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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콩 Oct 27. 2024

너는 내 등에 박힌 사과야

<변신>

D+44


이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을 나의 오랜 친구 임시주에게


  안녕. 내가 놀라게 했지. 미안해.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보류 상태보다 확실한 이별이 더 낫다는 거야. '시간을 갖자'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는 서로를 피 말리게 하더라. 연애와 관련된 문제는 냉정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결정 내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 그게 남겨진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조금만 더 속상해보려 해. 편지를 다 쓰고 나면 이제 더는 우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야.


  한때 ‘바퀴벌레 챌린지’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었지. 부모님, 연인, 친구,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보고 답을 듣는 거였어. 무슨 답변이 나왔는지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까지가 챌린지의 끝이었지. 가둬두고 먹이를 줘서 키운다는 말부터 화형 시켜버릴 거라는 단호한 반응까지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왔다고 해. 본가에 갔을 때 물어보니 엄마는 한숨을 쉬었어.

“내 자식인데 그래도 키워야지 어쩌겠어.”

“근데 그 많은 바퀴 중에 나를 알아볼 수 있겠어?”

“당연하지! 엄마는 수백 명 속에 섞여 있어도 네가 어딨는지 한눈에 찾을 수 있어.”

감동이었어. 실제로 엄마는 입학식이나 졸업식처럼 인파가 몰린 곳에서도 나를 엄청 빨리 찾아냈거든.


  비슷한 대답을 그에게서도 듣고 싶었던 것 같아. 오랜 시간 함께해서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MBTI N(직관형)과 S(관찰형) 중 S 쪽이 100%가 나올 게 분명한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어.

“난 그런 가정하는 질문 싫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일어나지 않을 일이잖아?”

“아니, 그냥 잠깐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렇잖아도 생각할 게 많은데 고민을 사서 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바퀴벌레로 변한 여자친구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눈앞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사람과 당장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걸 더 합리적으로 여겼어. 얼핏 맞는 말처럼 들렸고 딱히 반박할 말도 없어서 대화는 그대로 흐지부지 되었지만 뭔가 섭섭했어.

  한창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16가지 MBTI로 중 하나로 그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다고 말했어. 테스트를 해보라는 내 권유에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 그럼 난 ‘MBTI 테스트를 하기 싫어하는 MBTI도 있대.’라고 말했지.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그때는 끝까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 게 야속하면서도 'N과 S의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어. 같은 말에도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지. 사실 나와 정반대인 면이 매력적이어서 그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무심하게 말해도 그의 눈빛에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어. 그래서 난 그를 믿었어. 말로는 합리성과 생산성을 따지지만 나와 함께 하기 위해서 그 입장에선 비이성적인 일에도 기꺼이 동참해 주었거든. 공부하려고 같이 도서관에 갔다가 땡땡이치고 근처 장미 정원에 간다든지, 연휴 직전에 즉흥적으로 부산에 가기로 정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야.

  그는 내가 쓴 글의 내용에 깊이 공감해주지는 않았지만 늘 잘 썼다고 칭찬해 줬어. 책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글을 쓰는 여인이 그려진 엽서 뒷장에 ‘작가님을 응원해요’라는 편지를 써주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선물해 주는 사람이었어.


  어느 순간 그의 눈빛에서 더 이상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 난 정말 당황스러웠어. 카프카의 <변신>에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가 된 기분이었지. 그레고르를 바라보는 여동생 그레테의 눈빛이 이렇지 않았을까. 분명 처음에는 동생이 그를 그렇게까지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어. 일을 못하고 돈을 벌어오지 못하더라도 밥을 챙겨주고 방을 청소해 주었지. 직접적으로 위로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가 편히 지내도록 가구를 모두 치워주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어.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자 그레테는 점점 냉정해졌어. 그리고 경멸의 눈빛을 보내게 됐지. 그동안 쌓은 정이 있어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지는 못하지만 더 이상 곁에 있고 싶지도, 그 무엇도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눈빛 말이야.


  그와 헤어지기 한 주 전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의 결혼식에 갔었어. 예식장은 그가 사는 동네에 있었지. 식이 시작하기 전에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어.

‘나 지금 OO동에 가는데 뭐 하는 중이야?’

  오늘 결혼식이 있다고 전부터 여러 번 말했지만 그는 만나자고 하지 않았어. 전날 남긴 메세지에도 답이 없었지. 전화도 받지 않았어. 식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까 말까 십오 분 정도 고민했어. 결국 버스가 도착했고 탔지. 이십 분 정도 달렸을까, 답장이 왔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발신자 이름만 보고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버스에서 내려버렸어. 더 갔다가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미안. 이번주에 너무 피곤해서 어제부터 기절했네.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아.’

  처음 보는 정류장에 내리는 바람에 다음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어. 그 길에는 나밖에 없었지. 옷도 화장도 정말 마음에 들었던 날이었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다가간 그레고르의 목소리와 몸짓이 가족들에게 그저 벌레의 울음소리와 버둥거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마음을 다시 열기 위해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은 그에게 닿지 못했어. 전부 튕겨져 나왔지. 그가 내게 한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산산이 부수었어. 아버지가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벌레가 된 아들에게 던져버린 사과처럼. 사과는 그레고르의 등에 영원히 박혀버렸지. 그리고 천천히 썩어갔어.


You are the apple of my eye.
넌 내 눈 속의 사과야.


  이 관용구는 ‘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뜻이래. 서양에서는 눈동자가 사과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여기나 봐. ‘넌 내 등에 박힌 사과야.’라는 말도 관용구가 될 수 있을까. ‘넌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서 나를 아프게 해도 뽑아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야.’ 당장 꺼내지 않으면 내 몸을 썩게 하고 결국엔 죽이겠지. 하지만 내 안에 담긴 너를 한 조각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너의 마지막 흔적인 이 사과를 쉽게 부술 수가 없다면. 이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월드 클래스인 손흥민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했어. 나중에 찾아보니 사고방식마저 비슷하더라.

“팬이 바퀴벌레로 변해 있으면…? 그런데 바퀴벌레로 안 변하잖아요. 사람이 바퀴벌레로 변할 수가 있나? 제가 너무 현실형 스타일이라. 바퀴벌레로 안 변하니까, 지금 모습대로 사랑해 드릴게요!”

  그가 나를 그때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나 스스로도 나를 사랑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지금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데 남의 사랑을 바라는 게 참 한심하다.


어째서 저것이 오빠란 말이에요? 만일 정말 오빠라면, 사람이 저렇게 흉측한 벌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자기 스스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거예요. 그러면 오빠는 없어질망정 우리는 안심하고 살아 나갈 수 있고, 언제까지나 오빠를 소중하게 회상할 수 있었을 거예요.

(프란츠 카프카, <변신>, 지식의숲, 2013)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외면했던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식었음을 눈치챘지만 애써 모른 척한 때까지. 스스로 사라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나갔다는 걸 알아. 등에 사과가 박힌 채 홀로 쓸쓸히 죽어갔지만, 죽은 뒤에 그레고르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 믿어. 수명을 다한 내 사랑하는 마음도 언젠가는 그치겠지. 그럼 나도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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