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정말 나만 사라지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인지치료기법(CBT)으로 우울한 마음의 구조를 마주하는 이야기

by 유다월

인간은 고대부터 삶의 의욕 상실, 깊은 슬픔, 무기력함과 같은 정서적 고통을 겪어왔다.

이러한 감정은 시대에 따라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해석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우울증(Depression)'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우울을 일종의 영적 결핍 또는 신의 시험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악마의 침투란 해석을 했다.

당시엔 그저 즉, 우울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영혼과 윤리, 신앙의 문제로 해석되던 감정 상태였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와 같은 르네상스를 이끈 대표적인 인문주의자들로 인해 멜랑콜리는 창조적·지적 능력과 깊은 사유의 근원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멜랑콜리아.jpg 르네상스 시기 독일의 대표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Melencolia) I , 1514

그래서 점차 우울은 신체적·심리적 현상으로 재해석되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감정을 표현하거나 인정하기보단,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죄책감으로 감추려고 했다. 여전히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말이다.




요즘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중장년층과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우울이라는 정서적 고통의 범주 안에 놓여 있지만 세대마다 우울증의 원인은 조금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오늘날의 우울증의 성격은 주로 지나친 개인주의와 성과 중심적이고 경쟁 위주의 사회 구조 안에서 일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기 효능감과 정체성을 외부 기준에 맞춰 검증받으며 우울감을 키워간다.


나는 중학교 3학년, 고작 한 두 문제로도 희망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 성적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기 시작했고 그런 감정과 자기 무력감이 고등학교 3년 내내도 이어지면서 우울을 본격적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꽤나 깊었고, 일상 전반에서 자기 비하와 무기력감, 미래에 대한 불신이 지속되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나는 부적응자다’, ‘나는 실패한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말이다.

하루하루 숨 쉬는 것 자체가 괴롭고 세상에 잘못 온 이방인 같았음에도 얼마나 괴로웠으니 그저 어느 날엔 하루빨리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불안정한 감정이 심해질 때, 어느 날 한 번은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강렬한 자살 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내가 사라지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야.' 란 마음이 들었으나 막상 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어디라도 좋으니 자해를 시작하려고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나 그 시도를 멈추게 만든 감정은 윤리적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충동이 멈춘 이후에도, 내면에 자리 잡은 자기 비난과 수치감, 자기혐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상담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대학생활을 다니게 되었다. 이런 이전의 경험들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상담학에 관심이 있었을까?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과거의 경험들을 학문적으로 다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나는 아론 벡(Aaron Beck)의 인지치료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아론 벡(Aaron Beck)은 우울증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우울증의 인지적 기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인지치료의 창시자이다.

그는 우울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사고 패턴을 부정적인 인지 오류(Negative Cognitive Bias)라고 정의했다.

특히 벡은 이러한 왜곡된 사고를 인지 삼제(Cognitive Triad)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는데, 다음 세 가지 부정적인 신념이 핵심이다.

1. 자신(Self)에 대한 부정적 해석: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다.
2. 세상(World)에 대한 부정적 인식: 세상은 나를 외면한다.
3. 미래(Future)에 대한 절망: 앞으로도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

이 세 가지 인지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반복적으로 작동하면서, 개인의 심리적 회복력을 무너뜨리고 우울증을 심화시키는 고착화된 인지적 고리를 형성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우울이 찾아오기 전,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이렇게 왜곡된 사고 패턴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

아론 벡은 이러한 인지 왜곡이 형성되는 과정을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 핵심 신념(Core Beliefs), 그리고 중간 신념(Intermediate Beliefs) 간의 연결로 설명한다.

자동적 사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
핵심 신념: "나는 무가치하다"처럼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고정된 믿음.
중간 신념: "나는 무가치하니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처럼 핵심 신념을 뒷받침하는 조건적 가정.

이런 사고와 신념이 맞물려 작동할 때,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인지적 오류 속에 머물게 된다. 우울은 결국 이 왜곡된 해석 체계가 사고의 기본 틀로 굳어졌다는 신호다.

그래서 벡의 인지치료는 이러한 자동적 사고를 파악하고, 그게 정말 현실적인 건지, 합리적인 사고인지를 우울증에 걸린 이들에게 깨닫게 왜곡된 인지와 신념의 파악 및 수정을 통한 치료를 강조한다. 이 접근법은 그들 스스로가 자동적 사고를 포착하고, "이 생각이 과연 사실인가?"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우울증을 증폭시키는 왜곡된 신념을 자각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곧, 우울이라는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이 된다.




"정말 나만 사라지면 정말 세상이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참고 버티면 돼."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지."

이런 방식으로 우울이라는 감정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내가 과거의 깊은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단지 이렇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던 마음들을, 하나씩 솔직하게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것은 나약함도, 성격의 결함도 아니다.

우울은 마음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이며, 그 신호를 해석할 언어와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또한 그 감정은, 반드시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짐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들어주고 지지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상처받고, 누구나 흔들리며 살아가니까.

잘못된 생각이나 감정은 너무도 쉽게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회복의 가능성을 만들어 가게 되고 비로소 그때부터, 삶을 다시 걷는 여행자가 된다.

그리고 이 여정은 때로 더디고 아프지만, 단단한 우리로 되돌아오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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