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랑과 이별은 닮은 점이 많다. 생전 안 하던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
5년 동안 함께 한 연인이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붙잡았지만 그는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갔다. 마음이 힘들어 당장 죽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았다. 가장 빠른 방법은 검색창에 검색을 해보는 것이었다. 나만 유달리 더 심하게 고통을 겪는 것인지, 지금보다 더 아플 수도 있는 것인지,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답변도 다채로웠다. 이별 극복 영화 추천, 이별 극복 노래 추천, 이별 극복 책 추천...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술을 마시거나, 괜찮아질 때까지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알고 싶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해 여러 삽질을 하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 괜찮아졌다.
일본에 '킨츠기(金継ぎ)'라는 방식의 도자기 예술이 있다. 그릇이 깨져 금이 간 부분에 옻칠을 하고 금채*를 입혀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옻칠로 그릇을 수선하는 문화가 있었다. 요즘에는 ’옻뜨기‘ 혹은 ’금장식잇기‘라 불리는 모양이다. 심지어 깨진 휴대폰 액정도 금 씌우기 공예로 수선이 가능하다고 한다.
(*채색하는 데 쓰는 금가루)
깨지고 부서져 가장 날카로울 때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비어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소년을 읽다』를 쓴 서현숙 선생님은 북토크에서 '낯선 상황에서 감각이 가장 예민해지며, 예민해졌을 때 감정이 가장 풍부해진다'라고 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이별만큼 당혹스러운 사건은 또 없을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 몰아붙여지는 것은 어쩌면 전혀 모르던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가 했던 삽질이 허공을 향한 쓸모없는 허우적거림이 아니라, 마음을 더 깊고 넓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이별의 후유증으로 인해 멈춰진 시간에 갇혀버린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결국엔 괜찮아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떠나간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당신은 아주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 후회하는 이유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랑에는 더 이상 후회가 남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삶의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겠지만 어떻게든 부서진 마음을 모아 데굴데굴 굴러가다 보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별의 후폭풍이 몰려와 악으로 깡으로 홀로 버텨야 하는 지옥의 시간에 이 글들이 조각난 마음을 이어 붙이는 옻칠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다시 부서질 수 있는 연약한 마음이지만 열심히 붙여나가다 보면 어느새 금색으로 빛나는 단단한 용기를 갖게 되리라 믿는다.
사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4%EB%AF%B8%EC%A7%80/kintsugi-v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