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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콩 Oct 22. 2024

소래포구에서 갈매기를 질투했어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황조가>

D+2

월요일 새벽 3시


  대성통곡을 하며 주말을 다 보냈다. 정신을 차린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생일 케이크를 예약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직접 꾸민 수제 케이크, 귀여운 캐릭터를 그려 넣은 크림치즈 케이크, 멋들어진 캘리그라피가 올라간 파이(무려 한 달 전에 주문을 넣어야 했다) 등 다양한 케이크를 선물한 전적이 있었기에 겹치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심했다.

  궁리 끝에 찾아낸 것은 떡케이크였다. 계란 한 판 모양을 한 떡케이크를 주고 싶었다. 알들 사이에 달콤한 팥앙금 병아리도 한 두 마리 올라가 있으면 좋겠지. 검색을 반복한 끝에 내 생각과 꼭 들어맞는 케이크를 찾아냈다. 문제는 가게가 소래포구역에 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소래포구역까지 가는 데 지하철로 두 시간이 걸렸다. 주문제작이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이 내가 축하해 줄 수 있는 그의 마지막 생일일지도 몰랐다. 후회하지 말자, 다짐을 반복하며 주문을 넣었다. 새벽인데도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케이크 가게 사장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케이크의 사이즈와 종류, 앙금 리본의 색상 등 여러 가지를 고르다 보니 삼십 분이 훌쩍 지나갔다.

  케이크 예약을 완료하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문하고, 배송을 받고, 포장을 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D+6

금요일 오후 7시


  지하철에서 내리니 벌써 저녁이었다. 역에서 포구까지 조금 거리가 있는데도 소래포구 역에 내리자마자 바다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온 바다가 반가워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인천에 살면서도 소래포구에 온 적은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 서울에서 쭉 살았던 동기가 '인천에서는 정말 바다 냄새가 나?'라고 물어서 나도 바다를 보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한다고 알려준 적이 있다. 그때는 친구의 순진함에 그저 웃음이 나왔는데 바다 냄새는 생각보다 멀리까지 깊고 짙게 퍼져있었다. 이별 통보를 받지 않았다면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곳에 홀로 올 일은 없었을 터였다. 사랑과 이별은 닮은 점이 많다. 생전 안 하던 짓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케이크 가게는 역사 바로 앞에 있는 소래몰에 입점해 있었다. 케이크를 찾고 바로 다시 지하철을 탄다면 한밤중이 되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지도 앱에서 길 찾기를 해보니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먼 길을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늦봄, 해 질 녘, 바닷가, 트렌치코트, 아홉수에 맞이한 일방적 이별이라는 판이 깔렸으니 온갖 청승을 다 떨어보자는 결심이 섰다. 언제 또 드라마 속 인물처럼 아련하게 걸어 볼 기회가 오겠는가.

   한때 소설이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특별하고 극적인 사건들이 나에게도 일어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대입이라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이 권태로워 잔잔한 일상에 뭔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떨어져 큰 파문을 일으켜주길 바랐다. 몇 년이 지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엄청난 떨림을 느꼈다. 저 사람이다. 내가 염원하던 ‘예상할 수 없는 것’. 그 덕분에 나는 충만함을 만끽했다. 하지만 가득 채웠던 만큼 빠져나갔을 때의 충격 또한 크다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예고 없이 찾아왔던 것처럼 갑자기 떠나려 하고 있었다. 징후가 분명 있었지만 함께한 시간을 믿고 그가 변심했으리라고는 한 톨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무력함만큼 끔찍한 게 없다. 소래포구까지 온 것은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가 채운 만큼 나도 마지막으로 그를 가득 채우고 멀리멀리 흘려보내자. 혼자 온 이별 여행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었다.

