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불안에 이름을 붙여보신 적 있나요?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의 기도와 수용전념치료(ACT)

by 유다월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기도문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숨이 가쁜데,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너무도 버겁다.

아침 햇빛이 투명하게 벽을 타고 내려와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날을 시작하고

이상하게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평초 같은 삶을 사는 내 마음만 제자리를 잃는다.


회사를 이직하고, 새로운 지역에 이사 오게 되면서 있던 여러 사건들은 나를 성숙하게 했지만 한 편으로는 고통을 뽑아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건 때로 더욱더 나를 한계치에 몰아붙이는 일까지도 서슴없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안은 제거해야 하고, 슬픔은 극복해야 한다고 답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들, 나아진 것들, 성장한 것도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된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예전의 고통이 사라지더라도, 그 대신 모양을 바꾸어 내 안에서 자라났다.



수용전념치료(ACT). 최근에 심리학계에서 꾸준히 교육하고 있는 제3세대 행동치료 이론으로 분류되는 치료 기법이다. 수용전념치료의 풀네임인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를 줄여서 ACT(액트)라고 부른다.


수용전념치료 이전의 20세기 심리학의 주류는 ‘통제(control)’의 패러다임이었다.

즉, 부정적 감정이나 사고를 ‘바꿔야’ 하고, 불안·우울·트라우마는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예컨대 지금도 너무나도 역동적으로 바뀌는 이 세상인 것과 같이.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인간은 감정의 통제 불가능성을 더 명확히 깨닫게 되고 상담의 패러다임도 바뀌기 시작했다.

AI의 도래, 난민 및 차별의 문제, 기후 위기, 전염병, 전쟁, 경제 불안정, SNS를 통한 비교와 자기혐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그제야 심리학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ACT로 옮겨져, 고통을 없애려 하지 말고, 고통을 포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용전념의 이론으로 전환이 되어가게 된 거라 한다.




말 그대로 ACT는 심리적 고통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데 전념하도록 돕는 심리 치료다. 이는 전통적인 인지행동치료와 달리 고통의 내용을 바꾸려 하기보다, 고통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심리적 유연성을 높이고 가치 중심의 행동을 촉진한다.


즉,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참 어렵지만 ACT를 통해서 현대인으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관문이라면 관문, 과업이라면 과업, 혹은 숙명이나 운명이라면 운명을 최대한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우연한 계기로 나는 ACT의 세미나를 참석하게 된 적이 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그걸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ACT는 니버의 기도문과 닿아 있다. 니버의 기도문은 TCI를 시작하기 전에도 언급될 정도로, 종교적인 색을 떠나 이제는 유명한 기도문이 된 지가 좀 되었다.

ACT의 개념과 기도문을 연결 짓자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 — 수용(acceptance)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 전념(committed action)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 — 마음 챙김(mindfulness)


그리고 이걸, 심리학적 언어로 표현하면,

감정의 제거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관계의 재정의(redefining the relationship with pain)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게 그저 고통을 체념하고 수용하라는 이론으로 보면 굉장히 단편적이고 좁은 시선이다.


수용전념치료의 수용은 단순히 체념하는 것이 아닌 가치에 기반을 둔 전념행동을 증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키우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 내일의 일, 지나간 과거, 심지어 내 감정까지도, 혹은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그에 따라 도전하고 선택했지만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내가 좌절할 때마저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나를 비하하는 일이 여전히 많은 불안하고 불완전한 상담사이자 내 한몫이라도 책임을 져야 할 인간이다.



그러나, ACT를 통해 수용하는 연습을 하면서 불안, 분노, 트라우마 반응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지금 나는 불안하구나'라고 그 불안에 대해 이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나를 덜 지배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붙여보지 않은 내 안의 감정들. 불안, 괴로움,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본 적이 있었나?


그러면서 더욱더 선명해지는 감정들을 통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만, 방향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었다.

대신, 고통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어줬을 뿐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연습 중이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멈춘다.

수용은 여전히 어렵고, 평온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아주 가끔, 불안의 가장자리에 앉아 숨을 고를 때
평온은 통제가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두는 일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 불완전하고, 여전히 서툴지만.
그럼에도 괜찮다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그리고 아주 미약한 희망처럼,
숨 끝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수용할 수 있는 은혜와, 바꿀 수 있는 건 바꿀 수 있는 용기.

그걸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위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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