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이론과 안전기지에 대해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잼, 라이너·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 윤동주 시인, '별 헤는 밤' 중에서
너무 힘든 날이면, 나는 무심코 중얼거리곤 한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 그 말은, 내가 나였던 자리, 나의 삶이 되었던, 나의 들판, 나의 집을 향하는 독백이다.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또래 친구가 없던 산골 마을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던 친구는 강아지 '삐삐'였다.
교실에서 하루 종일 숨죽여 지내다가도, 집 근처에 이르면 나는 저 멀리부터 큰 소리로 불렀다.
"삐삐야!"
그러면 갈색 털을 반짝이며 꼬리를 흔들던 그 아이가 달려왔다.
나는 그 품에서 비로소 하루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다.
삐삐는 내게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외로운 나날 속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
나의 안전기지(Secure base)였다.
안전기지라는 이 용어는 심리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애착(attachment)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맺는 가장 중요한 정서적 연결을 의미한다.
그리고 안전기지는 사랑하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확신이 불안과 두려움을 줄이고, 그 믿음 속에서 세상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토대를 뜻한다.
애착이론은 인간이 진화적으로 중요한 대상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려는 선천적 체계를 전제로 하며, 이 유대가 불안·위협 상황에서 안정감과 생존 이익을 제공한다. 특히, 영아시절에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처음 출발한다. 이때 어떤 애착을 형성했는지에 따라, 안정형 애착, 불안형 애착, 회피형 애착, 혼란형 애착(공포-회피형이라고도 한다)으로 형성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애착은 단순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우리가 의지하고 마음을 나눈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얻게 되고 세상을 살아낼 힘을 키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애착은 어떤 애착을 받았느냐에 따라 청소년과 성인기 대인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게 삐삐는 그런 존재였다. 또래 친구가 없었던 시절, 삐삐와의 교감은 친구보다 더 일찍 갖게 된 편안한 애착 경험이자 정서적 버팀목이었다. 보울비가 말했듯, "애착 대상이 가까이에 있다는 확신은 불안과 두려움을 줄이고, 안전 속에서 탐색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삐삐와 함께일 때만큼은 안전함과 평온함을 느꼈던 거 같다. 그 행복하고 편안한 기억이 반려동물에게 지금도 관심이 많은 이유일까.
이제 나는 반려묘들과 함께 산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하는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단순한 기쁨만이 아니라 책임과 헌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삐삐와 함께했던 시간, 그 이후로 만났던 다른 반려동물 나의 애착 경험으로 남아, 지금의 돌봄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되었다. 그 관계는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때금 순간마다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인해. 저 무지하고 미숙했던 어린 시절,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머물러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그리움으로만 남은 것 같다.
그 그리움 속에서 어린 시절의 전경과, 별이 된 삐삐, 떠나보낸 수많은 아이들. 쿠키, 카루, 카모, 첫눈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 순간, 유년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 내 마음속 정원에 꽃처럼 피어난다.
보울비의 애착이론이 말해주듯, 사랑하는 존재와의 관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각인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 따뜻함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힘든 날, 나는 슈필라움(Spielraum, 놀이와 숨결의 공간)에서 이렇게 인사한다.
“다시 태어나면, 함께 하는 순간, 한번 더 안아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