  1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쭉 내려가니 커다란 꽃게상이 나를 반겨주었다. 지도상으로는 해오름 광장이라고 했다. 옆에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마실 수 있도록 키에 맞춰 단차를 둔 음수대가 있었는데 음수대마저도 새우 모양이었다. 소래포구의 명물 새우탑까지 쭉 펼쳐진 산책로는 아주 폭이 넓고 길었다.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주변 풍경이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새우탑은 꽤 멀리 있었는데 얼마나 거대한지 뾰족한 새우 머리와 동그랗게 말린 수염이 생생하게 잘 보였다. 여러모로 신선한 풍경이었다.

  산책로에는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다정하게 밀착한 채 걸어가는 가족들이 참 많았다. 오른손으로는 아들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목마 태운 딸의 엉덩이를 지지한 채 잔디밭을 걸어가는 어느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저 풍경이 훗날 우리 이야기였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헛된 희망이 마음을 콕콕 찔러왔다. 그가 내게 준 것 중에 중년의 토끼 캐릭터 두 마리가 서로 허리를 감싸 안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려진 엽서가 있었다. '우리의 미래'라며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가득해질 때까지 함께하자는, 쉽게 바스러지는 약속으로 가득했던 아름다운 편지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누가 봐도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이겠구나. 이 정도면 목적 달성이다. 나는 외로움을 열심히 즐겼다. 케이크를 가지러 가기 전까지만 드라마를 찍는 척 하자. 사장님은 케이크를 가게 밖 사물함에 보냉팩과 함께 넣어놓았으니 오늘 안에만 가져가면 된다고 연락을 남겨놓았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까지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숙자는 도리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잊어버려야지, 잊어버려야지.”
숙자는 어머니가 생각나거나 슬픈 생각이 나면 늘 그렇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혼자 교문을 나선 숙자는 집에도 가기 싫고 친구들과 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책가방을 멘 채 터덜터덜 찻길을 따라 똥바다로 갔다. 포구에 가고 싶었다.
(중략)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자 숙자는 괜히 왔나 보다 하고 후회했다.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 창작과 비평사, 2001, pp.56~59)

 

  개인적인 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학교에서 국어부 부장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읽고-걷고-쓰기’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김중미 작가님이 강연자로 오신다고 해서 십여 년 만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다시 읽었다. 학생 때 읽었던 책을 교사가 되어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왜인지 소설을 읽다 보면 가장 인상 깊은 등장인물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곤 한다. 꼬리를 무는 의식의 흐름을 좇다 보니 이번에는 내가 쓸쓸히 포구를 걷는 숙자를 따라 해보고 싶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숙자의 어머니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참 좋은 사람’인 남편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쌍둥이 숙자와 숙희를 남겨두고 집을 떠난다. 인천항 화물선 짐꾼으로 일하는 숙자의 아버지는 가정 폭력범은 아니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다 만취한 채로 큰 돈을 들여 수습해야 하는 사고들을 자꾸만 일으킨다. 초등학교 6학년인 숙자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다. 나는 숙자가 포구로 떠나는 장면을 좋아했다. 갯벌 위 기찻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만난 아버지가 꼭 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를 정말로 실천해서 바로 다음 장에서 어머니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숙자와 달리 나는 하루종일 소래포구를 걷는다 해도 만나고픈 이와 마주칠 리도 내 소원이 이뤄질 리도 없었지만, 무용한 짓임을 알아도 가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코끼리를 절대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만 떠오른다는 유명한 사고실험처럼, 누군가를 잊어버리자고 다짐할수록 더욱더 그리워하게 된다. 강하게 부정할수록 사실은 처절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숙자처럼 나도 습관이 하나 생겼다. 마음이 복잡할 때 속으로 새하얀 그림판 하나를 떠올린다. 어떤 얼굴이 당연하다는 듯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는 한 치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지우개를 택해서 크기를 키우고 그 얼굴을 박박 문질러 지워버린다. 알콜솜으로 휴대폰 액정을 닦듯이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 흔적을 없애버린다. 잠시뿐이지만 마음이 잔잔해진다. 정말 잠시뿐이지만….


