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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콩 Oct 22. 2024

잠을 살해당했어

<밤편지>와 <맥베스>

D+1

일요일 밤 11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다 보니 눈물과 함께 콧물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코가 막히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머리가 몽롱했다. 마치 유체 이탈을 한 것처럼 내 영혼이 머리 위로 둥둥 떠올라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타인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널브러져 있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나 지금 왜 울고 있지. 멈춰지지가 않네. 미처 개지 못한 채로 침대 위에 놓여있던 뽀송뽀송한 수건이 손에 잡히는 곳에 있었다는 죄로 콧물에 젖어 눅눅하게 흐느적댔다. 정신 차려. 그만 울고 세수를 하자. 머리는 생각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몸은 여전히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곡소리를 이어갔다. 이러다 층간소음으로 아래층 사람이 올라오는 거 아닐까. 조금 더 울다가 숨이 한계까지 막히니 저절로 눈물이 그쳤다.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은데 몸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생리현상을 일으켰다.

  비틀비틀 화장실에 가니 색이 다른 칫솔 두 개가 컵에 다정하게 포개어져 있다.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도와준 날 그가 놓고 간 것이었다. 나는 세면대를 잡고 주저앉았다.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누가 세게 주먹을 꽂아 넣은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인간의 몸은 얼마나 연약한가.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지 않아도 제멋대로 착각하고 고통을 안긴다. 불현듯 진통제가 심리적 통증에도 작용한다는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플라시보 효과라 할지라도 놀란 마음을 다독여줄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별을 통보받기 전날, 매일 하던 밤 인사와 아침 인사가 뜸해졌다고 고민 상담을 하니 친구는 다시 잘 인사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조언했다. 평소에도 바쁘면 카톡을 하루에 한두 개만 주고받은 적이 종종 있었고, 오히려 내가 자주 연락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락 문제로 뭐라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지만 나름 용기를 내서 카톡을 보냈었다.

‘오늘 밤엔 자기 전에 잘 자라고 해주면 안 돼?’

  잠들기 전에 내 생각 한번 해주면 안 될까.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돌아온 대답은 ‘미리 잘 자.’였다.

‘지금 말고 잠들기 직전에 다시 보내 줘.’

‘알겠어.’

  잘 자라는 말을, 애정을 구걸하는 내 카톡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애 초반, 지하철에서 함께 아이유의 <밤편지>를 들었던 때가 스쳐 지나갔다.

"아이유도 나처럼 불면증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잘 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작사했대. 잘 자라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래."

"나도 네가 아무 걱정 없이 늘 잘 잤으면 좋겠어."

 며칠 뒤 그는 함께 만들자며 드림캐처 DIY 세트를 가져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한창 방황하며 다채로운 악몽을 꾸던 시기였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드는 그와 달리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에 시달리다가 기절하듯 잠들곤 했다.

"있지, 내가 꿈 속에서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거야. 하늘 위로 높이 뻗어있어서 끝이 안 보여. 그런데 갑자기 센 바람이 불어서 사다리가 휘청거려. 깜짝 놀라서 내려다보면 저 멀리로 땅이 아득하게 어른거려. 내려가기에는 멀리 왔고 계속 올라가기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운 거야. 계속 그렇게 흔들리면서 공포에 떨다가 잠에서 깼어."

  너무 생생해서 더 황당한 꿈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가는 철사에 분홍색 실을 촘촘히 감고 구슬과 깃털을 꿰어 세상에 하나뿐인 드림캐처를 만들었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뭔가 엉성한 내 것과 달리 당장 팔아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났다. 포장지에 적힌 문구를 다정하게 읽어주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동그란 고리 안 그물들은 악몽을 걸러주고 깃털은 좋은 꿈을 내려준다는 유래가 있다."

  이사를 한 후에도 분홍색 드림캐처는 늘 침대 머리맡에 걸려있었다. 보송보송한 깃털이 이마를 간지럽힐 때마다 진한 사랑을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연기처럼 조금씩 흩어지고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확실한 건 이제 그가 내 잠을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 잘 자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이별하기 전 나눈 짧디 짧은 그 대화를 끝없이 되새기게 될 것이므로. 나의 잠을 가장 걱정해 주던 존재가 앞으로 악몽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불면의 밤 동안 내 곁을 채워준 것은 수행평가 답안지였다. 채점을 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180명이 제출한 서평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맥베스>의 한 장면을 보았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소.
“더 이상 잠들지 못할 것이다!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다”라고
그 순진한 잠을.
엉클어진 근심 걱정을 말끔히 정돈해 주는 잠을.
매일의 삶을 마무리시키는 잠을.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씻어주고
상처 입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대자연이 주는 최고의 음식이자
인생의 향연에서 가장 영양이 풍부한 잠을.

