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콩 Oct 27. 2024

요셉을 아는 사람

고슴도치의 딜레마

[2부. 타협과 분노]


올해 6월, 나는 오랜 친구 임시주와 함께 아이맥스관에서 <듄 파트 2>를 보고 사랑에 대한 토론을 했다. 첫사랑이자 힘들 때 곁을 지켜준 동반자인 '챠니'를 버리고 복수와 권력을 위해 '이룰란 공주'와의 결혼을 택하는 '폴 아트레이더스'의 행태가 과연 옳은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물론 이상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인 우리 둘은 그의 행보에 결코 동의를 표할 수 없었다.

  어떤 이들에게 사랑은 늘 두 번째가 되어 버린다. 사랑에만 목매는 것도 답답하지만 사랑을 시작해 놓고 등한시하는 것도 이기적이다. 살아가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서로 상극인 게 아닐까. 연인에게도 직장 동료들에게도 완벽한 사람이란 드라마에나 나오는 게 분명하다. 희귀하니까 수요가 있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계속되는 것이다. 멀어지면 춥고 가까이 다가가면 찔리고 마는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사랑과 야망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이야기를 아냐고 물으니 시주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회사 모니터를 보는 것보다 쉽다는 듯이 "아, 그거?"라고 바로 대답했다. 한창 뉴런이 발달하는 시기였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이처럼 그들은 두 악(惡) 사이를 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했다.
  인간의 공허함과 단조로움으로부터 생겨나는 사교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불쾌감과 반발심으로 인해 다시 떨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정중함과 예의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문화사, 2023


"근데 사실 고슴도치끼리는 서로 가까이서 잘 지낸대. 안 그럼 진작에 멸종되었을 거라던데."

"뭐야. 그럼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도 안 키워봤으면서 저런 말을 한 거야?"

"유튜브*에서 봤는데 가시 끝이 뾰족하긴 한데 속이 비어있어서 부드럽게 잘 휘어진대. 고슴도치들도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서 밥 주는 주인 손 위에서나 짝짓기를 할 때는 가시를 눕힌다는 거야. 아프거나 예민해질 때 가시를 세우는데 그럴 때만 안 건드리면 된대."

"괜히 성격 엄청 예민한 애로 오해하고 있었네."

"핸들링을 잘하면 가시가 비늘처럼 찰랑찰랑 부드럽게 느껴진다더라."

"이래서 오해를 안 하려면 건너 들은 걸로 판단하지 말고 본인이랑 얼굴 마주 보고 얘기를 해야 해."

   하긴 고슴도치의 가시가 늘 뾰족하다면 짝짓기가 어떻게 성사되겠는가. 야생의 고슴도치가 종족 번식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중요시할 리 없었다. 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사고인가. 물론 '우화'라는 글의 성격상 100% 사실만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 때문에 1851년부터 174년 동안 오해를 받아온 고슴도치의 입장을 생각하면 통탄스러운 일이다.

진짜로 등에 박혀버린 사과. 사실 고슴도치는 육식이기 때문에 가시를 이용해 채소를 서리한다는 것도 오랜 오해라고 한다.


"있잖아, 나 정말 엄청난 걸 알아냈어."

"뭔데?"

"‘요셉을 아는 자’라는 표현이야."

나는 휴대폰으로 전자책을 켜고 시주에게 밑줄 친 부분을 보여주었다.

"부인은 젊고 나는 늙었지만 우리의 영혼은 아마 같은 나이일 겁니다. 코닐리어 브라이언트의 말처럼, 우린 둘 다 ‘요셉을 아는 자’들이니까요."
  앤은 어리둥절했다.
 "요셉을 아는 자라고요?"
 "코닐리어는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눠요. 요셉을 아는 자와 요셉을 모르는 자죠. 눈빛만으로도 말이 통하고, 세상사에 대한 생각이 같으며, 농담이 잘 통하면 요셉을 아는 자에 속한다고 하네요."
  앤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 알겠어요. 제가 ‘마음이 맞는 친구’라고 부르는 것 같은 개념이군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전집 5_ 앤의 꿈의 집>, 현대지성)

(*요셉 -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며 ‘꿈꾸는 자’로 많이 언급된다. 형들에게 절 받는 꿈을 꾸고는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고난을 겪지만, 왕의 꿈을 바르게 해몽해서 총리가 되고 훗날 곤궁에 빠진 가족을 구한다.)


"이거 완전 우리 이야기 같아."

"맞아. 우린 척하면 척이잖아. 물론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는 전혀 다른 존재지. 그래도 돌이켜보면 연애하면서 묘하게 어긋날 때가 있었는데 이제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

"우린 '요셉을 아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랑했나 봐."


  전에 그와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다 <빨간 머리 앤>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넷플릭스에 빨간 머리 앤 드라마 시리즈가 올라와 있어서 봤는데, 앤과 길버트처럼 우리도 문과와 이과라서 생각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사랑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길버트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대답했다. 이윽고 지하철이 도착했고 이 주제는 그대로 휘발되었다. 그때는 온몸을 감싸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빨간 머리 앤>이 여성 문학, 그것도 아동 문학으로 취급되어 온 세월이 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본고장인 캐나다에서도 1970년까지 문학계의 반응이 냉담했다고 한다. 심지어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남편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작품을 읽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처음에 나도 한 권짜리 다이제스트 판이 전부인 줄 알았다. 뒤에 어떤 대서사시가 남아 있는 줄 모르고 말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20대 후반 성인 남성이 <빨간 머리 앤>을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끔씩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같은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어떤 텔레파시 같은 것. 시주와 내가 통하는 것처럼 언제가 그와도 통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것을 보고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리거나, 어떤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하는 그런 때 말이다. 그런데 그와 찌리릿 하고 연결되는 순간은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점점 줄어들었다.

  취향과 사고방식이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저 친구로도 만나기 힘든데 연인으로 만나기란 더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건 길버트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지만,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앤도 집안의 중요한 대소사를 마주할 때마다 길버트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의 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바꿔나갔다. 자신의 것을 내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서로 조금씩 물들어 점점 더 비슷해져 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가 더 옳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던 그와 나는 영원히 함께하기엔 참 미숙했다.   


  요셉을 아는 사람들은 비슷한 아픔과 비슷한 행복을 겪으며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 코로나에 걸려본 사람들은 고통에 동질감을 느끼며 어떻게 병을 극복했는지 경험을 나누고 힘든 시절을 함께 버텼다. 코로나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은 '그게 뭐 그렇게 아프다고'라고 반응하며 공감하지 못하거나 '죽을 정도로 아프대'라며 과하게 공포에 질려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같은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온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들다.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받아들이는 정도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아바타>에서처럼 꼬리를 연결해 뉴런을 직접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꼭 대화가 필요하다. 회피해서는 안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부딪힐수록 더 대화해야 한다. 다름을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이미 한 발 늦었지만 다음에 사랑을 한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뒤 달콤한 3개월이 지나고 콩깍지가 벗겨져 예민해진 고슴도치처럼 잔뜩 가시를 세우고 서로를 찔러대는 시기가 와 고통받고 있다면, 제발 저 문장을 읽어달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고 싶다.



(출처:

집사인생 용시쿠 <고슴도치 가시 이렇게 만지면 안 따갑나요?>

 https://youtu.be/-PibX9nuB84?si=ayohHrViR3vdTreR)


(같이 보면 기분 좋아지는 영상:

냥이아빠, <오이도둑 고슴도치, 과연 실제는?>

https://youtu.be/KPvVBvHE7yk?si=kVPH3UKJsAqD2WY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