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흐른다>
여기 아이들이 뛰노는 거실 구석에서 오래된 컴퓨터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여인이 있다. 한 아이가 여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같이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것이다. 포근한 인상의 여인은 웃으며 “이모 지금 일하는 중이야. 이따가 놀자.”라고 아이를 달래고 다시 자신이 자아낸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이 여인의 이름은 ‘김중미’이다. 그녀는 소래포구에서 쓸쓸히 걷던 나의 곁을 지켜준 숙자를 창조한 사람이다. <읽걷쓰 프로젝트>로 만난 첫 번째 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은 강화도 양도면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지만 잠잠해지면 곧 다시 열 계획이라 하셨다. 공부방에는 여러 아이들이 찾아왔다. 저마다 사정이 제각각이다. 부모님이 맞벌이 혹은 농사일로 바쁘거나, 한부모 가정이거나, 다문화 가정이거나, 하교 후에 갈 곳이 마땅치 않거나,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하거나 하는 이유들이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어린아이도 있다. 보살핌이 필요한 작은 새들이 작가님이 지은 따듯한 둥지에 모여들어 친구를 사귀고 공부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저녁이 되면 지치지 않는 강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숙제를 도와주었다. 더 시간이 흘러 밤이 되면 퇴근한 엄마들이 문을 두드렸다. 엄마들은 하루종일 쌓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다 같이 글을 썼다. 지치고 피곤해도 다들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살아온 세월만큼 글이 쌓였다. 1987년 인천 만석동에서 만들어진 ‘기차길옆공부방’의 역사는 2023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어른이 있다면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립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짧게나마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쌓여서인지 작가님의 이야기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아이일수록 내면은 오히려 연약하고 위태롭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내면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기다려 줄 어른이 필요하다.
강연을 듣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우연히 보았던 영상이 떠올랐다. 생물 연구 유튜버 ‘오브리더’가 서해안 갯벌에 깊이 박힌 타이어를 빼내는 영상이었다. 타이어는 무척 컸고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생명이 고인 채 썩어있었다. 밀물 때 타이어가 바닷물에 잠기면 작은 게들은 멋모르고 그 안에 들어갔다. 썰물 때가 되어 다시 뻘 바닥이 드러나면 안쪽 깊은 구덩이에 빠진 그 어떤 생명도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순환되지 않아 부패한 진흙과 바닷물은 그 안에서 끝없이 죽음을 쌓고 있었다.
“한 발자국이 모자라 탈출하지 못하는 게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브리더는 타이어를 들기 위해 주변을 파낸다. 거대한 타이어는 쉽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 지나가던 여러 행인이 그를 돕는다. 다들 흰 운동화가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타이어를 들어 올리고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과정까지 함께 한다. 이 와중에 타이어 안에서 살아남은 작은 게가 다리를 꼼지락거린다. 오브리더는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게를 파도 근처로 다시 데려다준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그가 갯벌 위를 신나게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에 맞춰 손톱만큼 작은 게들이 이리저리 빠르게 흩어진다.
타이어 안이 지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들어가는 게는 없다. 그저 삶이라는 파도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흘러가다 보니 그곳에 당도했을 뿐이다. 깊게 가라앉은 이에게는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불행에서 자력으로 헤어 나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성인이라면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어떤 방법도 알지 못한 채 슬픔과 고통을 정면으로 맞고 처절하게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온 한 출연자가 있었다. 이혼한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어린 시절에 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치렀다고 했다. 이름 없이 살다가 19살에 스스로 변호사를 찾아가 이름을 얻었다. 몇 년 후 그녀는 만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보이스피싱을 당해 200만 원을 잃고 짧은 생을 마쳤다. 그녀가 출연 소감을 적은 카드가 생각난다. 진짜 삼촌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내 또래였다. 아르바이트 하던 곳과 대학교에서 마주치던 후배들과 같은 나이였다. 그녀의 시간은 멈췄다. 나는 3년이 흘러 다시금 그녀를 추모한다. 3년 전 나에게 200만 원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달을 일해서 모아야 하는 아주 큰돈이었다. 지금도 큰돈이다. 그녀에게는 그 돈의 무게가 훨씬 더 크고 무거웠을 것이다.