(셰익스피어, <맥베스>, 민음사, 2006, p.47)

 

  고등학생 때 <맥베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마녀들의 예언을 믿고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촌이자 주군인 던컨 왕을 살해한 맥베스가 '잠을 죽여버렸다'는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떠나가며 선사한 불면이 강제로 삶에 되돌아오며 맥베스가 상실한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몸소 체험했다.

  잠은 세상으로부터의 도망쳐 잠시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다. 신기하게도 뇌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자신을 지킬 방법을 찾아낸다. 사람은 잠을 자며 꿈속에서 미완의 과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하고, 현실에서 해소하지 못한 감정들을 발산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꿩이 먹고 싶었는데 잡지 못해서 많이 속상하구나. 괜찮아. 내가 준비한 닭이라도 줄게. 이제 속상해하지 않기야. 잠과 꿈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무의식 속 위로이기에, 불면은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나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마음 아픈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맥베스는 스스로 살인을 선택해 놓고 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으며 이성을 잃고 미쳐간 것인가? 맥베스는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저버린 자신에게 큰 상실감을 느낀다. 감당할 수 없는 죄의식을 버틸 수 있던 정신적 지주는 모든 것을 함께하던 부인이다. 죄책감에 몽유병을 앓던 부인이 죽자 그도 곧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왕비가 지금 말고 후일에 죽었더라면.
언젠가 한 번은 들었어야 할 소식이구나.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도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는 거지.
우리의 어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우리 모두가 죽어 먼지로 돌아감을 보여주지.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이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 위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셰익스피어, <맥베스>, 민음사, 2006)


  실존이란 ‘실존 철학에서,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이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실존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사랑했던 이에게 연인으로서도, 지인으로서도 가치가 없어졌기에 존재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이제는 곁을 지키며 가정사와 속마음과 희망과 절망과 과거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하던 이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갑자기 들이닥친 커다란 상실감은 실존에 대격변을 일으켰다.


새벽 2시


  새벽이 되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사랑하는 것 같다고. 용기내서 처음으로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마음이라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침묵하던 그는 '그럼 우리 진지하게 다시 만나 보자.'고 대답했다. 일주일 동안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가 내뱉은 문장은 언뜻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아, 나의 불면과 실존은 이 사람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마지막 배려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기다리려는 거구나.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아 부드럽게 마무리를 하고 싶은 거구나. 그래. 그 긴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이대로 전화로 헤어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쪽에서 무려 반년 동안 마음 정리를 해왔다고 하니 이제는 내 차례였다. 하필 가정의 달 재량휴업일을 앞둔 화창한 주말에 날벼락이 내린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하루 중 어느 때든지 집에서 편안하게 폭풍 오열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몇 날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나니 결심이 섰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랑을 쏟아붓자.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만큼 뭐든지 해보자.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사를 하느라 생일을 제대로 못 챙겨준 것을 가장 섭섭해했으니 생일 선물을 정성 들여 준비해 보자.

  그렇게 그의 동의 없는 그의 생일파티 준비가 시작되었다.


시의        예, 폐하. 몸이 많이 아프시진 않습니다만
              떼 지어 몰려드는 망상 때문에 고통 받아 편히 주무시지를 못합니다.
맥베스     바로 그걸 치료해 달라는 거요.
             명색이 의사라면서 병든 마음을 돌보거나 뿌리 깊은 슬픔을 기억 속에서 빼 버리거나 깊이 박힌
             머릿속 고통을 지워 버리거나 꽉 막혀 있는 가슴을 짓누르는 위험한 기억을 달콤한 망각의 약으로
             지울 수 없단 말인가?
시의       그런 건 환자 자신이 이겨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맥베스    의술 따위는 개한테 줘 버려. 나는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
             어서 내 갑옷을 입혀 다오. 내 지휘봉을 줘-

셰익스피어, <을유세계문학전집3 리어 왕·맥베스>, 을유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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