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마지막으로 고백해야 할 대상은 바로 부모님이었다.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엄마에게는 촉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이별한 날 정류장을 향해 멍하니 조금씩 걸어가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딸! 뭐 해?”
“나? 나 지금 바빠.”
“맨날 바쁘대. 아니 시장에서 딸기를 샀는데 엄청 달아! 이제 끝물이래. 좀 갖다 줄까 해서.”
“집 근처 가게에서 딸기 많이 사 먹었어. 나 과일 없이 못 사는 거 알잖아.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전화할게.”
사실 엄마는 그때 이미 뭔가를 눈치챘다고 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나. 그렇지만 굳이 말을 안 하길래 캐묻지 않았다고 했다. 미어캣처럼 자식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뭐든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엄마지만 문득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최대한 배려한 것이었다.
고백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딸기 철은 결국 지나갔고, 나를 낚을 다음 미끼로 복숭아를 선택한 엄마가 아빠와 함께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른 복숭아가 담긴 통을 잔뜩 가져와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운 뒤 엄마는 “저녁 먹으러 가자!”며 나를 차에 태웠다. 뭐가 먹고 싶냐는 물음에 갑자기 장어 구이가 생각났다.
“그래. 너는 생선이 몸에 잘 맞아. 고기 말고 생선을 많이 먹어야 해.”
엄마의 말에 고기를 좋아하던 그가 떠올랐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엄마는 몇 년 전에 함께 갔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한 말을 신봉하고 있었다. 외식 메뉴를 고를 때면 늘 저렇게 말했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 저 말을 그대로 전했었다. 그는 국밥류를 가장 좋아했지만 생선도 잘 먹었기 때문에 함께 동태탕, 초밥, 생선 구이 집을 자주 갔었다. 어느새 또 그에 대해 생각해 버렸다. 비워내자. 지워내자. 다짐하고 노력해도 잠깐만 방심하면 이렇게 치고 들어와 버린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시간과 나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장어구이 집에 갔다. 머릿수대로 소금구이를 3마리 시켜 양념에 야무지게 찍어먹었다.
“맛있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키고.”
이것도 엄마가 늘 하던 말인데 코끝이 시큰했다. 속상하다는 이유로 나마저 나를 챙기지 않았는데,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내 생각뿐이었다.
식사 후 우리는 드라이브에 나섰다. 아빠가 운전을 하고 엄마는 조수석에 앉고 나는 뒷좌석 회장님 자리에 앉아 머뭇거리다가 고해성사를 했다. 생각보다 부모님의 반응은 덤덤했다. 친구들과는 또 다른 반응이 신기했다.
“그럴 것 같았어.”
“왜?”
“OO군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안 하길래 눈치챘지. 너 엄마가 눈치 백 단인 거 몰라?”
“알아.”
“잘 됐어. 결혼한 것도 아닌데 뭐. 남녀가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거지.”
“언제는 빨리 임용 합격 못하면 뻥 차인 다음 그 사람한테서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는 청첩장이 날아올 거라며.”
“그건 너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고 한 소리였지. 진심은 아니었어. 이렇게 되니까 미안하네. 내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잖아?”
“엄마 잔소리가 좀 독하긴 해.”
“이렇게 커가는 거야. 다 통과 의례려니 생각해.”
“인생의 레이어가 한 겹 더 생긴 거지.”
엄마 아빠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말했다. 부모님은 맨날 사소한 일로 다투지만 교훈 있는 멘트를 남길 때에는 사이가 좋다.
‘통과 의례’는 우리 가족이 아주 좋아하는 단어다.
통과 의례(通過儀禮)
-표준국어대사전
1. (사회 일반) 출생, 성년, 결혼, 사망 따위와 같이 사람의 일생 동안 새로운 상태로 넘어갈 때 겪어야 할 의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프랑스의 인류학자 방주네프(Van Gennep, A.)가 처음 사용하였다.
그래. 이건 살면서 다들 한 번쯤 겪는 흔한 일이다. 김범수는 '보고 싶다'를 녹음할 때 곡에 슬픈 감정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연인에게 거짓으로 이별을 선언했다. 그래놓고는 자기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악뮤 이찬혁은 헤어진 뒤 해병대에 입대하고 전역 후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작사 작곡했다. 자의든 타의든 이별을 겪은 후 고통과 싸워 이긴 사람은 성장하고 명작을 만들어 낸다. 다들 행복한 연애만 했다면 <냉정과 열정 사이>나 <이프 온리>, <이터널 선샤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라라랜드> 같은 작품이 탄생하고 또 두고두고 회자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통과 의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여주인공은 결혼식 전날, 남주인공은 무려 결혼식 당일에 차이는 2016년도 tvN드라마 <또 오해영>이다. 엄마는 한때 이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배우 서현진이 ‘오해영’ 역을, 신화 에릭이 ‘박도경’ 역을 맡았다. 방송사 월정액을 끊었던 건지 드라마를 개별 구입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주구장창 ‘또 오해영’을 틀어놨다. 처음엔 관심 없던 나도 오해영이 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오열하는 장면을 몇 번 보다 보니 동질감이 생겨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엄마와 같이 앉아서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있었다.
‘동명 오해 로맨스’라는 포스터 문구처럼, 서현진은 평범한 오해영(흙해영)이고 전혜빈은 예쁜 오해영(금해영)이다. 흙해영은 결혼식 전날 약혼자였던 한태진에게 파혼을 통보받는다. 사실 이것은 박도경이 두 오해영을 착각하고 연인이었던 금해영을 빼앗아갔다 생각한 한태진의 사업을 망치고 구치소에 보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심하게도 흙해영의 약혼자 한태진은 감옥에 가기 전 나이트에서 웨이터에게 조언을 구한다.