  생각에 잠겨 걷다가 도착한 새우탑은 이용 시간이 끝나있었다. 이왕 소래포구까지 온 김에 체험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가자고 생각했는데 아쉬웠다. 발걸음을 돌려 반대쪽에 있는 어시장으로 향했다. 이제 날이 서서히 더워지고 있어서인지 문을 닫은 가게가 꽤 많았다. 꿀타래 아이스크림 가게 벽에 쓰인 글귀를 보고 잠시 멈춰 섰다. 흠집 가득한 촌스러운 노란색 간판에 200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깜찍한 글씨체로 쓰인 문장들이었다.

-여기에 오길 참 잘했다.

-그냥 웃자. SMILE.

-힘내! 잘될 거야.

'여기까지 온 시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이 웃기지도 않은 이별 의식을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혼란과 불안으로 요동치는 내면이 다시 고요해질 수 있을까요.'

  왠지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의문들에 대한 답을 본 것 같았다. 누군가 어깨를 토닥여준 것만 같았다. 사람은 믿었던 것에 상처받고 낯선 것에 위로받는다.


  계속 걸어가니 드디어 진짜 바다가 보였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해안가는 진흙투성이였다. 월미도와는 또 다른 광경이 당황스러웠다. 새우튀김을 사며 근처 상인분께 물어보니 지금은 간조 때라 물이 다 빠졌고, 만조를 보려면 새벽에 오거나 한밤중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때맞춰 와야 파도를 볼 수 있구나. 당연한 일인데도 나의 무지에 정신이 멍해졌다. 산이냐 바다냐 물으면 늘 바다를 택했을 만큼 바다를 좋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바다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의 속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처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는데 나는 물도 사람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어느 바닷가든지 반드시 있는 갈매기들이 이곳에도 참 많았다. 내 마음이 비틀려서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유독 쌍쌍이 다니는 새들이 많았다. 구경하고 있던 배 끄트머리에 두 마리가 동시에 나란히 자리를 척 잡았을 때는 기가 막혔다. 그 두 마리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먹을 것 하나 안 들고 왔냐는 듯 소리를 꽥꽥 지르며 울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유리왕, 황조가, 삼국사기)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설마 내가 유리왕이 삼국시대에 겪은 일을 떠올리며 21세기에 똑같이 괴로워할 줄은 몰랐다. 고독감과 슬픔의 우의적 형상화, 짝을 지은 새와 홀로 있는 화자의 모습을 대조하여 외로움의 정서를 극대화, 화자의 감정을 다른 사물에 투영하는 객관적 상관물… 세계는 조화롭고 충만한데 화자는 부조화와 결핍으로 고통에 허덕이는 것. 교과서에 늘 언급되는 작품은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구나.

  학생들이여.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는 말처럼, 눈물 젖은 새우튀김을 들고 갈매기에게 농락당하는 절절한 이별을 해보지 않고서는 황조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단다. '정말 작품 속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작중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깊이 몰입해야 한다'는 경험주의 학습을 지향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뼛속들이 화자에 공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래 걸은 뒤 먹은 갓 튀긴 새우튀김은 따듯하고 맛있었다. 튀김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찾은 케이크는 참 예뻤다. 정갈한 떡케이크 위에 놓인 달걀 한 판과 병아리 네 마리가 한 가족처럼 알콩달콩하고 귀여워서 나는 또 울었다. 그렇게 울고 또 울며 그를 멀리멀리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본 한 쌍의 갈매기. 너무 다정해서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해오름 광장에 있는 용맹한 황금꽃게상
생각보다 크고 디테일해서 놀란 소래포구의 명물 새우탑
눈물 젖은 새우튀김. 가게 안에서 먹고 맛있어서 포장도 했다. 가게 안에서는 울지 않았다.
귀여운 계란 한 판 케이크. 픽업하는 데 왕복 4시간을 썼다. 두 번째 병아리는 이동 중에 부딪혀 벼슬과 부리가 납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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