등대는 위성에는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며 여전히 수천 척의 배를 위험에서 구하는 역할을 한다. 바다와 마주하며 당당히 서 있는 등대는 여리게 보이지만 용기도 있다. 우리에게도 삶을 밝게 비춰주고 당당한 등대가 필요하다. 등대의 불빛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희망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 아니다. 희망은 완벽히 다가갈 수 없는 평화의 이미지가 아니다. 다만 희망을 품으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고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맞을 수 있다.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피카, 2023
희망이란 무엇일까. 잃어버린 희망을 스스로 되찾는 일도 이렇게나 힘든데 타인에게 희망을 전한다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인생은 바다 같아서 한 치도 예측할 수가 없다. 잔잔하게 반짝이다가도 순식간에 폭풍우가 몰아쳐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아무런 데이터베이스 없이 학교 현장에 뛰어들었을 때 나는 타이어 안쪽에서 빙글빙글 도는 작은 게와 다를 게 없었다. 교사로 일한 첫 해, 학급 안에서 발생한 학교 폭력 사건과 각기 다른 아이의 자해 시도와 학부모의 민원 등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벌어지고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죽어야지.’
물론 진짜 죽으려 한 것은 아니고 정신적으로 수세에 몰리니 어떻게든 나를 지키기 위해 한 생각이었다. 당장 죽을 것 같이 숨이 막혀오지만 아직 죽으면 안 된다. 방학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티자. 200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생기부가 아직 빈칸으로 남아있었다. 내가 수업한 과목과 내가 진행한 행사에 대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를 고통에 밀어 넣은 학생들도 있었지만 나를 믿고 따르고 응원해 준 학생들도 있었다. 차마 그 아이들을 저버릴 수 없었다. 지뢰 찾기 게임이 끝날 때까지 그냥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미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더 폭발하면 어떤가 싶었다. 이미 터질 만큼 터져 더 폭발할 게 남아있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누군가 나를 도와주겠지'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들 각자 맡은 학생들을 이끌고 산을 오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결국 염치 불구하고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에 도움을 구하고 다녔다. 살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기도 했지만 도움도 많이 받았다. 나를 가장 크게 도와주신 건 학교 위센터 상담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셨다. 그런 다음 학부모의 메세지에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하는지, 전화 상담을 할 땐 어떤 말투를 사용해야 하는지, 민감한 학생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이론으로는 배웠지만 활용할 줄 몰랐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조언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실제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을 상세하게 코치해 주신 유일한 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학기를 무사히 넘기고 같은 학교에서 재계약까지 할 수 있었다.
당장 숨이 막혀도 타이어 속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한 걸음만 나를 끌어당겨 주는 존재가 있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건 사람일 수도 시간일 수도 있고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길을 잃어도 희미하게나마 등대의 불빛을 찾는다면, 그 불빛을 따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나는 첫 해에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건이 몰려온 특이한 경험을 했다. 왜 이런 시련이 하필 나에게 쏟아졌는지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혹독한 통과의례를 무사히 견뎌내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하늘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 같다. 타이어 속에 들어가 봤으니 작은 게들의 심정이 어떤지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나를 구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나 또한 타이어 속에 갇힌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나는 아직 폭풍우를 뚫고 조난당한 배에 닿을 수 있을 만큼 환하고 선명한 불빛이 되지 못했다. 내 코가 석 자라 콧물을 닦는 데 급급해 남의 눈물을 닦아줄 여유가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의 몸부림이 약이 되어 마음의 감기가 낫고 콧물이 멈춘다면.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경력이 많이 쌓인다면. 그렇다면 언젠가 커다란 등대 같은 사람이, 그런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소망해본다.
강연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용기를 내어 <괭이부리말 아이들> 집필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 책은 2000년에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서 대상을 받고 출판되었다. 그때에는 아직 사람들이 소설과 에세이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동준이와 동수, 숙자와 숙희, 명환이 다섯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쌀과 반찬 같은 것들을 많이 보냈다. 나중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물자가 쌓여 모두 돌려보내거나 거절했다고 한다. 오해에서 발생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류애와 측은지심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작가님은 웃음 지었다.
강연이 끝나고 <모두 깜언>에 사인과 함께 써주신 문구를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의 어깨동무를 꿈꿉니다.”
(영상 출처:
오브리더(Breeder OH), <갯벌에 버려진 타이어 그곳에는 수백마리 게들의 무덤이...>, 2019.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