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를 통한 자기 지지의 회복에 대한 심리학적 에세이
나는 요즘,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선택이 옳았을까, 아니, 더 정확히는 — 나는 왜 이 길을 택했는가.
최근에 새 회사에 올해 10월에 입사하게 되었다. 10월 하고도 19일,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 가장 큰 이유는, 이제야 20대부터 그토록 원했던 일을 마침내 할 수 있을 게 될 거 다는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자, 설렘은 점점 형태를 잃고 불안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로 변해갔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낭떠러지가 있었고, 지금 나는 그 낭떠러지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인수인계는 허술했고, 업무의 경계는 모호했다.
체계는 없지만 위계는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리고 결국 공식적으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내년 여름이면, 감사 통과가 되지 않으면 이곳은 문을 닫을 수도 있어요."
거기다 이 회사에서 가장 회사 경력이 단연코 많은 사람도 나라는데,
내게 주어지는 업무는 잔업무거나 허드렛일이다.
이직을 하면서 최소 그래도 안정적인 회사를 원했다.
정해진 규칙과 질서 속에서, 나의 하루가 예측 가능하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반대의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계획은 의미를 잃었다.
그 속에서 나의 존재감도 함께 희미해져 가는 기분을 느낀다.
회사에서도 내가 경력이 탄탄한 편이라는 걸 알고 뽑았다고 했다.
근데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해주고, 제대로 된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쉽게 따라주길 바라는 직원으로 대하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무너진 체계인 회사가 있을까 싶었을 정도니, 솔직한 마음에선 나는 이 회사에 내가 제대로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어지는 마음 반, 괴로움 반으로 가득한 상태다.
수많은 공부를 해왔고, 다양한 회사였지만 현장감이 있이 살아왔다. 근데, 새 회사를 입사할 때마다 나를 증명해야한다는 괴로운 요즘이다.
상담사 뿐만 아니라, 강사, 디자인 공모전 등도 수상받은 경력도 있고, 기획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한 경험도 있다. 그렇게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 상담도구도 꾸준히 취득하면서, 기존의 일들도 경력과 자격증을 탄탄히 세어왔다. 어느 날은 24시간을 다 쪼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사이 틈틈이 운동도 했다.
근데 참 최근에 혼란스러웠다. 상담사라는 일을 하기 위해서, 상담현장에 들어가니 상담사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사무적인 태도에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갭에 당황함이 왔고, 20대 때부터 정말 하고 싶던 일에 지원하게 되어 나의 젊은 시절 꿈을 이뤄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지원한 회사는, 무너져있었는데, 내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부적으로 아직은 조금 더 보완하면 가능성도 보이는데, 위계로 꽉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입사하자마자 날 경계하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꾸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니 나에 대한 확신이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불안의 한가운데서 예정되어 있던 주말 마라톤 대회를 맞이했다.
5km, 짧다면 짧은 거리지만 하지만 나에게는 오랜만에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자리였다.
몇 년 전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공식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음번엔 10km를 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스타트선에서 와다다 뛰어버렸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긴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5km를 5분 10초대의 페이스로 완주했고 여자 참가자 중 상위 3%였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내 성적을 들은 남편이 계속, 또 여러 번을 말했다.
"여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자부심을 가져도 돼."
그 한마디에 천천히 마음에서 꽃이 피어나듯, 내가 대단한 사람이 맞는 걸까? 노력하는 사람이 맞는 걸까?
아, 노력한 결괏값을 낸 거 구나. 그렇게 하며 그동안 스스로를 의심하며 버텨온 날들이 스쳐갔다.
격려는 사람을 단순히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즉,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상담 장면에서도 이 신뢰의 경험이 쌓이면, 내담자는 점차 상담사 없이도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특히 고통과 외로움 속에 오래 머무르면, 세상은 점점 흐릿해지고. 스스로의 존재도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때야말로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겠거니와 생각을 요새하고 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일부이고,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그 불안을 없애려 애쓰며 더 큰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불안을 없애야만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그 불안을 데리고 걸어야만,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나를 격려해 주는 이들을 통해 얻는 위로와 격려, 그건 끊임없이 무너지는 삶 속에서도
다시 '내가 나로 설 수 있다'는 믿음에 조금 기댈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의 격려가 없는 이들에겐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한 줄의 기록, 그것이 곧 스스로를 지지하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라고 느꼈다.
오늘은 참, 하늘이 예쁘던데 말이다. 그럴 땐 책 한 권을 읽거나, 하늘을 바라보면 되고.
지나간 하루를 짧게 기록하는 것조차도 괜찮다.
그 행위는 작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다시 나를 믿는 연습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도 대체 이 회사에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조만간 제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나란 사람이 어떤 일을 해주길 위해서 채용되었는지 등의 진솔한 이야기를 직면하여 이야기하기로 했다.
내게 바라본 문제점이 내 그저 불평이 아니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로 느껴지는 것이고,
내 경력이나 능력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아닌 게 아니라는 걸 믿어주기로 했다.
물론, 삶은 불완전하고, 세상은 늘 흔들린다. 슬플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구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아가야 한다. 외면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