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걷쓰 프로젝트
5층 국어부실에서 근무하는 게 어느 정도 적응된 2023년 5월. 내가 이별 후유증 초기 단계인 ‘충격과 부정’ 상태에 막 진입했을 때 ‘글적라이프’가 탄생했다.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관내 중등교원을 대상으로 <작가와 함께하는 읽기‧걷기‧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공문이 온 것이 시작이었다. 부장님은 메신저로 팀원을 모집한 뒤 작은 회의를 열었다. 참가자는 오호호(국어부 부장), 딸기달(사서 교사), 나(시간제 기간제 국어 교사) 이렇게 세 명이었다.
공문에 나온 대로라면 프로그램 구성은 이러했다.
1. 첫 번째 작가님과 만나 강의를 듣고 책도 받는다.
2. 두 번째 작가님께 글쓰기 지도를 받는다. (총 3회)
3. 첫 번째 작가님과 강화도 탐방을 하며 열심히 걷는다. 사진과 글감을 수집한다.
4. 포토 에세이 원고를 작성한다.
5. 전문 업체에서 편집 과정을 거쳐 멋진 책을 만든다.
6. 호텔에서 모든 참가자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이 모여 출판기념회를 연다.
(+ 중요! 매 연수 시간마다 간식과 간단한 도시락 제공)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사업이어서 참가 비용이 없었다. 아주 솔깃한 구성이었다.
“이것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읽걷쓰’인가요.”
교육감님이 ‘읽걷쓰’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지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 대부분에 ‘읽걷쓰’라는 표현이 빠지질 않았다. 작년부터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수많은 공문을 보았지만 직접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다.
“함께 하시죠, 선생님.”
부장님이 진지하게 권유했다.
“근데 제가 공부도 해야 하고, 사실 상태가 좀 안 좋아서 잘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머뭇거리다 털어놓은 대답에 두 선생님이 깜짝 놀라 동시에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그게 제가 마음이 좀 아파서요….”
대강의 상황을 전했다. 세 줄로 짧게 요약해서.
오랫동안 사귄 애인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약간 정상이 아니다.
"저희 엄마 표현을 따르자면 지금 정신이 살짝 안드로메다에 가 있어서요."
두 분은 길 잃은 고양이를 발견한 것처럼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런… 그런데 아마 한 번 떠난 사람은 다시 안 돌아올 거예요.”
“아무렇지 않게 쌤은 쌤대로 멋지게 잘 살면 돼요.”
“그러니까 우리 함께 글을 써 봐요.”
"우리는 이미 한 팀이에요. 쌤! 인원이 적어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빈자리가 커요."
이런저런 위로를 듣다 보니 어느새 점점 설득이 되었다. 잠깐의 고민 후 마음을 정했다.
“그럼... 참여할게요. 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낫고, 두 명보다는 세 명이 같이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
부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부장님은 업무 때문에 모니터 앞에 고개를 숙이고 계실 때가 많았지만 나에게 늘 잔잔하게 웃어주었다. 화공이 화선지에 스치듯 그은 한 획처럼 눈가와 입매에 먹처럼 번지는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묵화를 감상할 때처럼 마음이 고요해지고 세상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부장님이 키운다는 노란 고양이가 떠올랐다. 고양이에게도 저렇게 웃어주시지 않을까? 뭔가 엄청난 임무를 맡기로 엄숙하게 선언한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커피 한 잔 할까요? 속상해도 이것저것 잘 챙겨 먹어야 해요.”
딸기달 선생님이 창틀에서 나무로 된 고풍스러운 커피 그라인더를 가져왔다. 이어서 우아하고 능숙하게 원두를 갈았다. 그라인더가 돌면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원두가 갈리면서 나는 향이 고소했다.
그렇게 나는 매주 화요일 부평구청역 근처에 있는 북구도서관에 가서 작가님들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술은 잔뜩 마신다던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던지 하는 일들은 사실 겁이 나서 못했다. 애초에 엄마는 내가 <또 오해영> 속 오해영처럼 코피를 흘리고 팔을 부러뜨린 채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울고불고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힘들수록 더 집에서 안 나왔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은 닮은 점이 많다고, 안 하던 미친 짓을 하게 한다고 멋들어지게 썼지만 사실 내가 한 ‘미친 짓’들은 소심하고 구차하기 그지없다.
그중 하나는 북구도서관에 가는 길에 보내지 못할 카톡을 ‘나와의 채팅’에 잔뜩 쓴 것이다. 무려 30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차창 밖 풍경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왠지 더 감상적이 된다. 그러니 버스 탓을 해본다.