“여자들은 그냥 니가 싫어졌다 이러면 안 돼요. 여자는 디테일하게 얘기해줘야 해요. 니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어 뭐 그런 식으로….”
그리고 정말 이를 그대로 시행한다.
우리 결혼하지 말자. 미안해. 내가 널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근데 왜?
네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어.
……. 대신 결혼은 내가 파투 낸 걸로 하면 안 될까? 내가 안 한다고 해서 엎은 걸로 해줘. 그것만 해줘. 나 너무 창피해.
한태진과 오해영의 이별은 지금까지도 드라마 속 역대 최악의 이별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오해영은 팔이 부러지고 코피를 흘리고 술에 취한 채 한강 다리를 걸어가며 오열한다.
오해영만큼 심한 말을 들은 건 아니지만, 나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그와 같이 부산에 갔었다. 광안리 해변에는 '달팽이톡'이라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편지를 쓰고 모래사장 가운데 박혀있는 엽서투입구에 넣으면, 일 년 뒤 해당 월 첫 주에 엽서를 발송해 주는 시스템이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썼었다.
5월 연휴를 맞아 같이 여행 왔는데 지금 무진장 행복하다! 날씨도 좋은데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더 좋아요. 올해 일을 시작하면서 오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공부만 할 때는 몰랐는데 쉬는 날 이렇게 같이 여행 올 수 있다는 게 진짜 좋아요. 1년 후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요.
2022년 5월 부산에서
그리고 일 년 후 카페에서 그가 말했다.
“달팽이 엽서가 도착했더라. 일 년 전의 네가 나한테 쓴 편지.”
“아, 벌써 왔구나. 난 아직 못 받았는데.”
“편지를 읽는데 아무 감정이 안 느껴졌어.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 그때 이제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
며칠 뒤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나와 함께 찍었거나 나를 찍었던 사진들이 사라졌다. 어느새 팔로우도 끊겨있었다. 지난 생일에 주문 제작해 선물했던 초상화도 카톡 프로필에서 사라졌다. 나도 인스타에서 그와의 팔로우를 끊었다. 그가 생일 선물로 주었던 에어팟을 잃어버린 후에는 카카오뱅크앱 커플 통장 계좌에서도 나왔다. 이후로 한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다.
오해영은 부모님에게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다. 오해영의 엄마는 네가 사람이 맞냐며, 결혼을 파투내고 잠이 오냐며 딸을 구박한다. 하지만 극 후반에 이르러 진실을 알게 된 뒤에는 방을 데굴데굴 구르며 가슴을 치고 고통스럽게 절규한다.
1985년 5월 22일 이 동네에 여자아이가 하나 태어났지요.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 나를 닮아서 미웠고, 나를 닮아서 애틋했습니다.
왜 정 많은 것들은 죄다 슬픈지. 정이 많아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을 친년이도 겪을 거라 생각하니.
그래서 미웠고 그래서 애틋했습니다.
(중략)
응원하는 사람이 돼주면 그래도 덜 슬프려나.
그딴 짓 하지 말라고 잡아채 주저앉히는 사람이 아니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좀 덜 슬프려나.
(<또 오해영> 16화 中 오해영의 엄마 황덕이의 대사)
<또 오해영>을 보며 열심히 예습을 한 엄마는 우리 집 친년이도 이별 후유증으로 오해영처럼 매일 술을 퍼마시고 통곡을 하고 어딘가를 부러뜨릴까 봐 걱정이 됐던 게 틀림없었다.
“나중에 엄마랑 같이 부산에 내려가서 살까?”
“좋아. 기간제 교사의 장점이 뭐겠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거야.”
나는 괜히 큰소리를 쳤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거야. 결혼도 안 해도 돼.”
엄마 말을 듣는데 장영희 교수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속 한 구절이 생각났다.
뼈만 추리면 산다 -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아이가 놀랐을 때 부모가 같이 놀라 우왕좌왕하면 아이는 더 크게 운다. 울수록 점점 숨 쉬기만 더 불편해질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부모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고 말해주면 다음에 또 다치더라도 금방 진정하고 상처를 수습할 수 있다.
엄마 아빠, 마음이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나고 있어요.
많이 아프지. 꾹 눌러서 지혈하자. 피가 멎으면 소독하고 붕대를 감으면 돼. 그리고 병원에 가자. 혼자 못하겠으면 엄마 아빠가 도와줄게. 피를 닦아낸 다음 살펴보면 사실 그렇게 깊이 찢어진 상처가 아닐지도 몰라. 만약 아주 큰 상처여도 엄마 아빠가 얼른 병원에 데려다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딸.
사실 나는 달팽이톡에서 엽서 한 장을 더 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낸 편지를 비로소 읽어본다.
1년 후의 나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니. 난 지금 OO 고등학교에서 귀여운 3개월 경력을 채운 상태야. 중간고사가 끝나고 연휴에 부산에 왔는데 참 좋다! 머리도 레드 와인으로 염색한 지 4일째인데 마음에 들어. 지금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경력이, 어떤 일들이, 어떤 선택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꼭 행복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자. 넌 할 수 있어.
(참고문헌:
극본 박해영·위소영, <또 오해영>, 연출 송현욱·이종재, tvN
1회, 울어도 되나요, 2016.05.02 방영
3회, 살고싶을 땐, 사랑하기로, 2016.05.09 방영
16회, 너로 인해 살아진다, 2016.06.21 방영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