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고품격 창작 공동체가 지닌 치유의 힘
가족이나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 말고도 사회에서 ‘요셉을 아는 사람(이 용어의 뜻은 11화를 참고해주면 좋겠다)’을 만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가능하다’이다. 물론 우연이 겹치고 운이 조금 따라줘야 할 것이다. 용기도 필요하다. 만약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 비슷한 영혼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충분히 기뻐하길 바란다. 순풍을 만난 돛단배처럼 ‘할 수 있을까..?’하고 망설였던 일이 술술 진행되고 아름다운 결과물로 돌아오는 엄청난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간제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세 명 만났다. 바로 (자칭) 고품격 창작 공동체 ‘글적라이프’의 구성원인 D 고등학교의 국어부 부장님 오호호 선생님과 사서 딸기달 선생님, 국어과 김여름 선생님이다. 매주 수요일 ‘글적라이프’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는 포토에세이 <산책 채집>과 그림책 <보따리를 풀어줘>를 만들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부서졌던 마음이 서서히 붙더니 점점 괜찮아졌다. 물론 한순간에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7개월 정도 걸렸다.(5월부터 7월까지 포토에세이 작업을 하고, 8월부터 11월까지 그림책 작업을 했다.) 이만큼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붙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내가 비교적 멀쩡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친 이들에게 창작을 하라고 당당하게 권하고 싶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간접적으로 듣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보는 게 좋고, 보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만드는 게 효과가 좋다. 내가 바로 산증인이다.
살다 보면 예고 없이 누군가 나를 넘어뜨리는 순간을 마주한다.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엉망으로 쓰러져 무릎에 피를 철철 흘리며 고개를 들면 넘어뜨린 사람은 이미 멀리 도망간 뒤고 나에겐 당혹스러움과 아픔만이 남아있다. 상처가 더 깊어지는 이유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주위를 잘 봤더라면, 반사신경이 뛰어났더라면, 좋은 운동화를 신었더라면,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천재지변 같이 피할 수 없던 일에 나까지 내 탓을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자기 비하와 자조를 멈추고 마음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기 전에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든 일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서 최선을 다해 상처를 치료해 흔적이 남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혼자 일어나기 힘들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꼭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나를,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나를 진심으로 도울 ‘나’가 있다. <안네의 일기> 속 안네처럼 모든 것을 글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을 준다. 창작은 내면 깊은 곳에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를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눈물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주섬주섬 긁어모으다 보면 훌륭한 글감이 사금처럼 반짝인다.
‘글적라이프’ 구성원들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밝을 때 마음의 강바닥에서 반짝이는 금조각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면 혼자 남아 헤매기도 했지만, 밤이 지나면 다시 해가 뜨고 아침이 오면 다시 함께였다. 금가루를 모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내면 정말 잘했다고, 아주 훌륭하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일과 창작을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 창작의 고통, 이 모든 것을 감내한 뒤 마주한 결과물에 대한 뿌듯함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을 했다는 것은 인생에 다시없을 엄청난 축복이었다. 먼지 한 톨처럼 희미했던 나의 자존감이 다시 금덩어리처럼 빛날 수 있게 도와준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학교'라는 거대한 시계 속에서 '기간제 교사 1'이라는 작은 나사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나를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박혀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처럼 소중히 대해준 이들과 만나고 포토 에세이와 그림책을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놓고자 한다. 아주 자그맣던 나도 해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