오늘 인문학 강의 들으러 도서관에 가요~
국어부장님이랑 사서 선생님이 같이 하자고 하셔서 신청함!
토요일에는 강화도에 책 배경지 찾아간다~
초딩 때 엄청 좋아했던 책이 있는데 작가님을 실제로 만날 수 있대요.
오빠는 뭐 해? 일 많은가요.
오늘은 신기한 메뉴가 나왔어. 생선 유린기? 생선튀김인데 소스가 중화요리풍!
나름 맛있었는데 애들은 싫어하더라구요ㅋㅋ
구슬아이스크림 초코맛도 나옴! 맛있었어. 추천추천
내가 미안해.
30분 동안 감정이 이렇게까지 널뛸 수 있는지 몰랐다. 서글펐다가, 서운했다가, 사랑했다가, 갑자기 미안했다가…. 심지어 강연을 듣고 집에 갈 때도 카톡을 썼다. 또 버스를 탔기 때문이다. 저녁에 타는 버스는 실연당한 사람에게 참 위험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소주 반 병을 마신 것 같은 효과를 냈다. 한 병이 아닌 이유는 다행히 수신자가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버스 타고 집에 간닷.
근데 답장이 바로 안 와도 슬프지가 않다.
그동안 서서히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연습시켜 준 거라면 참 고맙구나.
카톡 답장 사이의 간격이 통화 속 침묵이 편안함 때문이라고만 여겼어.
이미 듣고 있지 않다는 걸 몰랐다.
책을 쓰고 싶다고 가끔 그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처음에 응원을 해주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글을 뒤로 미루고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그는 나의 꿈이 실현될 것이란 기대를 지워버렸다.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내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것 같겠지. 앞으로도 해내지 못할 것 같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네가 불을 지르고 간 자리가 아직도 뜨겁다. 지금은 어떻게 해도 불을 끌 수가 없으니 그냥 타도록 내버려 둘 거야. 다 태운 다음에 남은 재를 모을 거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다 두 눈이 멀었어요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다 마음을 다쳤네
(심규선, <오스카>, 2017)
나도 나만의 노래를 만들 거야. 슬퍼질 때마다 부를 수 있도록. 다른 슬픈 이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도록. 재만 남은 자리에 새로운 것들을 잔뜩 심을 거야. 네가 발 디딜 한 뼘의 틈도 없도록 빽빽하게 채울 거야. 그러니 네가 내 등에 던져 깊숙이 박힌 사과가 어서 썩어버렸으면 좋겠다. 그 사과를 양분으로 삼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야…….
저녁에 타는 버스는 실연당한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어 준다.
심리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상실의 다섯 단계'인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단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인터넷과 유튜브가 발달한 시대여서 다행이다. 책을 구하기 힘든 시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가 인류 최초로 실연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결국엔 괜찮아진 수많은 이별 선배들의 생생한 후기가 존재해서 다행이다. 해열제를 먹으면 금방 열이 떨어지는 것처럼 앓고 나면 나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대학생 때 5명이 수강했던 소규모 강의에서 같은 과 선배가 교수님께 조용히 편지를 내밀던 모습이 기억난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선배는 머뭇거리다 ‘제가 이별을 해서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때 선배를 바라보던 교수님의 눈빛은 나를 보던 부장님과 딸기달 선생님의 눈빛과 비슷했다. 그날 선배는 합법적으로 결석을 했다. 그 선배와는 졸업과 함께 연락이 끊겼지만 SNS에 뜨는 소식을 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이 해피 엔딩이 확실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주인공은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낸다. 한 에피소드가 끝나면 성장한 뒤 쿨하게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간다. 다른 사건이 벌어져도 끄떡없다. 경력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웬만해서는 성장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적, 신체적 퇴행이 일어나지 않는다. 위기 대처 능력이 나날이 발전할 뿐이다. 글적라이프에 속하기 전에는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야. 난 등장인물이 많은 주말 드라마 속 조연이면 몰라도 로맨스물의 주인공은 아니야'라고 씁쓸하게 생각을 멈췄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다르다. 나는 내 글과 내 책의 주인공이다. 역설적이게도 상실을 겪으니 드디어 제대로 된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의지로 충만해졌다.
'친구의 위로, 가족의 위로, 동료의 위로를 받고 나 자신을 되돌아봤더니 어느새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나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진짜 나'는 아직도 찌질하고 답답하고 구차하다. 아름답고 극적인 연출을 벗겨낸 나의 내면이 이러한 것을 어쩌겠는가. 그래도 또 다짐을 한다. 얼른 안드로메다에서 벗어나 지구로 돌아오자고. 포기하는 것보다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는 게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