 국어과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도서부를 맡으셨거든요. 그래서 체계가 안 잡혀 있나 봐요.”

“잘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알아서 하겠다는 건지,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이런 애들은 처음 봤어요.”

“작년에 저희 반에 도서부 부장이 있었어요. 그 아이는 지금 부장이랑 다르게 도서부에 진심이어서 봉사에 엄청 열심히 참여했거든요. 제가 생활기록부에도 자세히 기록해 뒀어요. 제가 그 아이에게 선생님께 가보라고 할게요. 또 필요하시면 생기부 쓰면서 기록해 둔 도서관 행사 일정을 보여드릴게요.”

  사실 내겐 간단한 일이었다. 작년 도서부 부장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기 때문에 현 도서부의 행태를 알면 자기가 더 분노하며 죄송하다고 할 아이였다. 자료도 이미 정리해 둔 것이기 때문에 30초면 공유가 가능했다. 그런데 딸기달 선생님은 정말 고마워하셨다. 맹랑한 아이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는데 아주 큰 힘이 되었다고 3월에 있었던 일을 12월에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게 귀여운 인형이 달린 펜과 컵에 꽂을 수 있는 작은 다람쥐와 멋진 시가 적힌 카드를 주셨다. 먹을 것도 참 많이 챙겨주셨다. 초보 자취생에게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었다.

  학년 말에 국어부실을 옮겨야 해 대청소를 할 때에도 딸기달 선생님은 부장님과 나를 도와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를 버려주셨다. 몇 년 동안 캐비닛에 방치되어 있던 사인펜들을 하나하나 그어 나오는 것과 나오지 것으로 분류하며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설령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해요. 나부터 성의를 보여야 해요. 그럼 나에서부터 다시 사랑이 시작되는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섬세한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나는 또다시 크게 감동했다.


  교사로 지낸 첫 해에 나는 누군가를 돕기는커녕 매일 도움을 받기만 했다. 업무가 몰아치고 사건사고가 반복되며 점점 몸과 마음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쓸 수 있는 조각을 죄다 빼서 쌓아버린 젠가처럼 자존감이 무너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하지만 다정하고 따듯한 이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버텨냈고 2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딸기달 선생님을 만났다. 나도 다른 이의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무척 뿌듯했다. 오호호 선생님께 받은 선의를 가까이 있는 다른 선생님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물론 딸기달 선생님이 먼저 나를 배려해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좋은 마음은 돌고 돈다. 크게 세 번 감동받고 한 번 감동을 드렸으니 아직 두 번의 몫이 남아있다. 세상은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냉정하면서도 다정하다. 아픔을 주지만 그만큼 회복도 시켜준다. 주저앉히면서도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나도 다시 용기를 얻는다. 밀물과 썰물처럼 슬픔과 기쁨도 영원히 순환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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